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화장과 매장
2018년에 개봉한 ‘명당’이라는 영화가 있다. 명당 묫자리를 찾기 위한 흥선(왕족)과 김씨 가문(세도정치 세력) 간의 암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김씨 가문은 왕족에게 사실은 흉지인 곳을 명당으로 속여서 그곳에 묘를 세우게 하여 자신들이 조선의 통치권력을 사실상 장악하려는 음모를 실행하는 한편, 이에 맞서서 아들을 조선의 왕으로 만들려는 흥선(대원군)의 권력투쟁이 흥미롭게 그려진 영화이다.
묫자리를 명당으로 정해야 한다는 생각의 근저에는 유교와 샤머니즘의 짬뽕식 문화 혼합이 버티고 있다. 짬뽕은 중국 산동식 초마면의 한국식 변형 국수에 일본 나가사키 잠폰의 이름을 빌어와 붙여진 음식이다. 묫자리는 시신을 관에 넣어 땅에 묻는 장례 방식인 매장을 전제로 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불교가 대세였고 그 영향으로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이 확산되었으나, 송나라 때 화장이 유교적인 도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다시 매장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우리에게 남아있는 매장식 장례문화도 조선시대의 유교문화가 남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시대에는 화장이 대세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명당을 찾는 풍수지리는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샤머니즘을 기반으로 하지만, 나름의 과학성을 엿보이게 만드는 이론 체계는 신라 말 불교의 선종 승려들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했다고 한다. 인도서는 하나의 철학 체계라 할 수 있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이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의 민간신앙인 도교와 결합하여 풍수지리를 탄생시켰다 할 수 있다. 무소유를 대표적 가르침으로 하는 불교가 도교와 만나 자손 대대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명당의 개념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현재 한국의 장례방식의 90% 정도는 화장이라고 한다. 매장 문화는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당신을 반드시 매장하라고 하셨으나 외아들인 필자의 결단으로 화장을 했고, 고인의 유지는 고향인 울산 땅에 묻히시는 것이었지만 경기도 소재의 공원묘지에 모셨다, 필자는 그 후 한동안 그로 인한 내적 갈등과 외적 압박에 시달렸다. 그런 필자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고자 산행을 같이하는 지인이 들려준 얘기가 있다.
필자의 지인은 자기 성씨의 종손이다.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던 부친께서 일찍이 작고하시는 바람에, 종손인 지인은 청소년 시절부터 종친회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의 얘기라고 한다. 종친회 모임을 경상북도에 위치한 한 종친의 멧돼지 농장에서 하던 때였는데, 그날은 선산에 묻힐 수 있는 종친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어서 그 자격에 대해 언쟁이 여느 때보다도 심각했다고 한다. 한참 언쟁 중에 누군가 “종손 입장 좀 들어봅시다”를 외쳤고, 그 때 이미 집안 어르신들이 건네시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킨 종손인 지인은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고 한다. 마이크를 잡은 지인의 입에서는 본인도 술 깬 뒤 놀랐을 정도의 말이 튀어 나왔다고 한다. “마, 사람은 공수래 공수거라 안 캅니꺼. 와 죽은 뒤에 묻힐 땅가꼬 싸울라 캅니꺼. 화장해가 뿌리뿌모 공평하다 아임미꺼.” 그러자 여기저기서 어르신들의 “우리 집안 망했다”는 곡소리가 나오는 한편, 40대의 종친 중에 술에 취해 “옳소” “종손 말이 맞다”는 호응이 튀어 나왔다. 격노한 어르신 한 분이 옆에 있던 40대 종친을 지팡이로 때렸고, 이에 격분한 이 40대는 홧김에 멧돼지 우리 문을 열고 멧돼지를 쫓아 버렸다. 어르신들은 젊은 종친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젊은 종친들은 멧돼지 잡으러 산으로 뛰어 올라가고, 신고받고 출동한 순경들도 멧돼지 잡는 데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지인의 종친회 어르신들 중에 자식들에게 화장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매장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산행을 하다 보면 산속의 묘들과 자주 맞닥뜨린다. 특히 잘 관리된 산소들을 보면 한편 부럽다는 생각도 물론 들지만, 현실적으로는 지금과 같이 계속 관리될 수 있을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장례 방식의 변화에도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영역에서도 갈등들이 있을 것이나 결국은 다음 세대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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