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지방 의사 인력 양극화… 응급실 뺑뺑이·진료 ‘오픈런’ [정부 '의대 증원' 추진]

이정우 2023. 10. 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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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확대 왜 필요한가
1000명당 서울 3.47명·경북 1.39명
병원 8곳서 퇴짜 맞고 숨진 환자도
2023년 소아과 전공의 충원율 10% 그쳐
다른 과보다 수입 적고 힘들어 기피
강원대는 2018년부터 한명도 없어
교수보다 연봉 더 주고 계약직 고용
경북 안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1)씨. 며칠 전 새벽 연거푸 마른기침을 해대던 두 살배기 딸의 체온이 40도를 넘었다. 곧바로 안동의 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입원 치료가 필요한 ‘폐렴’ 진단을 받았지만, 전문의가 없다며 다른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받았다. 김씨는 수소문 끝에 130㎞ 떨어진 대구의 종합병원까지 차를 몰아야 했다.
서울로 ‘원정 진료’ 온 환자들 서울 강남 일대 대형 종합병원의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 등 지방에서 올라온 이용객들이 17일 고속철도 수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병원 셔틀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이 전국 9개 지방국립대 병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10%에 그치고 있다. 5년 전엔 2018년만 해도 충원율은 100%였다. 다른 과에 비해 수입이 적고, 일이 고되다는 이유로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고 있어서다. 강원대의 경우 2018년부터 현재까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1명도 충원하지 못했다. 강원대는 결국 전임교수보다 더 많은 연봉을 주고 계약직 의사를 고용해 겨우 진료를 보고 있다. 강원대병원 전임교수직의 올해 평균 연봉(1년 환산치 추정)은 1억5300만원, 계약직 의사는 1억6400만원으로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지역에서도 소아과 진료 대란이 벌어지며 병원 영업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오픈런’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사 인력 양극화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가 서울은 전국 평균(2.18명)을 넘는 3.47명인데 반해 경북은 1.39명으로 차이가 컸다. 충남(1.53명), 충북(1.59명) 등도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경기 용인에서는 차에 치인 70대 노인이 응급실을 찾지 못해 사고 현장에서 100㎞ 떨어진 병원으로 향하던 중 결국 숨졌다. 당시 119 구급대가 치료를 요청한 병원은 모두 12곳이었다. 올해 3월 대구에서는 건물에서 떨어진 10대 여학생이 병원 8곳에서 퇴짜를 맞고, 2시간 넘게 구급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숨졌다.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수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방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의사와 환자 모두 수도권 병원으로 몰려들며 지방의료 인프라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의료계 반대로 십수년간 풀지 못했던 ‘의대 정원 확대’라는 난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필수의료나 지방 병원으로도 의사들이 이동하는 ‘낙수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현실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의사 수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원 배분 방식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2020년 추진했던 의대 정원 확대 방침과 마찬가지로 소규모 대학에 우선 배치하되, 증원된 학생을 양성할 수 있는 교수, 장비 등 확보 여부를 가려낼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의대는 모두 40곳이다. 국립대 11곳 중 3곳은 정원이 50명 밑이고, 사립대 의대 29곳 중 14곳은 정원이 60명 이하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의 의료진의 모습. 뉴스1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의 대학 시설과 교수 인력으로는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박대균 순천향대 의대 교수(해부학)는 “정원이 적은 대학의 경우 (교수, 인프라 부족 등으로) 늘어나는 인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각 의대에 2∼3년 정도 시간을 줘야 하고 대학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우·이정한 기자, 안동=배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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