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마귀에 씌었나...괴물악어들의 광란의 짝짓기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 2023. 10.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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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바다악어들 헬기 저공비행에 집단으로 성적 흥분 상태 빠져
헬기 주파수가 짝짓기 본능 자극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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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몸통이 어둠 속에서 미끄러져 나와 입술 없는 주둥이를 들어올리고 울부짖는 동안 하늘은 금을 칠한 듯 번쩍였다.

천둥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져 마치 생물체의 모든 뼈와 힘줄을 통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섬뜩한 이중창이었다.

어떤 종류의 부름과 응답의 후렴이라기보다는 자연과 그 자식 사이의 외침에 더 가깝다.

큰 황소의 허리는 모닥불을 피어오르고 있었다.

튀니지 제르파 공원 내 악어 테마 파크에서 기르고 있는 한 무리의 나일악어. /Djerba Explore Village

얼마 전 보도된 호주 ABC뉴스 기사의 한 부분입니다. 뉴스 원고라기보다 진득한 성애소설의 한 장면묘사 같아요. 온갖 미사여구와 비유가 총동원된 것으로 봐서 작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어마무시한 장면에 입이 떡 벌어졌던 게 분명해요. 도대체 무슨 장면을 봤길래 이렇게 휘황찬란한 글을 쓴 걸까요? 바로 ‘악어의 집단 흘레’입니다. 그냥 암수 한쌍이 은밀하게 붙는 흘레가 아니라 수십마리의 악어들이 몸뚱아리를 부둥키며 굉음을 질러대는 집단혼음의 현장이 준 어마어마한 스펙터클을 표현한 겁니다. 금처럼 번쩍이는 하늘, 잔인할 정도의 으르렁거림, 뼈와 힘줄을 진동시키는 강렬한 움직임... 이 악어들이 떼로 흘레붙던 현장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미국 텍사스 동물원에서 사육하는 미시시피 악어 수컷이 암컷을 찾는 번식기 특유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Texas Zoo Facebook

이달 초 호주 퀸즐랜드의 쿠라나 악어농장으로 가봅니다. 1981년 설립된 이 농장은 무려 3000마리의 악어를 치고 있습니다. 본업은 질 좋고 튼튼한 고급 악어가죽 생산이지만, 악어 생태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색다른 일로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악어들의 벌이는 광란의 집단 짝짓기예요. 이곳에서 기르는 악어는 전세계 모든 악어 종류를 통틀어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납기로 유명한 바다악어(saltwater crocodile)입니다. 민물과 짠물을 오가는 습성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마치 바다에서만 살아가는 해양괴물처럼 오인되는 놈이기도 하죠. 호주와 동남아시아에 분포하고, 이따금씩 발생하는 끔찍한 식인사건의 범인으로 종종 등장합니다.

짝짓기 중인 미시시피 악어 한 쌍. /Mike Godwin Flickr

이 집채만한 바다괴물들이 눈을 흐느적거리고 굉음을 질러내며 이성과 거칠게 부비부비를 하면서 꼬리와 꼬리를 맞대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어쩌면 소돔과 고모라의 거대 파충류 버전이 이렇지 않을까요? 망측하면서도 치명적이고, 기괴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사람 내면에 숨은 관능과 관음의 본능을 끄집어내기 딱 좋은 장면입니다. 이 스펙터클은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있던 악어들을 광란의 난교장으로 이끌어주는 최음제가 있습니다. 바로 헬리콥터 소리예요. 그것도 쌍발헬기의 대명사 치누크가 저공비행을 하면서 내는 투다다다다다닥 헬기 소리입니다.

짝짓기 태세에 돌입한 미국 플로리다 서식 미시시피 악어 암컷과 수컷. /WFLA 홈페이지

농장이 위치한 곳은 군 훈련 루트에 있습니다. 조종사들에게는 방향을 정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죠. 특히 자국국토가 워낙 작아 마땅히 훈련할 곳이 없는 싱가포르군이 호주정부와 협정을 맺고 치누크를 활용한 공습훈련 코스로 주기적으로 찾는 곳이죠. 그런데 수천마리 악어가 밀집해있는 모습은 헬기를 탄 군인들 눈에도 이채로웠나봐요. 그래서 이곳에 저공비행을 하고, 휴대전화를 꺼내악어들을 화면에 담으려 했어요. 여기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시작됩니다. 치누크 헬기가 저공비행으로 악어농장 수면을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별안간 수컷들이 떼로 발광하기 시작합니다.

지난 2010년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어거스틴 악어 농장에서 바다악어 암수 한쌍이 짝짓기 하는 장면. /Daron Dean. The St. Augustine Record

수면에서 고개를 쳐들고 그르렁거리며 자신의 몸이 더할나위 없이 불끈 달아올랐음을 알립니다. 사람 귀에 들릴만한 이 우렁찬 효과음과는 별개로 이 파충류 족속들만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물살을 파르르 떨면서 암컷들을 자극합니다. 수컷들의 격렬한 몸짓은 계속됩니다. 주둥이와 코를 수면 밖으로 내밀고 공기를 힘껏 밀어내며 갸르르르 거품을 만들고 몸을 최대한 둥글게 구부립니다. 영락없이 욕망과 본능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강렬한 냄새가 풍기는 찐득한 사향을 배출합니다. 이 기름기 가득한 사향이 수면위를 덮으면서 순간적으로 무지개 무늬가 아롱아롱 피어오릅니다.

악어들을 집단적으로 성적 흥분 상태로 빠뜨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미군의 헬기 '치누크'. /미국 육군

무아지경일까요? 몽환지경일까요? 넘쳐나는 테스토스테론을 견딜 수 없는 수컷들의 몸부림에 암컷들도 본격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길게는 8m까지 나가는 거대한 몸뚱이들이 마침내 거사를 치를 준비를 합니다. 늪의 제왕 악어의 용종(龍種)이 생산되기 일보직전입니다. 두 괴물이 까끌까끌한 비늘로 덮인 배와 등을 맞대고 코를 부비면서 서로를 탐닉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전광석화 같은 찰나 총배출강(파충류에서 배설과 생식을 모두 하는 기관)을 맞대고 씨를 주고 받습니다. 몸을 부둥킨 암수의 몸짓은 길게는 반나절까지 이어져요. 눈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스펙터클 이상의 섬뜩함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이번 상황과 별개로 악어의 짝짓기 장면을 근접 촬영한 동영상(TULSEE Youtube) 한 번 보실까요?

결국 농장의 악어들에겐 헬기소리가 최음제이자 비아그라이자 엑XX시인 셈입니다. 도대체 왜 헬기소리는 악어농장을 광란의 난교장으로 만든 것일까요? 영국 울버햄프턴 대학교의 파충류학자 마이크 오시아 박사는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 인터뷰에서 크게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합니다. 첫째, 저공비행 치누크 헬기소리가 큰 비를 몰고 오는 천둥번개 사운드와 주파수가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악어의 신체에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낮은 소리와 주파수를 탐지할 수 있는 기관이 있고, 이 탐지기관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미세한 변동을 탐지하며 적절힌 타이밍에 신진대사를 이행할 수 있도록 설계돼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의 천둥번개는 악어의 흘레 촉진제 역할을 해왔어요. 그건 큰 비가 퍼부을 때 번식을 마쳐야 새끼들의 생존율을 높일 수가 있다는 것이죠.

미국 플로리다에서 왜가리가 새끼 미시시피 악어를 부리로 물어 삼키기 직전의 모습. /Shellie Gilliam Facebook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막 불어오기 시작할 때 알을 부화시켜야, 새끼들이 폭우에 휩쓸려가는 타이밍을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적수가 없는 늪지의 제왕 악어이지만, 알과 새끼 때는 도마뱀, 왜가리, 고양이 등 숱한 천적들에게 잡아먹히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천둥번개가 우르릉쾅쾅 내리칠 때 성적 본능이 폭발해 바로 흘레붙을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설계돼있는데, 공교롭게도 낮게 뜨는 치누크 헬기의 소리를 탐지한 수컷 악어들이 집단적으로 성욕이 솟구치는 흥분상태에 돌입한다는 것이죠.

악어중 세계최대종인 바다악어의 이빨. 크로커다일은 앨리게이터와 달리 이빨이 삐쭉 삐져나와있다. /Australia Zoo

또 하나의 가설은 헬기가 내는 진동음이 수컷들의 경쟁 심리를 부추겼다는 겁니다. 종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악어는 영역다툼과 수컷들의 짝짓기 경쟁이 치열합니다. 번식철이 되면 더 많은 암컷들에게 자신의 씨를 뿌리기 위해서 수컷들간에 치열한 서열 싸움이 벌어지죠. 이 때 으르렁대거나 물을 철썩철썩 튀기는 소리 등의 주파수가 헬기의 소음과 빼닮을 수 있다는 거예요. 투쟁심으로 불끈 솟아오른 악어들이 상대방에게 기회를 내줄세라 동시다발적으로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입니디만, 정말로 그럴 법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일악어가 사냥한 얼룩말을 '데스롤' 방식으로 조각내 먹고 있다. naturematata. everwild_africa instagram

헬기가 접근할 때마다 거대한 난교파티장으로 변하는 상황은, 인간이 악어라는 피조물에 대해 아는 건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함을 보여줍니다. 뱀·도마뱀·거북과 함께 파충류 4대 파벌을 형성하는 악어는 포악한 성질과 킬러 본능 등을 감안하면 단연 원탑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파충류에서는 아주 드물게, 새끼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흘레붙을 때 수컷들의 치열한 영역다툼과 거칠면서도 매혹적인 암컷과 수컷의 몸사위, 몸에 뜨끈한 피가 흐르는 젖먹이 짐승을 연상시키기도 해요. 하지만 살아있는 먹잇감을 특유의 죽음의 회전, 데스롤로 공중분해시킨 뒤 뼈와 뿔까지 덥석 삼키는 포식자의 면모는 단순한 공포 이상의 섬뜩함을 자아냅니다.

남아프리카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나일악어 한 쌍이 짝짓는 모습이 포착됐다. /Ed & Liz Harris

난교파티의 주인공 바다악어는 악어 왕국에서 ‘킹 오브 더 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로코다일·앨리게이터·카이만·가비알 등 악어류 4대 파벌가운데 가장 성질이 드세고 잔혹한 크로코다일에 속하는데, 덩치나 피지컬 파워 면에서도 다른 악어류를 완벽히 압도합니다. 역시 크로코다일의 한 종류로 아프리카 늪지를 장악하고 있는 나일악어 정도가 라이벌이 될 수 있을지 몰라요. 기후변화나 돌발적 사건으로 바다악어와 나일악어 사이에 교배가 일어나 혼종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세요. 역사상 최강의 악어 하이브리종의 탄생! 생각만해도 오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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