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취업 못한 좌절 청년 포섭하는 하마스...분노를 노린다 [노석조의 외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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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규모 탱크 부대와 지상군 병력을 가자 지구(地區) 앞에 전진 배치해놓고 있고, 하마스는 성지인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로켓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예루살렘을 찾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다 달래보려 하고 있지만 이미 양쪽 모두 ‘피’를 본지라 분노를 쉽사리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이란을 비롯해 친이란 무장 정파인 레바논 헤즈볼라까지 이스라엘을 맹비난하며 참전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미번역 외서를 읽고 해제(解題)하는 국내 유일의 뉴스레터 ‘노석조의 외설’은 지난주 수요일 이스라엘 정치학 교수가 쓴 ‘디 에인절(천사) : 이스라엘을 구한 이집트 간첩’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번 주는 ‘지하 제국 : 미국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무기로 만들었나’가 예고돼 있었는데요. 가자 지구 사태가 한반도를 포함한 국제 정세와 세계 경제·금융권까지 흔들 정도로 커져 한 번 더 관련 이슈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지난주는 이스라엘 쪽 이야기를 한 만큼 이번에는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야기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습니다.
◇'하마스, 억눌려버린…'
급히 아마존 킨들에서 구해 읽은 책은 요르단 태생인 영국인 학자 타리크 바코니가 쓴 ‘하마스, 억눌려버린(Hamas Contained)’입니다. 컨테인드(contained)는 억제, 통제됐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책을 읽어보니 외부의 힘에 꾹 눌린 뉘앙스를 담는 게 취지에 맞을 것 같아 ‘억눌려버린’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부제는 ‘팔레스타인 저항의 부상과 무위(The Rise and Pacification of Palestinian Resistance)’입니다. 2018년 5월 15일 미 스탠퍼드대 출판부가 펴냈습니다.
바코니는 영국 국적자로 영국 킹스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 컬럼비아대에서 방문학자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아랍계이어서 그런지 하마스의 폭력적 저항 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이들이 왜 이러는지 어떤 상태인지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이들을 들여다보려고 시도합니다. 내재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미국 등 서방이 규정하는 테러행위를 하는 것은 사실이고 근절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를 비난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이들이 왜 이렇게 뒤틀려 극단적 행위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자 곳곳엔 ‘하마스 대원 모집 포스터’
바코니는 가자 지구에 들어가 상당 기간 지내면서 주민들의 삶을 살펴보고 하마스 대원을 포함해 많은 이들을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현지 조사를 한 것입니다. 처음 그의 눈에는 가자의 삶도 외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승용차와 버스가 먼지를 휘날리며 다녔고, 학교는 허름했지만, 교실에 학생들은 가득했습니다. 빵집과 찻집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도 여느 다른 아랍도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많은 이들이 삶에 대한 비관에 빠져 있는 걸 알게 됐습니다. 거리 곳곳에 하마스의 깃발과 함께 대원 모집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는 겁니다. 특히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포스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마스 하계 훈련 캠프가 열렸으니 어서 오라고’고 말이죠.
그는 마침 그의 운전사가 10대 학생이어서 “졸업하면 뭘 할거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가자에서는 이렇게 10대 학생들이 택시 운전 등을 하며 생업에 종사하며 주경야독한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 10대 운전기사는 하마스의 군사 조직인 ‘이즈 앗 딘 알 카삼’에 가입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접었지만, 그의 친구들 일부는 지원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바코니가 “네 친구들은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더니 “유대인들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답했답니다. 하지만 이 운전기사를 비롯해 그의 친구들은 정작 유대인을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이 6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 등으로 둘러싸고 외부 출입을 환자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티비나 인터넷에서는 유대인의 모습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마주한 적은 없는 것이죠.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북한 청소년이 대한민국 국민을 선전 매체 말고 실제 만나본 적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대신 이들 가자 청년들은 가자 지구 상공에서 이스라엘 공군의 F-16 전투기가 폭탄을 떨어트려서 건물이 폭파되는 광경은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가자 지구가 이스라엘에 봉쇄된 것은 2007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특히 이스라엘 사람을 경험해보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이스라엘인’ ‘유대인’은 ‘F-16′과 동의어 같은 존재가 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F-16′에 맞서 싸우는 것은 성스럽고 값진 대우를 받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가자 지구 실업률은 45%에 육박하고, 주민 대부분은 국제사회와 인권단체가 제공하는 식료품 등에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는 이집트와 국경을 통해 밖으로 나가 외화 벌이를 해 가자 지구로 돈을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바코니의 책을 읽으면서 2016년 제가 예루살렘 특파원으로 있을 당시 에레즈 검문소를 통해 가자 지구에 들어가 현지인의 집에 머물며 취재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현지인 집에서 식사하고 양치질을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물을 틀었더니 수돗물이 소금물과 같이 짰습니다. 상하수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물이 물 같지 않은 물이었고, 생수는커녕 양치질을 할 수도 없는, 했다가는 치아가 다 상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봉쇄 상태이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비싼 생수를 사서 양치질을 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 팔레스타인 편을 드느냐고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마스와 가자 지구 일반 주민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마스는 미 정부와 유럽 다수 국가가 지정한 테러단체이지만 가자 주민에 대해서는 우리 반기문 사무총장이 계셨던 유엔을 비롯해 절대다수의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이렇게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으로 억눌리고 비틀린 생각을 갖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분노하라” “성전을 벌이자” “이스라엘에 저항해 우리의 존엄을 찾자”면서 하마스 대원으로 포섭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훈련 시켜 극단적 강경 무장 투쟁을 벌이겠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마스가 천벌을 받을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릇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여 분노하라”
그렇다면 하마스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요? 이들은 왜, 대체 왜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이스라엘 기습전을 펼친 걸까요? 이스라엘은 병력 18만명 정도로 작지만 1970년대 말 메르카바 탱크를 개발하고 군사정찰위성에 핵무기까지 보유한 세계 최강국 중 하나로 꼽히는 나라인 반면, 하마스는 대원수 2만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대답은 하마스의 조직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마스는 정식 명칭이 아랍어로 ‘하라카트 알 무카와마 알 이슬라미야(이슬람 저항 운동)’입니다. ‘하라카트’의 ‘ㅎ’ 같이 이름에 있는 각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약어가 ‘하마스’입니다. 약어이지만 ‘하마스’란 단어는 아랍어로 ‘열정’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마스를 만든 주체는 이집트의 이슬람주의 운동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입니다. 무슬림형제단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슬람 국가가 세워져야 한다며 이집트뿐 아니라 중동 전역에서 활동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1987년 일종의 하부 조직으로서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에 만든 것입니다.
‘저항’. 하마스는 지금 이스라엘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와 외교 관계를 맺고 더 나아가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도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가자 지구는 첨단 과학 장비와 군사력을 앞세워 완전히 통제해 별문제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고요. 아이언돔이라는 방공망을 구축해놓았고, 실제 지난 10년 가까이 아이언돔을 수십발의 하마스 로켓을 성공적으로 요격 방어해왔습니다.
이렇게 하마스라는 골칫덩어리는 말라 죽어가는 것만 같았고, 이스라엘은 과거 적국이었던 아랍 국가들과 관계를 트며 하나 둘 친구로 만들었다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좋은 파티가 펼쳐지는 곳에 하마스는 산통을 완전히 깨버리기 위해 파티장 유리창에 시꺼먼 짱돌을 던져버린 것이 이번 기습 공격이라는 것입니다.
하마스는 우리는 죽지 않았다, 우리의 저항은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이스라엘에 그리고 전 세계에 특히 이슬람권, 아랍 세계에 알리고자 이번 사태를 일으켰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절대적 강자인 이스라엘에 의해 같은 아랍 민족이자 이슬람 신자인 무슬림들이 처참하게 희생되는 광경이 유튜브 라이브로 생생히 중계되면서 이슬람·아랍 세계의 분노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대규모 지상군을 이끌고 가자 지구를 군홧발로 짓밟고 메르카바 탱크와 전투기 폭격으로 지역을 초토화하기를 내심 바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도 자칫 당초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자신들이 어린 아이와 여성 등 무고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인질로 잡아끌고 간 테러범죄집단인 하마스에 비해 오히려 도덕적인 비난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지 않을까 고심이 될 것입니다.
어떤 비극과 분쟁을 다른 사물이나 사연에 비유한다는 건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둘 중 누가 먼저 잘못했느냐가 꼭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처럼 뱅글뱅글 도는 답 없는 문제 같다는 뜻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책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에서 이·팔 분쟁을 설명하기 위해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한 부분을 소개했습니다.
-”벅, 그를 죽이고 싶었니?”
-”응, 정말 그랬어.”
-”그가 너에게 어떤 짓을 했는데?”
-”그가? 그는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럼 왜 그를 죽이고 싶었니?”
-”왜냐고? 원한 때문이지.”
-”원한이 뭔데?”
-”원한이란 바로 이런 거야.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투다가 죽었어. 그러면 죽은 사람의 형제가 죽인 사람을 죽이지. 그다음에는 죽은 사람들의 형제들이 서로 죽이지. 그러면 양쪽 형제들이 또 서로 맞붙어서 서로를 죽인다 말이야. 이번엔 사촌들이 끼어들지 않겠어? 그러다 결국 다 죽게 되면 원한은 없어지는 거야. 하지만 빨리 끝나지 않아. 오랜 세월이 걸리지.”
-”벅, 너 그 원한도 오래된 거니?”
-”글쎄, 음 생각해볼게. 30년 전에 시작된 거 같아. 무슨 문제가 있어서 소송전이 벌어졌는데. 결국 여기서 진 사람이 갑자기 열받아서 소송에서 이긴 사람을 총으로 쏴서 죽여버린 거야.”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데? 땅 문제였던 거야?”
-”음 글쎄, 아마도…. 에이 나도 잘 모르겠다.”
-”음 근데 말이야. 그러면 그 총을 쏜 사람은 누구였어? 그랜거포드? 아니면 쉐퍼드슨?”
-”ㅎㅎ 내가 어떻게 알아? 아주 오래된 일인데 말이야”
-”아무도 몰라?”
-”아 맞다, 아마 아빠는 알 거야. 아니면 뭐 좀 나이 많은 다른 분들이 알거나. 근데 그분들도 지금은 정확히 잘 모를 거야. 뭐 때문에 싸우게 됐는지…”
원한의 악순환. 이·팔 문제뿐 아니라 어느 분쟁이란 건 어쩌면 이렇게 원한의 악순환에 빠진 것인지 모릅니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또다시 피해자가 새로운 가해자가 되며 피가 피를 부르는 그런 악순환 말입니다.
이번 가자 사태는 어떻게 끝날까요? 확전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3차 대전이 되는 것 아니냐, 여러 관측이 있는데요. 저는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 패배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 지구상에 같이 사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상 ‘노석조의 외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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