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첨돼도 분양 못 받아” 청약통장 깨는 가입자들
고금리·원자재값 폭등에 ‘로또 청약’ 옛말…분양가가 시세 추월도
높은 1순위 요건·재당첨 제한 연장도 영향…“체감 혜택 강화를”
지난해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을 알아보는 A씨(33)는 매달 10만원씩 넣고 있는 청약통장 해지를 고려하고 있다. A씨는 “청약에 당첨된다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이나 서울과 가까운 아파트를 분양받을 여력은 없을 것 같다”며 “당장 돈 들어갈 곳이 많은데 괜히 목돈만 묵히고 있는 느낌”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약통장 순조성액은 2021년 12조8822억원을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7231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는 9623억원으로 적자가 커졌다.
순조성액은 청약통장 적립액에서 해지액을 뺀 돈이다.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달했던 2021년 적립액은 22조8863억원이었으나 2022년 18조1219억원, 2023년 상반기(1~6월) 7조6926억원으로 줄었다. 반면 해지액은 2021년 10조41억원에서 2022년 18조8450억원, 2023년 상반기 8조6549억원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로또 청약’이 사라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에는 청약이 시세보다 주택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난해 말부터 금리와 원자재값이 오르면서 분양가가 시세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반면 청약통장 금리는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보다 낮아지면서 목돈을 거치할 유인이 사라졌다.
청약통장의 인기 하락은 금리나 분양가 상승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홍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주택청약종합저축 신규 계좌 수는 2020년 474만8600개에서 3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337만9435개)까지 28.6% 감소했다. 반면 해지금액은 2020년 9조8252억원에서 2022년 18조7866억원으로 91.2% 증가했다.
청년층의 ‘주거사다리’를 지원하겠다며 각종 우대금리·비과세 혜택을 추가한 ‘청년우대형 청약종합저축’도 외면받기는 마찬가지다. 신규 계좌 수는 2018년 신설 후 주택청약종합저축에서 넘어온 ‘대환 수요’로 인해 2020년(15만8519개)까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이후 2년 연속 내리 감소해 2022년 9만344개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시들해진 청약통장의 인기에 정책적 원인도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청약 경쟁률이 치솟고 규제·제도가 복잡해지면서 납입자들이 ‘원하는 주택’과 ‘당첨이 가능한 주택’ 사이의 괴리가 점차 커졌다는 것이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올해 초 서울 대부분 지역이 규제지역에서 해제되기 전까지만 해도 청약 1순위 요건이 굉장히 빡빡했다”며 “한 번 청약에 당첨이 되면 7~10년 이상 재당첨이 제한되는 등 불이익이 늘어나니 아예 해지해 버리자는 분위기가 2020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정부의 유인책에도 금리 인상, 부동산 가격 하락 등과 맞물려 청약통장의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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