[사설] 좀비기업 4000개인데 ‘부실기업 정상화법’ 그냥 없앤 무대책 국회
불황과 고금리로 기업 부실이 빠르게 늘어나는 속에서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국회의 태만으로 지난 15일 효력을 잃었다. 워크아웃은 금융 채권자들이 신속한 채무 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유도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하이닉스·현대건설을 비롯한 부실기업 회생에 많은 성과를 냈다. 이 제도의 근거법은 2001년 한시법으로 도입된 후 6차례에 걸친 법률 제·개정을 통한 연장으로 지금까지 유지돼왔다.
그동안 워크아웃으로 기업을 정상화시킨 성공률이 34%에 달하고 정상화 기간은 3.5년에 불과했다. 법원 회생 절차(법정 관리)의 성공률 12%, 정상화 기간 10년에 비해 더 효율적이란 점이 입증됐다. 수출 기업의 경우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신용장 거래가 중단되는 반면, 워크아웃은 부작용 없이 상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올해도 10월 법 시한 만료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이 각각 일몰을 연장하자고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과 7월 초에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 소위가 두 차례 법안을 논의했지만 일부 의원의 반대에 막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국회가 여야 극한 대립으로 파행을 빚는 바람에 후속 심사가 재개되지 않은 채 시한이 끝나 이 법이 일몰(日沒)돼 없어지고 말았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기 힘든 상태가 3년 연속 이어져 속칭 ‘좀비 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이 외부 감사 대상 기업의 15.5%로, 3900개가 넘는다. 외부 차입 없이는 빚 갚기가 어려운 부실 징후 기업은 2021년보다 25곳 늘어나 185곳에 이른다. 올 6월까지 법원엔 724건의 법인 파산 신청이 접수돼 작년 상반기의 452건보다 60% 급증했다. 불황으로 기업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워크아웃 제도의 필요성이 높아졌는데 정쟁만 일삼는 국회 때문에 대책 없이 제도가 폐지됐다. 정치가 역할을 태만한 결과 부실기업 정상화를 돕는 유용한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하루빨리 재입법을 통해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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