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45] 강제 결혼과 합의 이혼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2023. 10.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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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어느 나라에나 여성을 상대로 한 악습이 있다. 여자아이의 발을 비틀어 작은 신발 속에 꽁꽁 묶어두고 성장을 억제하는 전족(纏足)은 중국의 대표적 악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쌈’이라는 악습이 있었다. 밤중에 여자를 보자기에 싸서 납치한 뒤 강제 결혼하는 풍습이다.

보쌈은 우리나라만의 풍습은 아니다. 키르기스스탄에도 알라 카추, 즉 ‘잡아서 달아나기’라는 악습이 있다. 1994년 불법화되어 위반한 남자에게 징역형까지 부과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857년 이혼법이 제정되기 전 영국에서는 결혼보다 이혼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마누라 팔기’라는 악습이 생겼다. 이혼을 원하는 남편은 아내 목에 줄을 매고 장터에 나가서 경매를 부친다. 아내는 구매자가 나올 때까지 목에 올가미를 두른 채 우두커니 서 있는다. 경매가 끝나면, 팔린 여자, 산 남자, 그리고 구경꾼들이 태연하게 흩어진다. 낙찰되는 가격은 겨우 푼돈 정도다. 남편은 그 돈으로 개를 산다. 그리고 아내 목을 맸던 줄에 묶어 집으로 돌아간다. 토머스 하디가 쓴 ‘캐스터브리지 시장’이라는 소설의 첫대목이다. 19세기 초 영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영국의 ‘마누라 팔기’ 풍습에는 사연이 있다. 성격 차이로 갈라서려면, 이혼이 허용된 스코틀랜드로 가서 여생을 보내야 했다. 불륜이라도 저질렀다면 장터에서 군중에게 ‘스키밍턴(skimmington)’이라는 집단 괴롭힘을 받아야 했다. 그것이 두려워 자살하기도 했다. 마누라 팔기는 서민들이 합의 이혼을 매매 거래로 위장하는, 생활의 지혜였다. 모든 마누라 팔기는 철저하게 미리 짠 각본에 따라 진행됐다.

우리나라의 보쌈도 마찬가지다. 보쌈은, 1477년 과부의 재혼이 금지된 뒤 생활고에 허덕이는 과부의 재혼을 눈감아주기 위한 탈출구이자 연극이었다. 현대 윤리의 잣대로 보면 극악무도한 악습이지만, 그 뒤에는 말 못 할 사연과 민생고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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