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케이티 헤셀의 ‘남성 없는 미술사’
2022년 8월 출판된 케이티 헤셀의 ‘남성 없는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Without Men)’는 출시되자마자 영국 최대의 체인 서점인 워터스톤으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현재까지 핫이슈인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나 미래의 한국 독자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 책이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진 것은 21세기가 되면서 학문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여성과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사는 현대까지도 굉장히 백인 남성 중심적이었다. 서양미술사의 교과서라고 여겨지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만 해도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단어도 나오지 않는 사실을 보면 말이다. 헤셀은 책의 서문에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2000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만이 여성 화가의 이름을 3명 이상 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왕립미술원은 1768년 창립된 이래 단 한 번도 여성 아티스트의 개인 회고전을 열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2020년이 돼서야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로크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전시를 열게 됐다.
따라서 페미니즘적 새로운 관점은 미술계에도 끊임없이 필요하며 다행히 현재의 미술사학은 과거와 비교해 많은 페미니즘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헤셀의 ‘남성 없는 미술사’는 르네상스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당시에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서 잊힌 여성 아티스트들을 한 명 한 명 디테일하게 재조명한다. 그동안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서양미술사를 폭로하고 떳떳하게 남성을 배제해 버리는 제목 또한 위트 있고 당당하게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커버 디자이너가 ‘남성 없는’ 부분의 글씨를 투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서점 방문자들이 이 책을 찾는 것을 어려워해 항상 직접 찾아줘야 한다며 지역 서점의 주인이 필자에게 불평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미술사가 애초부터 남성 중심이라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서양미술사에 지금에야 막 등장한 주장은 아니다. 미술사학계에 처음으로 이런 관점이 제시된 것은 1971년 미국의 미술잡지인 아트뉴스에 실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린다 노클린의 에세이에서다. 그 당시만 해도 미술사의 주요 이론들은 사고방식이 남성 중심이거나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미술계에서도 위대한 미술가들은 남성이 많다는 고정관념을 만들게 된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마치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육돼 왔다. 린다 노클린은 이러한 사실을 꼬집으며 그전까진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 충격을 줬다. 남성 우월적 분위기의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에는 여성 화가와 남성 화가가 그릴 수 있는 장르가 달랐으며, 화가에게 필수인 누드 드로잉 연습을 하는 것까지 여성에게는 금지됐던 사실 등 구조적인 성차별적 문제가 현재의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폭로하면서 말이다. 위대한 여성 화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워진 것이다. 현대의 미술사학은 노클린 같은 새로운 페미니즘적 관점의 이론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육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필자가 공부한 영국에서는 말이다.
이러한 이론들이 미술사학계에서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남성 없는 미술사’ 같은 책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생각에 우리나라에도 여성의 관점으로 보는 페미니즘적 한국미술이론이 현재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과 이론이 대중적으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여성의 관점으로 미술사를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한국에서도 역사에서 지워졌던 위대한 여성 화가들이 앞으로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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