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방문진료와 스마트폰
얼마 전 내가 일하는 곳에 의대를 지망한다는 고등학생들이 견학을 왔다. 사전 학습으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미래 의료의 모습에 대한 얘기들을 나눴다고 한다. 역시 이과생들. 우리가 방문진료도 하는 의료기관이라고 했더니, 현재 방문의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기계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기술과 기기의 발전이 방문진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질문, 혹은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문진료를 위해 어떤 기기가 더 필요할 것인가 하는 질문.
방문진료에 우리가 들고 가는 기기들을 떠올려 봤다. 혈압계, 혈당계, 손가락 2개 크기의 산소포화도 체크기, 욕창의 진물을 빨아내는 작은 모터가 달린 거즈, 심지어 손바닥 크기의 초음파기기까지, 참 많은 것들을 들고 다니지만, 사용 횟수나 의존도 면에 역시 압도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방문진료의 모습은 어땠으려나. 미리 유선전화로 진료 약속을 다 잡고 출발해야 했겠지. 처음으로 방문하는 집인데 길을 못 찾으면 어쩌지. 그때는 내비게이션도 없었을 터인데, 집을 못 찾으면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하고 길을 물어봤어야 했을까. “청자슈퍼 뒤에 붉은 벽돌 빌라 4층 3호요”라고 하면 거기가 어딘지 훤히 알고 있었을까. 그보다 더 옛날에는 병원까지 보호자가 찾아와서 같이 가방을 챙겨 길을 떠났으려나.
21세기의 방문진료는 스마트폰 덕이다. 고령화로 인해 이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방문진료가 시작된 것도 없진 않지만, 이제는 할 만해서 시작된 것도 있다고 보는데, 그게 스마트폰 덕이라고 본다.
스마트폰은 방문진료 스케줄을 빼곡히 적어놓은 다이어리가 돼주기도 하고, 방문해야 하는 집까지 찾아가는 동안 내비게이션이 되어주기도 한다. 카메라 기능도 필수다. 혈변을 보셨다는데 지금 대변 색깔은 괜찮지만, 어제 저녁에 찍어놓은 기저귀 사진을 보여주면 알 수 있다. 욕창을 정기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게 사진으로 일기 쓰듯 매일 찍어놓기도 하고, 뇌경색 환자분의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걸음걸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앞으로 운동을 어떻게 할지, 집 어디에 안전바를 설치할지, 어떤 보행보조 기구를 사용할지 의논할 수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e음 앱을 깔아 환자분이 지난 1년 동안 무슨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계셨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혈액검사 결과를 인터넷으로 바로 확인하거나 지난 방문기록을 확인하고, 오늘의 방문차트를 작성하는 데도 필요하다. 단체 채팅방은 여러 방문 인력들이 실시간으로 회의하는 사무실이 되어주기도 한다. 초음파기기를 들고 갈 때도 WIFI 방식으로 스마트폰에서 출력되는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받아가며 검사를 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가정에서 임종하시는 분들의 경우, 담당 방문 간호사가 환자분이 임종에 이르는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실시간으로 당직 의사에게 보냄으로써 원격으로 사망선고를 할 수도 있게 된다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마트폰으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연결과 조정이다. 이미 우리의 방문진료는 의사 한 사람이 환자 한 사람에게 가는 것이 아니다. 의사도 한 전문과목의 의사만 가지 않고 한 환자에게 여러 전문과목의 의사들이 나가기도 하고,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과위생사, 작업치료사 등 여러 직원들이 함께 나간다. 요양보호사와 같은 장기 요양기관의 직원들도, 자원활동가들과도 연결이 필요하다. 보건소나 동주민센터와도 연락할 일이 있고,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들과도 이런저런 소통이 필요하다. 결국은 무어라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인 것이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자원을 조직하고 적절한 의료 돌봄이 가능하도록 조정하는 것이 환자를 방문하는 의료진의 일이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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