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36] 100점으로 위조한 31점 낙제생
낙제 카드를 받았을 때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숨겨진 위조 재능을 발견해 낸다. 토드가 2학기와 3학기 성적표에 잉크 지우개를 사용하여 부모에게 보이기 전에 성적을 고치고 사인을 받아 학교에 제출할 때는 원래대로 고쳤을 가능성도 있다. 잉크 지우개를 두 번 사용한 흔적은 잘 보면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담당 교사는 평균 60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다. 반환된 성적표의 고친 흔적을 조사할 시간이 있을 리 없다.
-스티븐 킹 ‘타락의 여름, 우등생’ 중에서
개인이 쇼핑 사이트에 가입할 때도 연속되는 숫자는 위험 경고를 하고 알파벳과 특수 문자를 섞어 만들도록 한다. 그런데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를 가상 해킹한 결과, 인터넷망에 들어가는 비밀번호가 ‘12345′, 또는 설정 초기 비밀번호와 같아 보안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투표를 관리하는 기관이 ‘마음대로 조작해 주십시오’ 하고 해커들 손에 열쇠를 맡긴 셈이다.
사전 투표용지 무단 인쇄, 도장과 서명 위조, 투표 참가자 명단과 득표 수 조작 가능성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해킹과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변경했으니 됐고 관리 부실도 내부에서 조사하겠단다. 지난해 선관위는 자체 보안 점검에서 100점을 받았노라 국정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재평가한 결과 받은 실제 성적은 31.5점.
토드는 마을 노인 듀샌더가 어두운 과거를 감추고 살고 있다는 걸 알고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악행을 이야기해달라고 협박한다. 영악한 소년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던 노인은 자신의 범죄를 낱낱이 털어놓는다. 악에 매료되어 공부를 게을리한 토드는 추락한 성적표를 위조한다. 듀샌더는 토드의 조부라고 속여 학부모 면담에 참석한다. 잠자고 있던 노련한 악과 이제 막 눈을 뜬 어린 악은 서로 공조하며 점점 더 끔찍한 범죄의 세계로 빠져든다.
소설은 ‘적당한 일련의 상황이 갖추어지면, 인간의 마음에 내재한 어두운 단면들이 기꺼이 밖으로 기어 나온다’고 말한다.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이유로 자녀 특혜 채용, 특혜 승진 혐의도 감사를 거부했던 선관위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법과 무관한 치외법권 단체라는 주장을 넘어 국민 위에서 무소불위 힘을 휘두르는 독립 공화국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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