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역할·건전성 흔들린 윤석열 정부, 두 마리 토끼 다 놓쳤다”[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예산이 일과 밥벌이가 된 것은 2004년 시작됐다. 시민단체 참여연대에 들어가 조세·재정개혁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다. 2010년부터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5년간 일했다. 조세·재정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만 찾아다녔다. 2015년에는 공공재정의 혁신 방안을 연구하는 나라살림연구소에 합류했다. 그는 “20년 동안 책상만 바뀌었지 하는 일은 똑같다”고 했다. 지난해 경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라는 책을 냈다.
건전재정 주장은 거짓말…감세 되돌리지 않고선 해결할 수 없어
내수 안 좋아 수입 줄면 지출 확대해야…윤 정부는 이것을 혼동
국회 심의권 무너뜨리고 예산 불용·지방 교부세 깎는 건 전근대적
노령화와 물가 때문에 복지 지출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
유일하게 칭찬 해주고 싶은 부분은 기초연금 의지적으로 올린 것
R&D 예산 일률적으로 대폭 삭감은 미래의 잠재력 깎아먹는 일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 국가 지출 규모는 2000조원 규모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3분의 1에 이른다. 국회는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월2일을 목표로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심의에 돌입한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 대해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건전재정 기조로 짰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48)은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에 실패했다”고 일축했다. 정부의 지출보다 수입이 적은 불건전재정이라는 것이다. 이 위원은 지속되는 경기침체로 세입이 줄어드는데 정부는 감세로 세수 부족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재정의 책임성을 훼손하면서 재정건전성도 낮아졌다”며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다”고 했다.
정부 예산안에서 우선 논란이 된 것은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 줄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본격화하는 상황과는 거꾸로 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 위원은 정부가 국회 예산심의권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국회가 예산 집행을 결정한 사업을 일방적으로 축소하고, 심지어 지방정부에 보내야 하는 교부세도 멋대로 깎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전근대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재정건전성을 담보하려면 세입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감세를 되돌리지 않고선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위원을 지난 12일 서울 충정로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어떻게 총평할 수 있을까요.
“정부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렸다고 표현합니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3%가 넘는데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이 2.8%로 낮아 건전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본예산 대비 총지출은 2.8% 늘어나지만 총수입은 2.2% 줄어듭니다. 총수입 감소와 총지출 증가 간 차이가 5%포인트입니다. 수입 증가율보다 지출 증가율이 더 큰 것은 굉장히 불건전합니다. 예전에도 코로나 때 이외에 수입 증가율과 지출 증가율이 5%포인트 이상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내년도 예산의 불건전성은 지출이 많이 늘어서가 아니라 수입이 너무 줄어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전재정에 실패했는데 건전재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인 것이죠. 재정의 책임성을 높이려다 어쩔 수 없이 건전성이 조금 훼손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재정의 책임성도 훼손하면서 재정의 건전성도 낮아졌습니다. 재정과 책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어렵지만 다 놓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 정부는 상저하고 경기 전망에서 2.2% 세수 부족을 설정한 건가요.
“그렇게 희망적인 예측을 한 것이죠. 세수가 더 부족할 수도 있어요. 최근 예산정책처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정부 예측보다 계속 하회하고 있거든요. 어디에도 올라가고 있는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없어요.”
- 당초 예상치보다 세수가 부족해지면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게 일반적인데, 정부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답답한 게 바로 그 부분이에요. 한덕수 국무총리가 세입이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야 된다고 말했어요. 대단히 놀랐습니다. 작년에 여야 합의를 통해 쓰도록 돼 있는 사업 예산을 행정부가 마음대로 알아서 일부만 쓰겠다는 것은 큰일 날 소리입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정한 세법에 따라 세금을 걷고 정한 곳에 지출하는 것이 근대국가의 시작이에요. 전근대 국가로 회귀하겠다는 심각한 발언입니다. 그런데 추경호 부총리는 ‘억지로 불용(편성된 사업 지출 예산 중 일부를 쓰지 않음)을 종용하지 않겠다, 다만 자연스럽게 생기는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역시 사악한 말입니다. 국회에서 20억원을 심의했으면 정부는 다 지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원칙이죠. 그런데 의도적으로 불용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세수 결손이 났을 때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으려면 감액 경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합니다. 그런데 추경은 없다는 용산(대통령실)의 말을 따르기 위해 추경은 안 한대요. 행정부가 국회의 허락 없이 대놓고 세출을 줄이겠다, 불용을 만들겠다는 것은 반민주가 아니라 전근대적입니다.”
- 일반적으로 불용 예산은 최대 얼마까지 가능합니까.
“내년도 예산안 656조원 중에 법적인 의무 지출과 재량 지출이 절반씩입니다. 인건비는 의무 지출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의무 지출이어서 줄일 수 없어요. 의무 지출을 대강 300조원이라 치면 실질적인 재량 지출은 200조원이에요. 허투루 쓰고 있는 10%를 지출 구조조정을 할 경우 20조원입니다. 10% 지출 구조조정이 혁명을 하지 않는 이상 최대 규모라고 생각합니다. 이론적으로 최대 10%지만 실질적으로는 5%, 10조원정도라고 봅니다.”
- 윤석열 정부의 세수 감소에는 경기 위축과 감세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경기 영향이 훨씬 커요. 내년의 경우 감세의 영향도 굉장히 클 것입니다. 내년도 총수입은 -2.2%인데 내국세만 10% 이상 줄어요. 감세 효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추 부총리는 작년에 감세하면서 법인세율을 인하하면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하고 내수가 좋아져서 세수가 줄지 않는다는 기적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추 부총리의 말을 부정하는 게 기획재정부예요. 기재부의 공식 자료를 보면 법인세율을 내리면 향후 5년간 27조원이 줄어든다고 돼 있습니다. 법인세율에 따른 감세 효과까지 제가 계산하면 5년간 80조원이 줄어요. 기재부도 인정하는 것을 추 부총리만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감세로 세수가 줄었다는 사실에 사과하고, 일정 부분 감세 정책을 되돌리는 거 말고는 이 난국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봐요.”
- 내국세 감소로 지방교부세가 줄면 지방정부는 더 어려워질 텐데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법에 내국세의 40%를 지방정부에 주게 되는데, 내국세가 10% 감소하면 교부세는 17조원 줄어듭니다. 17조원이 줄어 총지출 증가율 2.8%로 커버한 것이지, 내국세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5.8%입니다. 기재부에 올해 세수 결손이 났는데 어떻게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을 거냐고 물었더니 올해 세수 결손분에 따라 지방정부로 가야 되는 교부세를 덜 주니까 그만큼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국회는 지방정부에 줄 예산을 정해놨는데 국회에 감액 추경을 하거나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고 깎겠다는 겁니다. 이것도 반근대적입니다.”
- 윤석열 정부의 재정 운용 방식이 기존의 보수 정부와 다른 점이 있습니까.
“박근혜 정부와는 많이 달라요. 박근혜 정부는 나름 증세를 해서 재정건전성이 강화됐어요. 수입은 증세해서 늘리고 지출은 늘리지 않았어요. 윤석열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재정 기조가 비슷해요. 지출은 늘리지 않지만 수입은 감세로 너무 많이 줄어들어 재정건전성에 위배되는 게 특징입니다.”
- 윤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을 서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쪽으로 짰다고 설명했습니다.
“복지 지출이 많이 늘어났어요. 가장 많이 늘어난 게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부문입니다. 정부 의지 때문이 아니라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물가가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고령화를 가속시키고 물가를 올렸다고 자랑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에요. 유일하게 칭찬을 해주고 싶은 부분은 기초연금 부문인데 정부가 의지적으로 올린 겁니다. 생계급여 기준을 이전 기준중위소득 30%에서 32%로 상향했어요. 그것 이외에는 실제로는 노령화와 물가 때문인데 복지 지출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입니다.”
-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했던 윤석열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을 16% 줄여 과학기술계가 거세게 반발합니다.
“줄일 부분은 줄이고 늘릴 부분은 늘리는 것이 R&D 예산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과연 내년도 R&D 예산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줄였냐? 아니에요. 그냥 일괄적으로 줄였습니다. 미래의 잠재력을 깎아먹는 거죠.”
- 우리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예산안으로 미흡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죠. 정부는 수입이 줄어 지출을 줄여야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입이 준 게 아니라 감세로 수입을 줄인 거죠. 가정경제는 수입이 줄면 당연히 허리띠 졸라매야 되죠. 수입이 늘면 소고기 사 먹을 수 있는 게 가정경제라면, 국가재정의 원칙은 정반대예요. 내수가 안 좋아서 수입이 줄면 정부는 지출을 확대해야 합니다. 거꾸로 경기가 과열되어 세 수입이 많아지면 지출을 줄여야 됩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성장률에 대한 기여도를 보면, 2022년도 2분기 때 경제성장이 좋지 않은 이유는 정부 지출과 정부 투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 올해 윤 대통령 해외순방 예산으로 책정된 249억원을 다 쓰고, 예비비에서 329억원을 추가로 끌어와 논란이 됐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방이 있다면 예비비로 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방이 왜 생겼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은 해야죠.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 1위가 외교통일 부문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입니다. 2위가 예비비인데, 올해 4조6000억원보다 4000억원(8.7%) 증가한 5조원을 편성했습니다. 정부가 예비비를 결산 때 보고하지만, 국회 예산 심의 단계에선 예외입니다. 예비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은 국회 예산심의권 무시일 수 있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예산 카르텔을 얘기합니다.
“있을 수 있죠. 그렇다면 정확하게 어떤 카르텔이 있는지 보여달라는 거예요. 카르텔 리스트라는 게 끽해야 시민단체·노동조합 보조금 문제라는 거잖아요. 이번 보조금 환수 내역을 보면 시민단체·노조 보조금 환수 내역은 전체의 0.1~0.2%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실제 카르텔이 문제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한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그런데 정치적으로만 문제를 만들고 있잖아요.”
- 예산 편성권은 정부가, 심의·확정권은 국회가 갖고 있습니다.
“제헌헌법부터 빠지지 않고 들어 있던 조항이에요. 외국과 비교해 보면 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는 미국 이외에 대부분은 행정부가 편성합니다. 예산편성권을 국회가 가져와야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저는 세모예요. 정부가 국회 심의권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예산을 불용 처리하겠다는데, 국회가 예산심의권이라도 지켰으면 좋겠어요. 저는 톱다운 예산 제도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텀업은 각각의 세부 사업 예산을 더해 증액하는 방식인데, 톱다운은 분야별 규모를 미리 정해놓은 뒤 세부 사업 예산을 구성하게 됩니다.”
- 국회 예산안을 심의할 때 매번 나왔던 게 쪽지예산입니다.
“쪽지예산은 말 그대로 쪽지를 통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 나온) 증액인데, 나라살림연구소의 제안으로 윤후덕 민주당 의원이 예결위 간사를 할 때 없어졌습니다. 이제 5년쯤 됐죠. 쪽지예산이 사라졌다는 것은 자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국회 예결위가 전체 656조원 모든 사업을 다 할 순 없어요. 상임위에서 낸 의견과 예결위원이 서면으로 미리 제출한 의견을 예결위가 심의합니다. 나머지 사업은 정부 원안이 통과됩니다. 서면 질의에도 없다가 갑자기 증액됐다면 쪽지예산 말고는 설명할 수가 없죠. 그 건수는 많아봐야 2건입니다. 그 정도면 없어진 거죠.”
- 매년 예산안 심의에 시간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9월2일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그다음 날부터 심의하는 게 아닙니다. 9월에 법안 심의를 하고 10월에 국정감사를 하고, 예산 심의는 보통 11월 초에 시작합니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인 12월2일까지 한 달 동안 제대로 예산 심의가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정기국회는 예산국회로 별칭하는데 최소 10월 초부터는 예산 심의를 해야 합니다. 국감은 일정을 조정해서 6월에 하든지 상시 국감을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정부·여당이 재정건전성을 위해 재정준칙을 법제화하려 하는데, 야당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재정준칙을 만들어도 되고 안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정건전성은 유리해지지만 책임성은 약화되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산 편성이라는 칼자루는 정부·여당이 쥐고 있잖아요. 야당이 법제화를 하든 안 하든, 반대하든 안 하든 재정준칙을 지키면 됩니다. 그런데 올해도 재정준칙을 못 지키고 내년에도 재정준칙을 못 지키거든요. 야당 동의로 법제화하면 자기가 법을 못 지킨 것이 되는데, 야당 때문에 재정준칙을 못 지킨다는 정치적 명분을 삼는 것이죠.”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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