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버드내 옆-구천동

경기일보 2023. 10. 18.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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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천의 옛 사진을 보면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과 아이들이 멱 감는 풍경이 담겨 있다. 간혹 요즘도 세류동을 지나는 여름 버드내엔 어린이들이 물놀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면 음표가 되고 스케치가 된다. 시냇가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노는 소리와 윤슬이 반짝이는 느린 물소리는 슈만의 트라이 메라이의 어린이 정경이 떠오른다. 도심을 지나는 수원천의 모습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정치인이 바뀔 때마다 복개와 해체를 거듭했다. 구천동의 한 시절은 빨간 등불이 있는 허술하고 희미한 술집에서 양은냄비를 두드리는 젓가락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몇 차례의 정비 끝에 단정한 공구 거리로 환생했다. 현재는 수원공구단지가 생겨 대부분 고색동으로 이전했지만 아직도 공구와 함께 철물점, 건재상회, 쇠를 달구는 대장간의 불빛은 꺼지지 않고 있다.

쇠락하는 것과 흥하는 사이의 아름다운 옛 모습은 오랜 세월 쓰러지지 않고 잘 견뎌왔다. 슬레이트지붕과 기와지붕 아래 담쟁이넝쿨이 가을 물을 들인다. 골목길은 땅의 습기와 발자국 소리를 세세하게 받아들인다. 땅과 벽과 넝쿨 사이에서 자란 시간의 무늬가 바람에 새겨지고 있다. 그런 곡선의 시간이 스피디한 직선의 공간 뒤에 있다는 건, 산소 같고 비타민 같은 느림의 미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이 공허해질 때 골목길을 걸어보라.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엄숙한 당신의 그림자를 앞세우고 지난 시간을 길어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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