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 한국이 망해가고 있다는 ‘합계출산율 0.7명’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남녀 임금 격차를 연구해온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돌아갔다. 골딘 교수는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1분기) 0.86명인 것을 잘 안다”고 말해 한국 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한국 기자들이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한국 내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남녀 임금 불평등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6월 발표한 ‘2023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경제적 능력을 확보하는 데 169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슬란드 여성은 전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남성과 가장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남성의 91.2% 수준이었다.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20% 이내인 나라는 146개국 가운데 8개국뿐이었다. 한국은 108위로 하위권이었다.
미국은 1963년 ‘동일임금법(Equal Pay Act)’을 시행하면서 남녀 임금 차별 금지를 법제화했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 등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기본 인권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골딘 교수는 200년 넘게 축적된 여성 임금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 물론 과거에 비해 그 격차는 개선되고 있다. 동일임금법이 시행됐을 당시 미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0%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22년 미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17.0%였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60년 새 23%포인트 개선된 셈이다.
한국도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서 성별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남녀 임금 격차는 31.1%로 OECD 평균(11.9%)의 세 배에 가깝다. OECD에 가입한 1996년(43.3%)부터 27년 연속 압도적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실제 남녀 임금 격차는 더 크다는 통계도 있다. 국세청이 국회에 낸 ‘성별 근로소득 천분위 자료’를 보면 2021년 전체 근로소득자 가운데 남성 1인당 평균 임금은 4884만원, 여성은 2942만원이었다. 여성 임금은 남성의 60.2%였다. 그나마 5년 전에 비해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비율은 2%포인트가량 높아진 것이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 안팎의 선진국이 됐어도 ‘살기 좋은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매년 발표하는 행복지수를 보면 올해 한국은 146개국 중 59위였다. 유엔의 행복지수가 높고 WEF의 성 격차가 작은 10위 이내 국가 중에는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핀란드, 뉴질랜드, 스웨덴, 벨기에 등 6개국이 중복된다. 성 격차가 작은 나라의 국민 행복도가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 이들 국가 대부분은 합계출산율이 1.5명을 웃돌아 한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
“소득은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로 유명한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사람들은 잘사는 나라보다 행복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득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세계경제전망’에서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2.2%로 전망했다. 지난 7월 전망보다 3개월 만에 0.2%포인트 낮췄다. 성장률이 낮아진다고 하니 정부와 언론이 앞다퉈 걱정을 쏟아낸다.
정작 외부에서는 한국의 생존을 더 염려한다. 구독자가 2130만명인 독일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는 이달 초 ‘한국은 왜 망해가고 있나(Why Korea is Dying Out)’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572만명이 시청한 이 영상은 2100년 한국 인구가 2400만명으로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00년 안에 한국 청년인구가 94% 감소한다는 끔찍한 예언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골딘 교수가 언급했던 지난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지난해 연간 출산율은 0.78명이었고, 올해 2분기에는 0.7명까지 떨어졌다. 올해 연간으로는 0.7명이 무너져 0.6명대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이대로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데 이어 쇠락하는 속도도 가장 급속한 국가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문제는 저성장이 아니다. 생존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책이 시급하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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