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글로벌픽] 야스쿠니가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
17일부터 시작하는 일본의 추계 예대제(例大祭)를 앞두고 전날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에 속한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은 지난해 패전일(8월 15일)과 추계예대제 직전 이 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올해도 패전일 뒤인 8월 21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습니다. 그는 이번 참배 뒤 “국가와 가족을 생각하며 전화(戰禍)에 쓰러진 영령의 안녕을 빌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는 토속 신을 모시는 7만9000여 개의 신사가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도조 히데키 등의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해 근대 100여 년간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 명의 위패가 안치돼 있기 때문입니다. 강제로 전쟁에 동원됐던 한국인 2만여 명도 이곳에 합사돼 있다고 합니다.
일본 패전 이후 연합군은 야스쿠니 신사를 없애려 했습니다. 당시 가톨릭계의 만류로 이 시설은 존속했고 1978년 일본 정부에 의해 은밀히 A급 전범의 위패가 합사됩니다. 이후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 나라의 우익 정치인과 학자들은 끊임 없이 ‘강한 일본 만들기’를 주창했습니다. “과거의 침략 전쟁은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었다”는 내용이 담긴 역사공정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대표적인 행위가 돼 주변국과 갈등의 단초가 됐습니다. 태평양 전쟁 전사자 유족 중 일부가 조상의 이름을 야스쿠니에서 지워달라고 요청했지만, 신사 측은 “한 번 모셔진 영령은 하나의 신이 됐기 때문에 뺄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관련 소송도 제기했으나 ‘종교적 인격권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패소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오늘날 군국주의의 상징이 돼 일본 안팎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만, 과거에는 국민 통합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1874년 메이지 일왕이 이 신사에 참배한 게 계기였습니다. 신의 아들인 일왕이 전쟁 뒤 숨진 일반인을 신으로 모신 일은 당시 국민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던 모양입니다. 이후 야스쿠니 신사는 일왕을 위해 싸우다가 죽어 신이 된 이들을 모시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고, 태평양 전쟁 발발 뒤에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만나자’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전사자가 늘어 합사 규모가 급증했다고 합니다.
이후 야스쿠니는 정치적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습니다. 1978년 이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되자 히로히토 일왕이 발길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일왕인 헤이세이 일왕과 나루히토 일왕도 더는 이 신사에서 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왕들의 이같은 태도 변화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합니다. “평화로운 국가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왕실과 2차 대전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조처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은 동학교도 살인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당시 ‘일왕의 군대’ 군인칙유를 내린 장본인입니다. 하지만 전후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과 전략적 거래를 통해 태평양전쟁의 책임을 군부에 떠넘기고 2000만 아시안인 죽음의 책임을 회피했다는 겁니다.
세월이 흘러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한지 40년째 되는 1985년 8월 현직 총리 최초로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해 주변국의 원성을 샀습니다. 일본의 전현직 총리들도 야스쿠니 참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태도를 달리해왔습니다. 재임 기간 야스쿠니에 발걸음 하지 않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퇴임 뒤 이 신사 참배를 재개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야스쿠니의 쓰임이 달라지고 있는 겁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고 다마구시 대금을 봉납했다고 합니다. 전임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아베 신조 전 총리도 예대제나 패전일에 비슷한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불편한 감정을 염두한 조치인데, 이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는 행동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전범을 모시는 신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대신 봉납이라는 애매모호한 조처로 주변국의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언제 다시 일본 정부가 과거의 역사 공정을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는 겁니다. 역사는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그런 입장 변화를 늘 경계하고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역사의 순간마다 위상이 달라졌던 야스쿠니가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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