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광주 정율성 사업, ‘도시 마케팅’ 일환으로 수용해야

박호재 2023. 10. 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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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경제 활성화 위해 이념보다 실리 택한 노태우 정부 '신 북방정책‘ 되돌아볼 때

광주 광역시와 보훈처가 '이념 논쟁'에 휩싸인 가운데 기념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중인 광주 정율성 생가터./더팩트 DB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로마의 대제국 건설은 남달리 용맹한 병사들의 공적이기보다는 경제부국이 이뤄낸 성취라고 보는 게 맞다. 방대한 점령지 곳곳에서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막대한 군비를 운영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경제사가들은 로마의 부국강병을 지탱했던 제도로 콰이스토르(Quaestor)를 주목하곤 한다. 재무회계관이었던 콰이스토르는 정치가를 지망하는 로마의 젊은이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등용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재무를 담당하는 것도 콰이스토르의 역할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속에서 콰이스토르는 대책 없이 융통성 없고 깐깐한 인물들로 묘사된다. 이런 일화가 등장한다. 한니발의 공격을 눈앞에 둔 로마군 진영에 가서 총사령관이 스키피오에게 군비를 지나치게 낭비한다고 까탈을 부리는 장면이다.

막강한 적의 침략으로 제국의 흥망이 걸린 전쟁에 나선 사령관에게 돈 씀씀이를 따져 물었으니, 콰이스토르라는 직책의 직업정신이 얼마나 냉혹할 정도로 철저한 것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또한 정치입문 초짜 청년 관료에게 깐깐하게 돈 관리하는 일부터 맡게 했던 로마의 정치인 양성 시스템도 의미심장하다.

결국 이 같은 로마의 ‘경제 제1주의’ 국가운영이 제국 로마를 이룬 토대가 됐을 법도 하다. ‘경세제민’을 넘어서는 통치철학은 결코 없다는 점을 로마인들은 교훈하고 있는 셈이다.

북방정책을 추진하던 고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92년 8월 24일, 정부는 한중수교와 함께 대만과의 단교를 공식 발표했다. 이날 오후 4시 명동에 있던 주한 대만 대사관은 눈물 속에서 마지막 국기 하강식을 치렀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일국주의 이념을 외교원칙으로 세우면서 수교국들을 강제했기 때문이다. 울분에 가득 찬 대만 국민들은 한국을 배신자라 질타했으며, 그 후 한동안 양국 관계는 냉랭했다. 2004년 9월에야 항공협정이 체결됐고 국적기 정기항공편 운항이 재개됐을 정도다.

노태우 정부는 왜 오랜 우방인 대만을 버리면서까지 다수 국민들이 경원시했던 공산주의 체제 중국수교를 추진했던 것일까. 남‧북한 관계개선과 북방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대 공산권 포용정책의 일환이었다. 한중수교는 이념보다는 실리를 취한 노태우 정부 신외교정책의 화룡정점이었던 것이다.

이후 대만도 증오심에만 갇혀있지 않았다. 수출산업 중심국가인 대만은 국제교류를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나의 중국’ 외교이념이 가로막은 장벽을 대만은 도시와 국가 혹은 도시와 도시 간의 국제교류로 깨쳐나갔다. 대만 정부가 아닌 타이페이 시를 중심으로 한 자국 도시들을 외교의 플랫폼으로 활용한 것이다.

광주의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을 두고 정부와 광주광역시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광주시는 대중국 문화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도시 마케팅’ 의 일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고 정부는 나라를 침략한 적대국 공산국가에 부역한 인물의 기념사업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맞서고 있다.

세계는 지금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될 정도로 도시의 역할과 역량이 중요시되고 있다. 이에따라 ‘도시 마케팅’이 정부 관광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를 위해 각 도시들은 획일화된 정부 시책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목표와 방향을 수립하고 도시 브랜드 가치 창출을 위해 세계 도시들과 경주하고 있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유커를 겨냥한 광주의 정율성 기념사업을 정부는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큰 시각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정율성 사업을 폐기하고 국가가 얻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한 국면이다.

보수 진영도 이념보다 실리를 취한 노태우 정부의 ‘신 북방정책’의 맥락을 돌이켜 볼 때이다. 광주의 정율성 사업을 오히려 근래 매끄럽지 못한 대 중국 관계의 긍정적인 실마리로 활용해 볼 여지도 적지 않다고 본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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