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지원책 살펴보니…중국산 '저가 EV' 견제 분주
자국 전기차 산업 '보호주의' 강화
전기차 시대 전환 앞당기는 정책도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세계 각국이 전기자동차(EV)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 중인 가운데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정책 카드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를 국가 차원에서 견제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8월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는 전년 동기 대비 41.3% 증가했다. 업체별 판매 대수를 보면 중국 비야디(BYD)가 87.4% 증가한 183만9000대를 팔아 21.1%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미국 테슬라(62.5%↑, 117만9000대 판매) △중국 SAIC(20.4%↑, 65만4000대 판매) △독일 폭스바겐(26.4%↑, 59만3000대 판매) △중국 지리(45.6%↑, 50만9000대 판매)가 뒤를 이었다. 상위 1~5위 중 3개 사가 중국 업체인 셈이다.
중국산 전기차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놀란 주요국들은 직접적으로 견제 카드를 마련했거나, 마련하는 중이다. 최근 한국자동차모빌리티협회(KAMA)가 발표한 올 3분기 '국가별 EV 관련 주요 정책 현황' 자료에 따르면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는 저가 중국산 전기차 수입에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지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EU, 중국산 전기차 '징벌적 관세' 부과 여부 조사
중국에서 수입되는 전기차는 EU 지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보다 약 20%가량 가격이 저렴해 빠르게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EU 집행위는 중국의 원자재 및 배터리 가격, 특혜 대출, 저렴한 부지 제공 등 불공정 보조금 가능성을 폭넓게 검토해 EU 표준세율 10%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할지를 최장 13개월에 걸쳐 검증할 계획이다. 추가 관세 부과 대상엔 BYD 등 중국 업체뿐 아니라 테슬라·BMW·르노 등 중국에서 생산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도 포함됐다.
프랑스는 내년 1월 1일부터 EV 보조금 지급 방식을 개편한다.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이 차종별로 생산부터 프랑스 현지 수송까지 전 과정의 탄소 배출량을 반영한 '환경 점수'를 매겨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내년부터는 유럽에서 생산되지 않은 EV는 보조금을 거의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편안은 사실상 중국산 EV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연간 10억 유로(약 1조4300억 원) 규모로 EV 구매자에게 5000∼7000유로(약 713만∼999만 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고 있는데, 전체 보조금의 3분의 1을 중국산 EV 구매자가 지원받고 있다.
이탈리아도 저가 중국산 EV 수입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잠재적으로 중국산 EV를 견제하기 위해서 프랑스와 유사한 EV 보조금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다수 중국산 EV는 보조금 없이도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가격 3만 유로인 중국 SAIC의 'MG4'는 시작 가격 3만8000유로인 르노의 동급 'Megane'이 500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받아도 더 저렴하다.
일본은 전기차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전기차용 배터리와 반도체의 생산량에 비례해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는 '전략물자 생산 기반 세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유사한 제도로, 경제·안보 강화와 탈탄소 등과 관련된 전략 제품의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브라질은 전기차 수입 관세 면제를 종료하고, 앞으로 3년에 걸쳐 35%로 인상할 방침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전기차 업체에 자국산 부품을 사용하도록 지시하며, 중국 기업 중심의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9월 1일 발표한 '자동차 산업의 착실한 발전을 위한 작업계획(2023~2024년)'에는 중국산 부품 사용률에 대한 수치 목표가 제시돼 있으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해당 업체에 벌칙이 부과될 수 있다.
◆스웨덴·영국·독일·한국, 전기차 보급 확대 박차
이외에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을 앞당기기 위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공기질을 개선하고 교통 소음을 줄이기 위해 2025년부터 도심의 20개 블록에 걸쳐 환경 구역을 도입해 휘발유·디젤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할 예정이다. 이에 스웨덴 운송 부문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스톡홀름은 이 조치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교체하는 속도가 가속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은 내년(2024년)부터 무공해 자동차(ZEV) 판매 의무화를 추진하고, 가솔린·디젤 자동차의 신차 판매 금지는 2030년에서 2035년으로 연기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 연간 2500대 이상 판매하는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는 2024년에 판매 대수의 최소 22%를 ZEV로 판매해야 하며, 이 의무화 비율은 2026년 33%, 2028년 52%, 2030년 80%, 2035년 100%로 상향된다.
독일은 전기차 충전소 확장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독일 정부는 전기차 충전소를 늘리기 위해 최대 9억 유로의 보조금을 배정했으며, 전체 주유소의 80%가 최소 150kW의 전기차용 급속 충전기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전기차 120만 대, 공공충전기 9만 대를 2030년까지 각각 1500만 대, 100만 대로 확대하는 게 독일 정부의 목표다.
우리 정부도 전기차 보급 촉진 및 내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달 25일 올해 말까지 전기차의 차량가격 할인 폭에 따라 국비보조금(기본가격 5700만 원 미만 전기승용차 대상)도 상향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대 지급 가능액은 종전 680만 원에서 최대 780만 원까지로 최대 100만 원을 더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개인사업자는 물론 지자체 보조금 이력이 있는 법인도 한 번에 여러 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환경부는 한국환경공단, 국립환경과학원 및 관련 협회 등이 참여하는 '전기차 보급 촉진 특별대책반'을 구성해 전기차 시장동향과 지원 확대 방안의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향후 전기차 보급 정책 방향을 설정할 때 반영할 계획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전기차 수요 정체에 대응해 정부가 국내 전기차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전기차 보급을 가속할 수 있도록 전기차 업계와 지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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