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서정보]장례비 800만 원 남기고 떠난 모녀… 상속포기제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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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에 시달린 모녀가 목숨을 끊는 비극이 16일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80대 노모 A 씨와 50대 딸 B 씨는 17층 집에서 투신했다.
B 씨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A 씨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으로 월 110만 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2019년 사망한 A 씨 남편이 남긴 3억 원가량의 빚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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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상 상속받을 재산보다 빚이 많을 경우 상속의 포기나 한정승인을 택하면 빚을 더 갚지 않아도 된다. 한정승인은 물려받은 재산 내에서만 빚을 갚는 것이다. 상속 포기 등은 상속 개시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기간 내 하지 않으면 ‘단순 승인’으로 자동 간주돼 재산과 채무를 모두 상속하게 된다. A, B 씨는 나중에야 상속 포기를 알게 됐으나 이미 신고 기한이 지난 후여서 계속 빚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빚 상속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별거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겐 큰 재앙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지난해 8월 어머니와 두 딸이 가난과 지병으로 비극적 죽음을 맞은 ‘수원 세 모녀 사건’도 그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빚 상속 때문이었다. 그들은 2020년 숨진 남편이 오래전 사업 부도로 남긴 빚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 왔다. 그래서 동사무소에 신고한 주소와 다른 곳에 살면서 기초생활수급이나 긴급복지 혜택 등을 전혀 받지 않는 등 세상과 단절돼 살았다. 적어도 남편 사망 후 상속 포기를 했으면 빚 문제만큼은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를 모르고 사망신고도 하지 않았다.
▷미성년자들도 상속 빚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민법 개정 이전만 해도 미성년자들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3개월 내 신고’라는 상속 절차를 거쳐야 했다. 법적 대리인을 통해 절차를 밟지 못한 미성년자들은 사망한 부모나 조부모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졸지에 빚쟁이가 된 미성년자들은 사회생활을 하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언론의 문제제기 이후 정부와 국회는 성인이 되고 난 뒤 한정승인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키긴 했다.
▷광주 모녀는 유서와 함께 마지막 관리비 40만 원과 장례비 800만 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끝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 사람들이 상속 포기라는 법 절차를 몰라 비극을 맞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가 미성년자 상속제를 개선한 것처럼 취약계층의 빚 상속을 해결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사망신고 시 동사무소에서 빚 상속에 대한 안내라도 충실히 해주면 비극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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