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신의 아이 위로 15만V가 흐르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이랬다면 어땠을까. 당장 시위하고 소송하지 않았을까. 다른 곳도 아닌 학교 위 모습이다. 그 공간에 복잡한 전선이 얽혀 있다. 가벼운 통신선에서 초고압선까지 다양하다. 본보 취재진이 안산시 상록구의 한 학교 인근을 살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함께 있다. 전봇대 6개가 학교를 둘러싸고 있다. 수원특례시 권선구 한 초등학교도 사정이 같다. 학교 담장 옆으로 전신주 4개가 서 있다. 용도를 달리하는 전선들이 복잡하게 늘어져 있다.
전봇대 쓰러짐은 태풍의 대표적 피해 유형이다. 초속 25~30m 정도의 바람에도 넘어간다. 전선과 각종 간판 등이 저항을 높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상 누전 피해로 이어진다. 차량이 부서지고 행인이 감전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그런 위험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더 아찔한 상황도 있다. 십 수만V의 초고압선이 지나가는 학교들이다. 올해 8월 말 현재 15만4천V 이상의 초고압선이 지나가는 학교가 도내 37곳이다. 학생 학부모는 알지 못한다.
고압선으로 인한 민원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한두 곳의 현안도 아니다. 새 둥지로 인한 화재 우려, 태풍으로 인한 붕괴·화재 우려 등이 제기된다. 여기에 유해성 논란이 그치지 않는 전자파 문제도 복잡하다. 일반 아파트 단지의 경우 당장 예민한 민원이 된다. 통상 손해배상 청구와 이전 청구 소송이 이뤄진다. 한전과 건설사 측이 패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백~수천억원을 들여 이전해야 한다. 그렇게 예민한 문제가 학교를 덮고 있다.
수백명의 아이들이 등하교한다. 교실에서 수업하고, 운동장에서 생활한다. 붕괴·화재로 인한 잠재적 피해자도 그 학생들이다. 전자파 피해의 당사자들도 그들이다. 통상 전봇대·고압선 피해의 경우 해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6년 또는 3년의 학교 생활에서 결말을 보기 어렵다. 여기에 엄청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이러다 보니 아예 논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시작해봤자 ‘우리 아이 졸업 때까지 옮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때마침 한국전력공사가 2021년 7월부터 해온 전선 지중화 사업이 있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의 일환이다. 지자체가 신청하면 한전이 조사해 추진한다. 더디기는 하지만 14건의 일반 지중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학교 전신주 문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시·군이 ‘심각한 학교’를 조사해 신청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런 조사와 그런 신청을 한 시·군이 아예 없다는 게 문제다. 어른들 죽어나갈 전자파가 아이들에는 괜찮다는 건가.
머리 위로 15만4천V가 흐르는 학교. 그런 학교가 지금 서른일곱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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