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학세권과 초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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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단지 거주하는 공간을 뛰어넘어 강남·강북이냐부터 시작해 여전히 아파트 평수 크기가 성공의 척도로 인식될 정도다.
교통·편의시설 등 거주 여건이 아닌 학원·학교에 따라 집값이 형성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어린 학령기 자녀를 둔 이들이 선호하는 집은 단연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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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우리에게 친숙한 고사다.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유독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세계 최고인 한국 부모들에겐 오랫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져 왔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편중돼 있지만 이마저도 교육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강남 8학군, 대전시민(대치동 전세 사는 주민) 등 교육과 관련된 신조어가 넘쳐난다. 교통·편의시설 등 거주 여건이 아닌 학원·학교에 따라 집값이 형성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학세권은 인근에 유치원과 학교, 학원 등 교육시설이 밀집된 곳을 일컫는 신조어다. 국어사전에까지 실렸을 정도다. 서울의 강남, 중계동을 비롯해 지방에서는 대전 둔산동, 대구 범어동, 구미 도량동 등이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대표적 학세권이다.
올해 전국 분양시장을 30∼40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입자 총 27만8974명 가운데 14만7701명이 30∼40대였다. 전체 매입자의 52.94%에 달한다. 결혼이 늦어지면서 어린 학령기 자녀를 둔 이들이 선호하는 집은 단연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다. 올해 전국 분양 단지 가운데 1순위 청약통장 경쟁률 상위 9곳은 반경 500m 이내에 초등학교를 둔 곳이다. 초등학교가 인접해 법적으로 유해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 등하교 과정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아 사고위험도 적다. 맞벌이 부부에겐 안성맞춤이다.
물론 집의 가치를 매기는 데 중요한 건 여전히 역세권·초역세권으로 지칭되는 입지다. 하지만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 되다 보니 생활의 편리성이나 효율성을 따져야 할 집 선택의 조건이 주변에 학교가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소아과 대란 등의 영향으로 ‘병세권’이라는 단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래저래 부모들의 고민만 깊어간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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