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14> 한 편의 풍속화를 보여주는 조선 후기 이용휴의 시

조해훈 고전인문학자 2023. 10.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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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앉아 아이 머리 땋고(婦坐慆兒頭·부좌도아두)/ 꾸부정한 노인은 외양간을 쓰네.

위 시를 읽으면 어릴 때 자라던 고향집의 한 풍경, 아니면 시골 외갓집에서 보던 일상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외양간을 빗자루로 쓰는 꾸부정한 시아버지는 아마 위 시를 지은 이용휴 자신일지 모른다.

자신이 농촌에서 살았기에 그의 시 속에 곤충 물고기의 다양한 이름까지 시어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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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부정한 노인은 외양간을 쓴다(翁傴掃牛圈·옹구소우권)

며느리는 앉아 아이 머리 땋고(婦坐慆兒頭·부좌도아두)/ 꾸부정한 노인은 외양간을 쓰네.(翁傴掃牛圈·옹구소우권)/ 마당에는 논 고둥 껍질 쌓여있고(庭堆田螺殼·정퇴전라각)/ 부엌에는 마늘 대궁 널려 있네.(廚遺野蒜本·주유야산본)

위 시는 이용휴(李用休·1708∼1782)의 ‘농부의 집(田家)’으로, 그의 문집인 ‘탄만집’에 들어있다. 이용휴는 이침(李沉)의 아들이자 성호 이익의 조카이다. 아들은 1801년(순조 1) 이승훈 권철신 등과 함께 순교한 이가환이다. 이가환은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의 천주교 영세교인인 이승훈의 외숙이다. 이용휴는 음보(蔭補)로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으며, 향촌(경기도 안산)에 은거하였다.

위 시를 읽으면 어릴 때 자라던 고향집의 한 풍경, 아니면 시골 외갓집에서 보던 일상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인지 가슴 속에서 아련한 무엇이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아, 내 어머니이고, 내 할아버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외양간을 빗자루로 쓰는 꾸부정한 시아버지는 아마 위 시를 지은 이용휴 자신일지 모른다. 아들은 들에 나가 일하고 있을 것이다. 마당에는 논에서 잡아와 먹고 버린 논 고둥 껍질이 수북하고, 우리가 흔히 ‘정지’라고 불렀던 부엌에는 마늘을 까고 남은 대궁이 수북하다. 물질적 삶이 개입되지 않아도 참으로 훈훈한 풍속화이다. 이용휴는 농촌의 이런 일상을 소재로 시를 많이 지었다. 자신이 농촌에서 살았기에 그의 시 속에 곤충 물고기의 다양한 이름까지 시어로 활용했다.

필자가 은거하는 지리산 화개동은 녹차의 본고장인 데다 화개동천(花開洞川) 계곡의 청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축 사육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고향인 대구 논공 갈실마을은 비슬산 자락 산촌이어서 아직 외양간을 두고 소를 키우는 집이 있다. 친척인 조건식(71) 형님도 집안에 소를 몇 마리 키운다. 조선 후기에는 평범한 일상을 한시의 중요한 소재로 활용한 작품이 많다. 화려한 수식이 없는 담박함이 오히려 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스무 자의 시에 이처럼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시인의 시적 능력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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