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자식 사랑과 교권침해…그 뒤엔 ‘유전자 예속’ 못 벗어난 부모[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부모는 왜 자식을 돌보는가’라는 문제를 유전학과 수학으로 풀어낸 ‘포괄 적합도’ 이론은 혈연의 근친 관계가 핵심
형편 좋을 땐 아들 선호, 형편 나쁠 땐 딸을 선호하는 진화론적 전략은 아이 생존 가능성 높아지자 ‘올인’ 전략으로 변모
과도한 교육열과 자기 희생적 ‘헬리콥터 맘’ 등은 유전자의 본성…하지만 사회적 삶을 의식한다면 남의 자식을 위한 행위도 중요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논의한 ‘사회적 브루스 효과’를 유발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과열된 학력 경쟁이다.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20대 초중반의 87%가 입시 경쟁 및 사교육 부담이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하였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SKY 캐슬>의 입주민 독서 토론회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등장한다. 극중 예서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유전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으로도 저는 제 유전자의 본능, 다시 말해 1등을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이기적인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확실히 한국의 교육열은 유별난 것 같다. 하지만 유전자가 한국인에게서만 작동할 리는 없다.
2019년 ‘미국판 SKY 캐슬’로 불리는 대규모 부정입학 사건이 드러나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겼다. 기업체 CEO, 유명 연예인, 변호사 등이 시험 감독관을 매수해 대리시험을 치게 하거나 대학 스포츠 코치를 매수해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하버드대, 예일대를 비롯한 여러 명문대에 자녀들을 입학시켰다가 발각된 것이다. 8년간 오고 간 검은돈의 규모가 무려 250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싱가포르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이 가장 활발하며, 3학년만 되면 학교와 학부모 모두가 입시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초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의 결과에 따라 어느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고, 그것이 거의 대학까지 결정짓는다. 세계 최대의 학원가는 학원 교육으로 유명한 한국에 있지 않다. 바로 인도에 있는 세계 최대의 입시학원 도시 코타가 그곳이다. 전국 150만여개 고등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몰려들어 인도 최고의 명문 인도공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1년치 학원비와 기숙사 비용이 한 가족의 1년 소득에 맞먹기에 학원을 보내기 위해 대출을 받는 일도 잦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주어진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유전자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모가 왜 자식을 돌보는지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 문제를 유전학과 수학으로 풀어낸 것이 1964년 발표된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이었다. 포괄 적합도란 개체 자신뿐 아니라 그 개체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들의 적합도를 근친도만큼의 비율로 합한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을 1이라고 할 때 자식이나 형제들의 경우 각각 2분의 1씩의 비율로 계산한 적합도의 총합이며, 모든 개체는 이 값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이 개념을 ‘혈연선택’이라고 불렀다.
존 홀데인은 “형제 한 명을 위해서는 안 되지만 두 명 이상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사촌이면 여덟 명 이상이어야 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자식은 부모와 유전자의 50%를 공유하므로 다윈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부모의 자식을 돌보는 행위가 이로써 설명 가능하게 된 것이다.
생물들이 의식적으로 포괄 적합도를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식물도 이 원리를 따른다. 두 번째 글 <위대한 동물, 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착취의 대표적인 예로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자라는 나무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변에 친족이 있으면 식물들은 잎과 줄기의 성장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서로를 가리지 않으려 한다. 인간의 경우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정도를 통계적으로 계산해보면 자신도 모르게 진화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민망한 사실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보자.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경우 함께 살고 있는 자식들이 자신의 친자식이라는 보장이 없다. 모든 사회에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실은 산모와 자식의 관계였다. 따라서 외할머니는 자신의 유전자가 손주에게도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데 반해, 외할아버지의 경우 일단 자신의 딸에 대한 확신이 없다. 친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그 아들이 데리고 있는 손주들의 진짜 아버지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결국 평균적으로 친조부모에 비해 외조부모가 손주들에게 더 많은 돈을 쓰는데, 특히 외할머니가 가장 많은 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모와 외삼촌 등 어머니의 형제가 고모 등 아버지의 형제보다 조카에게 더 많은 돈을 쓴다.
우리가 흔히 신성시하는 부모의 자식 사랑도 까놓고 보면 진화적 전략에 따른 냉정한 계산이 들어 있다. 일찍이 로버트 트리버스와 댄 윌러드가 ‘사이언스’에 발표한 가설에 따르면 부모는 형편이 좋을 때 아들을 선호하고 형편이 좋지 못할 때는 딸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유는 분명하다. 짝짓기에 있어 남자의 능력이 보다 중요한 세상에서, 부유한 아들은 다른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가난한 경우는 아들보다 차라리 딸이 결혼하여 자손을 가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 데이터로 입증되었다. 캐나다인들이 남긴 1000개의 유언장을 분석한 결과,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들이 딸보다 2배나 많은 유산을 받은 반면 가난한 가정에서는 반대의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온라인 구매 실태를 조사해보니, 부유한 부모는 아들의 선물에 더 많은 돈을 쓴 반면 그렇지 못한 부모는 오히려 딸에게 더 많은 돈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의 성별에 대한 선호가 온전히 자기의 의식 영역에 속한다고 자신한다면 다음 사실을 생각해보자. 미국에서 5000만건에 육박하는 출생기록을 조사해본 결과,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여성이나, 흑인여성이 아들을 낳을 확률이 낮았으며, 어린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경우 남아의 사망률이 여아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모유의 유지방 함량은 아들보다 딸에게 높고 부유한 가정에서는 그 반대다. 트리버스의 이론대로 불리한 환경의 어머니들일수록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데, 그것이 태아 혹은 영·유아 시절의 영양 공급 등 생리적인 차원에서 딸의 경우 투자를 늘리고 아들의 경우 줄이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을 뛰어넘어 작동하는 유전자의 양육 전략은 문명의 발전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원시시대에는 일단 많은 자식을 낳고 생존에 적합한 아이만 살림으로써 포괄 적합도를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지자 이제는 ‘양 대신 질’, 즉 한두 명의 자녀에게 ‘올인(all in)’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양육 본능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던 원시시대와 똑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 당연한 결과가 교육열이다. 현대의 부모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식 교육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이는 다른 부모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고, 결국은 모두가 지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세계 여러 나라들이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끝없이 군사력을 확장하는 군비경쟁과 같다. 즉 오늘날 인간 집단에 퍼져 있는 유전자들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얼굴을 한 채 자신들의 전달체인 자녀들에게 교육이라는 군비경쟁의 채찍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자녀의 주변을 맴돌며 과잉보호하는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들이다. 자녀의 일에 일일이 참견하다 못해 학교나 교사에게도 간섭을 하는데 이것이 심각한 교권침해로 이어진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8월 서울 영등포구 초등학교 교사에 이어 9월에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담한 비극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공개된 그동안의 학부모 만행을 보면, “아이에게 매일 모닝콜을 해달라” “집에 와서 보충지도를 해달라”는 등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내 세금 먹는 벌레”라는 등의 폭언과 욕설, “무릎 꿇고 빌어라”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유전자의 노예들이 어떤 모습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글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에서 인간 아이를 키우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지만, 이런 부모들의 애 키우기는 되레 개 키우기보다도 못한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디 이 아이들이 부모와 달리 인간답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포괄 적합도와 혈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남의 자식을 입양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장려되지 않는 행동이다. 캐나다의 야생 붉은다람쥐에 대한 한 연구에서는 무려 19년 동안 2230개 한배새끼군의 6793마리 새끼를 관찰하였다. 특히 이들의 입양 행동을 조사했는데, 고아가 된 다람쥐가 입양되는 것은 항상 대리모 다람쥐와 근연관계에 있는 경우였으며 근연관계가 없는 경우는 양자로 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입양이 일어나기 위한 고아 다람쥐와 대리모의 근연도는 대리모가 이미 키우고 있는 한배새끼들의 숫자에 따라 달라졌다. 즉 한배새끼를 한 마리 늘렸을 때 전체 새끼의 생존 가능성 감소분을 입양 비용으로 계산하고, 양자로 들여온 고아의 생존 가능성 증가분을 입양의 이익으로 계산할 때, 그 손익계산에 따른 입양 결정은 결국 포괄 적합도 공식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종 설문조사, 관찰연구, 행동실험 등을 통한 통계학 분석 결과를 보면, 서로 간에 도움을 주고받는 정도, 음식을 공유하는 정도, 다른 자녀를 보육해주는 비율, 재산의 상속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측면에서 혈연선택의 경향은 인종과 문화를 가리지 않고 드러난다. 그중 한 예로 남아프리카 1만여개 가계에 대한 대규모 연구 결과를 보면, 의식주 및 보건의료 등의 측면에서 아동에 대해 투자하는 정도는 보육자와의 유전학적 근친도에 수치적으로 비례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피보육 아동의 학교에서의 성적과 건강 상태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건 신성한 일도 칭찬받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한국의 부모들에게는 ‘자중해야 할 일’ 심지어 때로는 ‘악덕’이 되고 있다. 진짜 칭찬받을 일은 내 유전자와 아무 상관 없는 남의 자식들, 특히 보호대상아동, 자립준비청년, 미혼모 자녀 등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건 분명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신을 아버지로 비유하면서 입양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성서 곳곳에 나타나는 고아에 대한 관심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이를 낳는 것은 부모지만 키우는 것은 사회라는 인식의 전환 없이는 ‘사회적 브루스 효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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