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선 “거짓말” 외쳐도 퇴장감… ‘다름’ 인정하고 정책역량 키워야 [심층기획-국민 두 쪽 낸 ‘정치인의 입’]
英 의회, 멍청이·겁쟁이·배신자 등
‘비의회적 언어’로 규정 강력 제재
회의 방해하면 퇴장·직무정지 조치
美, 인신모욕발언 금지… 거부땐 징계
제도·문화 조화 이루며 품격 갖춰
韓, 국회법 등에 발언 규범 있지만
의장 제도적권한 제대로 행사 못 해
윤리특위 구속력 없어 ‘유명무실’
핵심 정책 보다 말로 상대방 공격해
“규정 정비… 상대 존중하는 행동 필요” 하>
17일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보고서 ‘국회의원의 말; 언어의 품격’에 따르면 영국 의회는 멍청이·거짓말쟁이·겁쟁이·배신자와 같은 단어를 ‘비의회적인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의원이 토론 중이거나 본회의 의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시 의장은 원내 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규범 위반 수위에 따라 본회의장 퇴장, 의회 영내 퇴장, 해당 의원에 대한 직무정지 표결 등이 대표적이다. 2012년 하원의장의 거듭된 발언철회 지시를 거부한 노동당 폴 플린 의원은 5일간 직무정지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특히 직무정지 표결을 할 때는 의장은 의원 이름을 부르는데, 이 자체가 불명예로 여겨진다. 본래 의장이 의원을 부를 때는 ‘존경하는 (지역구 이름) 의원님’으로 부르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 이상 직무정지를 받게 되면 별도의 의결이 있을 때까지 의원으로서의 직무가 정지되고, 직무정지 기간 세비가 지급되지 않는다.
미국은 하원 의사규칙 제17장 제1조에 토론 중인 의제와 무관한 발언, 인신 모욕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칙을 어길 경우 의장은 해당 의원에게 주의를 시킨다. 만약 주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표결을 할 수 있는데, 표결 결과가 위반 의원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의원은 발언을 중단해야 하며 견책 또는 다른 징계를 받을 수 있다. 또 미 하원은 의장이 연설하거나 의제를 상정할 때 본회의장을 걸어 다니거나 나가는 것을 금지한다.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소란이 생기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국도 국회법, 국회의원 윤리실천규범, 국회의원 윤리강령 등에 의원의 발언 규범을 마련해 두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의장은 규정을 어기고 회의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의원에게 경고나 제지를 할 수 있고, 따르지 않는 경우 당일 회의에서 발언금지나 퇴장을 명령할 수 있다. 다만 한국 국회에서 의장이 특정 의원에게 공식적으로 경고·제지하거나 발언금지·퇴장을 명령한 선례는 찾기 힘들다.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제도적 권한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역시 유명무실하다. 윤리특위 심사를 거쳐 의원에 대한 징계가 결정된 사안도 제13대 국회 이후 단 1건에 불과하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윤리특위의 윤리자문기구에 권한을 더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윤리자문기구의 자문에 구속력이 없으니 의원들은 그냥 무시해 버린다”며 “윤리 부분에서는 의원들이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자문기구가 내세우는 의견을 100% 따르겠다고 입법화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법에 따라 윤리특위는 징계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기 전에 윤리심사자문위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국회의원과 대통령 스스로의 자정 노력으로 정치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야권 원로인 정대철 헌정회장은 “극단적인 힘의 논리를 벗어나 대통령이 야당을 인정하고 만나고 대화해야 하고, 야당도 여당과 대통령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통령은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용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며 “상대를 존중하는 신중한 발언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당이 정책 역량을 키워야 ‘막말 정치’를 끝낼 수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당은 자신들의 핵심적인 정책을 가지고 다투면서 국민의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면서 “결국 원시적인 언어를 가지고 공격함으로써 지지자들을 동원하려고 하는 그런 행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책 능력이 갖춰져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최우석·유지혜·김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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