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일해라절해라’ 하지 마라
청년세대는 진보적이며 구세대는 그 자체로 보수적이라는 가정만큼 허구적인 것은 없다. ―카를 만하임, <세대 문제〉
아들이 독립선언을 했을 때, 내심 걱정이 컸다. 22사단 GOP(일반전초)에서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청년전세대출을 알아보더니 학교 앞으로 짐을 옮겼다. 지레짐작, 맘껏 놀거나 여기저기 사회활동에 관심을 가질 거라 여겼다. 오월 광주학살에 분노해 거리와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엄마 아빠를 두었으니, 말릴 명분이 별로 없었다. 아들이 빠져나간 문간방을 치우며 그 자리에 아내와 나는 한숨을 채워넣었다.
‘청년은 진보적’이라는 허구
아들에게 별로 해줄 일이 없었다. 자취방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함께 비비고, 가끔 간다는 생맥줏집 주인과 인사도 나누는 일이 그럭저럭 정을 이어줬다. 아무튼 홀로서기는 성공한 것 같다. 복학 뒤 다섯 학기를 부지런히 보냈다는 것은 짐작이 아니다. 학기 말마다 보내오는 성적표로 이를 증명했고, 졸업 전에 취업을 이뤄냈다. 종종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청춘의 몸살을 앓고 간혹 작은 사고로 번지기도 했지만, 스스로 수습하는 성숙함도 보여줬다.
지난여름, 아들 회사 인근에 월세를 계약하고 “아빠가 못한 일을 해줘 고맙다”고 했다. 할머니가 무척 좋아하실 터였다. 대학 마지막 학기, 어머니는 수배 중인 아들을 찾아 인문대 138계단을 올라오셨다. 한 언론사의 입사원서를 건네주시며 여기만 들어간다면 소원이 없겠다 하셨다. 정의에 목마른 아들은 불효자였다. 취업은커녕 그해 겨울, 어머니는 갓 태어난 조카를 업고 서울구치소에 면회를 다니셔야 했다. 나에게만큼은 취업에 얽힌 이야기들 모두 눈물겨운 서사였다.
“현장을 존중하고, 노동자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 꿈은 엄마 아빠처럼 다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 대답한다. 작은 반성이 인다. 그래도 뭔가 다른 꿈은 없냐고 물었다. 사회정의, 남북관계 개선 같은 대답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입사한 기업의 임원이 되는 것. 대답은 단호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아차 싶었다.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아들에게 “너는 왜 싸우지 않니?”라고 물을 수는 없다. 아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일이다. “왜 꿈이 없니?” 역시 마찬가지다. 앞선 세대의 발자국이 과연 아들 세대가 가려는 곳으로 향했는지 되물어야 할 일이다. 장혜령 시인은 민주화운동으로 대의를 다했지만, 늘 부재했던 아버지를 소환해서 묻는다.
“왜 싸우지 않니?” 물을 수 없다
물러나라. 목적어가 없는 피켓을 들고 당신들은 불시에 흩어집니다. 그렇게 햇빛이 사라진 곳에서 어느 날 다시 눈을 뜹니까. 엎드려 손을 머리 위로. 명령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여전히 손과 발이 없는 감정을 연습합니까.// 바다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파도는 묻습니다.// 아버지,/ 나의 피는/ 검게 수직으로 고동칩니까. ―장혜령,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파도가 묻다’ 중
시인은 아버지의 ‘명령어로 이루어진 세계’를 벗어나 서 있고, 아들은 이제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세계에 서 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는 정의에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당대에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어느 정도는 진전을 이뤘고, 어느 정도는 그로 인해 다른 문제들이 야기됐다. 아들이 자기 삶을 찾아간다면,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건이 조성됐다면 비록 발자국이 희미해졌더라도 아버지 세대는 수고한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자신을 탓할 일이지 아들에게 정의롭게 살아라 타박할 일은 아닌 것이다.
아들은 젠더 문제로 누나와 얼굴을 붉히고, 친구들과 논쟁 끝에 동아리를 그만두기도 했다. 북한이나 난민 문제에는 또래와 비슷하게 보수적으로 열을 올리고, 청년전세대출의 이자가 급작스럽게 오르자 정부를 향해 진보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강의실 안에서의 경쟁이 치열한 것 같지만 친구들을 응원하고 취업을 축하하는 마음엔 별로 이기심이 엿보이지 않았다. 공대생이었지만 아빠의 인문학 이야기에 귀 기울여줬고 면접에 도움이 됐다는 칭찬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딱히 아빠의 생각을 따르지 않는 게 불편한 적은 없다. 시대와 함께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성장해가는 것만은 분명했다.
카를 만하임은 말한다. “청년들이 보수적일지, 반동적일지, 진보적일지는 현존 사회구조와 그 구조 안에서 청년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청년 자신들의 사회적 목적들과 지적 목적들의 촉진에 기여할지 안 할지에 달려 있다”고.(<세대 문제〉) 정치에 관심 가져야 한다, 투표해야 한다, 투쟁해야 한다(화염병을 들라는 말은 정말 끔찍하다), 이 모든 말은 기성세대가 멋대로 설계한 유토피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아들을 눕혀놓는 것과 같다. 자신의 세계를 자신이 살아가고, 느끼고, 개선하도록 용기를 주고 기꺼이 그 도전에 응전해야 한다. 아들에게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문재인 전 대통령의 졸업축사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청년에게는 모두 도전의 대상
청춘의 시간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제 청년 시절을 되돌아보면 희망이기도 하고 고통이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회의가 가득 찬 때도 있었습니다.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졸업장을 쥐고 막 교문을 나서는 여러분의 마음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하리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여러분이 맞이할 미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불확실합니다. 저 역시 여러분께 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청춘을 먼저 보낸 선배로서 여러분이 청년의 시간을 온전히 청년답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어떤 자세와 태도로 인생을 대하는지, 어떤 인생 경로를 걸어가는지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없는 길을 찾아 개척하고 도전하는 삶을 꿈꿀 수도 있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얼마든지 기성세대에 도전하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만은 꼭 가슴에 담아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유한대학교 졸업식 축사’, 2019년 2월21일
기성세대가 보수든 진보든, 청년에게는 모두 도전의 대상이다. 청년이 보수든 진보든, 한 세대 안에서 서로 다투며 조화를 이룬다. 오히려 이들을 가르는 것은 기성세대의 정치적 기대일 뿐이다. 아들은 텀블러를 사용하고 옳은 일에는 기꺼이 마음을 나눌 것이다. 자신이 개입하지 못하는 일에 선구자로 나선 친구가 있다면 시간을 보탤 것이다. 제사를 정성껏 지내면서 상 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릴 것이다. 용서할 것은 용서하면서 저항할 것에는 저항할 것이다. 아들은 그래도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고, 콘서트를 보러 다니는 일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살아서 꿈틀대야 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살아 있으므로 해야 할 일이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자행되는 곳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 ‘저자와의 인터뷰’
김남주, 문익환, 김근태 같은 존경하는 분들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참여하면서 늘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했다. 죄송스러웠다. 이만큼 마음을 쏟았던가. 얼마나 반항했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가. 그렇지만 나는 누구보다 무명인 아버지의 발자국을 찾고 있었다. “당신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개며 걸었다. 당신은 없고 당신은 보이지 않고 오직 이것만이 길이라는 듯. 지우면서 지워지면서 따라가는 걸음 있었다.”(장혜령, 위의 책, ‘새벽의 창은 얇은 얼음처럼 투명해서 2’ 중) 아들도 그럴 것이다, 지우면서 지워지면서.
무명인 아버지의 발자국을 찾는다
시대의 경험이란 피해갈 수 없다. 5·18이든, 세월호든, 촛불이든, 이태원이든 분노했다고 한 시대가 모두 같은 삶을 살아간 것도 아니다. 이래라저래라 할 것 없다. 앞선 세대가 그랬듯 자신들의 언어 안에 꿈과 색깔이 있다. 오직 오늘 내 발걸음이 중요하다.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독서: 지도자는 진지한 삶과 독서로 탄생합니다. 그의 말과 글에는 마치 수면 아래 빙산처럼 오랜 시간 다져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신동호 시인이 역대 대통령들의 독서가 어떻게 말과 글에 반영됐는지 좇아가는 글을 연재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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