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우리 국민은 오만을 가장 싫어한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2023. 10. 1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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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국정 스타일에 대한 반감
이승만·박정희도 피하지 못해
또 중요한 이유는 ‘민생 둔감성’
추석 밥상 화제는 단연 물가
그런데도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게 이념”…
선거는 지옥이자 기회
현실 직시하고 국민에게 답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진행되는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지난달 1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기 전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뉴스1

9월에 이어 10월은 보수층에게 충격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큰 차이로 패배했다. 범죄 혐의가 9개인 당대표, 방탄국회와 입법폭주를 이어온 정당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나.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 하지만 더 기막힌 것은 선거 패배에 대한 대통령과 여당의 안이한 태도다. 매서운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천안함 순국 장병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의 말이 보수층의 속마음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게 우리 가족입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나라 상황을 보면 ‘이래도 되나’ 위태롭다 싶어요.” 안타까움이고, 절박함이다.

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총평은 “정부의 국정기조에 대한 민심의 경고”라는 것이다. 중산층, 2030세대, 중도층 모두 등을 돌렸고, 다수의 무당층이 민주당을 선택했다. 퇴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 분노하고, 심판하겠다는 의지다. 윤 대통령은 코피까지 터지며 일하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나라의 이념을 바로잡고자 했는데, 유권자는 왜 분노한 걸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대통령의 국정 스타일에 대한 반감이다. 언론은 물론 여야, 일반 국민들조차 이구동성이다. 구체적으로는 오만과 불통이다. 윤 대통령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스승인 송상현 전 서울대 교수도 “국정 방향 전환”보다,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고 포용하라는 것”을 조언했다. 특히 인사가 문제다. 국민은 인사로 정치를 판단한다. 인사 하나로 민심이 모이거나 흩어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장관 후보자만 5명 낙마했다. 책임을 물을 장관을 끝까지 고집한 경우도 많다. 소신과 신의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오만을 가장 싫어한다. 오만하다고 느낀 순간, 누구든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국부 이승만, 빈곤을 쫓은 박정희 전 대통령조차 용서하지 않았다.

다음은 민생에 대한 둔감성이다. 경제가 정말 어렵다. 연소득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대출자 수가 약 300만 명으로, 7명 중 1명이나 된다. 단순한 경제지표를 넘어, 서민이 느끼는 생활물가의 고통은 심각하다. 지난 추석 밥상의 화제도 단연 물가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올 들어 부쩍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고, “이념 없이는 실용도 없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훼손한 국가정체성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민은 매일 생업에 바쁘다. 국정의 기본은 경제다. 민생도, 안보도 경제다. 민주화 이후 선거 이슈의 70% 이상은 경제 문제였다. 먹고살만 하면 여당을 지지하고, 살기 힘들면 심판했다. 아주 단순하다.

대통령 혼자서, 단기간에 거시경제를 바꿀 수는 없다. 국민도 안다. 단지 대통령이 국민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고, 손을 잡아주길 바랄 뿐이다. 다시 윤청자 여사의 말이다. “국민들에게 친절하게 상황 설명하면서 ‘그러니 같이 허리띠 졸라매 주십쇼’ 호소해야 해요. 그런데 그냥 매사 통보고 명령이에요.” 좌파 쪽은 다르다. “앞에선 그렇게 깍듯하고 친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윤 정부는 “최소한 ‘깍듯하게 구는’ 연기조차 못한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당이 약자한테 공감한 적 있었나.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수직적 당정 관계다. 김기현 체제는 윤 대통령의 작품이다. 출범 과정부터 민주주의에 많이 어긋났다. 이후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 정책을 주도하지 못하고, 정치적 존재감은 바닥이었다. 이번 보궐선거도 대통령실에 끌려다녔다.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곧바로 후보로 공천한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대통령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왜 진작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했다지만, 그게 당정 관계의 현실이다. 엊그제 국민의힘 의총에서는 “이쯤 되면 다 같이 용산 가서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도끼 상소라도 올렸어야 한다”(허은아 의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선거는 정치가에게 지옥이자 기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에게 한 표 찍어주십시오”라는 말을 구걸처럼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재순 전 국회의장은 그런 속물적 행동이 권력에 빠진 정치가에게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선거는 인간적 고뇌, 국민의 여망, 서민의 애환을 깊이 반추하게 해준다. 민주주의를 정화하는 신성한 종교의식이다. 내년 총선에 윤석열 정부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렸다.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의 소리에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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