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주한 대사 “이스라엘, 하마스 제거해도 가자 재점령 안할 것”

하정민 기자 2023. 10. 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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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 인터뷰
“하마스를 제거하더라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스라엘 또한 유능한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가자지구를 통치하기를 원합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조만간 하마스의 근거지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63·사진)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에 관한 일각의 우려에 선을 그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 것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토르 대사는 16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2005년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 측에 넘겼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지배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하마스에 그 통치권을 빼앗겼을 뿐”이라고 했다. 이후 하마스가 극단주의로 일관한 것이 이번 전쟁을 야기한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유능하고 효율적인 팔레스타인 파트너의 존재는 이스라엘에도 좋다”고 했다. 하마스는 물론이고 1935년생으로 아흔을 바라보는 마흐무드 압바스 PA 수반이 이끄는 현 체제로는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중동에서의 평화가 요원하다는 점을 에둘러 거론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마스에 강경 대응, 헤즈볼라에도 ‘도발 말라’는 메시지”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하마스, 민간인 학살로 명분 잃어… 인질 석방 위해 지상군 투입 필요
헤즈볼라 포함 2개 전쟁 배제 못해
딸-사위 등 가족 5명 직간접 참전

유대교 성직자(랍비) 부친을 뒀으며 공식석상에서 유대교 전통 모자 ‘키파’를 쓰는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16일 인터뷰 때도 키파를 착용했다. 책상 위에는 유대교 경전이 놓여 있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 “인질 석방 위해 하마스 압박 불가피”

토르 대사는 하마스가 가자지구 인근 크파르아자 키부츠(집단농장) 등에서 영유아를 포함한 민간인을 집단 학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며 “이미 하마스는 전쟁의 명분을 잃었다”고 규탄했다. 이후 하마스가 인형을 숨진 소녀처럼 꾸며 장례식을 치르는 허위 영상까지 유포한 것도 자신들이 명분에서 밀린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인터뷰 다음 날인 17일 바이든 대통령은 “18일 이스라엘을 방문한다”라고 밝혔다. 토르 대사는 이에 관한 추가 질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빠르게 타국 전장(戰場)을 찾는 것 역시 미국으로서도 하마스의 기습 공격, 민간인 학살 등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환영했다.

인터뷰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대사를 만나기 전에는 한국과 이스라엘 보안요원 양측의 점검을 거쳤다. 대사 집무실에서의 인터뷰 도중 곳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대사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이스라엘 보안요원은 기자에게 “집무실에서 나갔다가 대사가 돌아오면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토르 대사는 “전시(戰時) 상황”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진입이 불가피하다며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인질로 붙잡고 있음을 전 세계가 너무 빨리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약 200명에 이르는 인질의 빠른 석방을 위해 압박 전술이 필요하고, 지상군 투입은 그 일환이라는 얘기다. 이번 사태가 빨리 끝날수록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이 줄어든다고도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남쪽에선 하마스와, 북쪽에선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2개의 전쟁’을 동시에 벌이는 사태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토르 대사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나 발생한다면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하마스에 대한 강경 대응은 헤즈볼라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했다. 하마스보다 더 많은 미사일을 보유했고 이란 지원 또한 풍부한 헤즈볼라에 ‘도발하지 말라,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당신들이 원한다면 피하진 않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촉발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미국 중재의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는 타격받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두 나라 모두 이란의 공통 위협을 받고 있다”며 수교 시점이 미뤄질 수는 있으나 못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딸, 사위 등 가족 5명 직간접 참전 중”

토르 대사는 자신 또한 이번 전쟁의 당사자라고 했다. 1남 3녀와 사위까지 그의 가족 5명이 직간접적으로 참전하고 있다. 토르 대사는 “막내딸과 사위는 현역 군인으로 복무 중이며 특히 사위는 가자지구 인근에 배치돼 있다”고 했다. 복무를 마친 아들은 한국에 있다가 10일 급히 귀국해 예비군에 복귀했으며 큰딸은 법무부의 전쟁법 변호사, 영화 제작자인 둘째 딸은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뒤 대학까지 마친 토르 대사 역시 성인이 된 후 이스라엘에 귀국해 외교관이 됐다. 2년간 복무했고 미 시민권 또한 포기했다. 이런 결정에 유대교 성직자(랍비)였던 부친 영향이 컸다고도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로서 자녀의 참전이 가슴 아프지만 이스라엘인의 운명”이라며 “아이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내부 갈등이 안보 약화로 이어졌다는 자성론도 내놨다. 대법원의 기능을 대폭 약화시킨 사법무 무력화 법안의 강행과 찬반 양론으로 이스라엘은 올해 내내 극심한 분열을 겪었다. 그는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 사회 또한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단결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했다.

2020년 11월부터 대사로 재직 중인 그는 여러 차례 비무장지대(DMZ)와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했다고 했다. DMZ 지형이 시리아와의 영유권 분쟁지인 북부 골란고원과 유사해 “집에 온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지정학적 위험, 높은 교육열, 발달된 과학기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많은 공통점을 지녔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과 이스라엘은 각각 식민 지배와 유대인 대학살을 겪었지만 피해자에만 머물지 않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아픈 역사를 기억하되 역사에 잠식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희생자로만 규정하면 역사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독일이 이스라엘의 주요 교역국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토르 대사는 지난해 3월 대선 직후 당시 중국, 미국대사에 이어 주한 외교관 중 세 번째로 당선인 신분의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했다. 동갑이며 생일도 하루 차이인 윤 대통령과의 만남이 예정됐다고 모친께 알렸을 때 “너는 왜 대사밖에 못 됐느냐”는 농담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를 들은 윤 대통령 또한 크게 웃었다고 소개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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