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의사 빼고 다 찬성…모든 지역·연령·이념서 “의사 늘려라”

강민호 기자(minhokang@mk.co.kr),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3. 10. 1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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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아청소년과 앞에 아이와 부모들이 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기사와는 무관. [사진 = 연합뉴스]
17일 오전 9시께 서울 SRT 수서역에 내리는 승객들 대다수는 정류장에 대기 중이던 인근 대형병원의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순천에서 당뇨 정기 검진을 위해서 매달 1번씩 서울에 온다는 박모(65)씨는 “지방에도 병원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기차를 타고 큰 병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구로구의 우리아이들병원 앞에는 아침 7시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환절기라 어린이 감기 환자가 폭증해 최근에는 대기줄이 더 길어졌다. 광명에서 왔다는 김모(39)씨는 “진료는 9시에 시작하지만 일찍 아이 진료를 보고 늦게라도 출근하려면 새벽에 나오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날 아침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응급차들이 여러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급차를 운전하는 A씨는 “지역 병원 응급실을 가도 의사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웬만하면 서울로 쏜다”고 말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매일매일 체험하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이다. 매일경제신문이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는 이처럼 시민들이 일상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갖게 된 의료 현실에 대한 생각들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대부분의 이슈에 대한 의견이 이념, 지역, 남녀에 따라 양분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다르게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70% 이상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투표 성향에서 늘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40대와 70대 이상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각각 70.3%와 76.4%로 그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이유와 관련해서 ‘소아과 등 필수 의료 과목의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답한 응답자가 41.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지방 의료 공백이 심각하기 때문’이 36.2%였고, 22.1%는 ‘고령화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갈수로 인기 과목 쏠림과 필수 과목 인력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정원 현황’에 따르면 전국 대학병원 50곳 가운데 38곳(76%)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흉부외과 역시 정원 대비 확보율이 49.1%에 그쳤고, 외과 65.2%, 산부인과 74.8%였다. 반면 소위 인기과로 분류되는 피부과·안과·성형외과는 모두 정원 100%를 채웠다.

입시생들은 의대로만 몰리고, 다시 의대생들은 피부과·안과·성형외과로 몰리고, 의사들은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쏠림의 연쇄 사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제도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증원된 의대 정원은 일정기간 지역에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도’ 도입에 대해 84.3%가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5.1%에 그쳤다. 지역의사의 의무 복무기간에 대해서는 △3년 미만 26.1% △3~5년 49.4% △5~10년 17.7% △10년 이상 6.8%였다.

필수 의료 공백 문제는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절감하는 문제였다. 정원 확대에 반대한다고 답한 사람들 중 61.6%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더라도 필수 의료 부문의 인력난은 지속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단순히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고, 의료 수가 조정을 포함한 다른 정책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매경 여론조사에서 ‘필수 진료 분야 수가 인상’에 찬성하는 여론이 57.9%로, 반대하는 여론(25.8%)보다 두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의료 수가 조정은 현장의 의료인들도 원하는 과제다. 신현영 의원이 국민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전국 산부인과의 82%는 분만 수가를 청구하지 않았다. 82%의 산부인과에서는 분만이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분만 수가가 낮아서 산부인과에서 분만 자체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분만 수가가 55만원인데 아이를 하나 받으려면 최소 3명은 붙어 있어야 한다”며 “이런 고질적 저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와 더불어 제도나 정책을 같이 정비하는 게 필요하다”며 “병원에서 필수의료를 보는 의사들에게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고, 충분한 인력이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날 의사인력 전문위원회의에서 “인력 재배치,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부담 완화 등 의료계의 정책 제안들 역시 정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한다”며 “의료인력 확충과 함께 정책패키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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