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여행작가 대접 받지만 ‘미술사가’로 남고 싶었다”
13년 걸려 모두 2500쪽 분량 마무리
“미술사가로서 통사를 쓰는 사람은 세기에 한두 명 나옵니다. 서양미술사에 에른스트 곰브리치나 잰슨이 있듯이, 미술사가로서 한국미술사의 통사를 꼭 완성해보고 싶었습니다. 기존 학계에서는 금속공예, 목칠공예 등처럼 기술과 재료를 기준으로 다뤘다면, 저는 왕실, 선비, 규방 등처럼 사용자(항유자)와 제작목적에 따른 분류로 과감하게 기준을 바꿨습니다. 누가 뭐래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본 것이지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눌와 펴냄)가 완간됐다. 2010년 1권 ‘선사, 삼국, 발해’편이 출간된 지 13년 만에 완간된 이 책은 한 명의 일관된 시각으로 한국미술 전반을 다룬 역작이다. 총 6권이며 총 2500쪽에 이를 정도로 분량도 방대하다.
저자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책의 완간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어쩌다보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유명해져서 작가 대접을 받았지만 미술 전공자로서 ‘미술사가’로 남고 싶었다”며 “문화유산답사기가 30년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도 내가 미술사가로서의 자세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학계와 대중의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바랐다. 그는 “19세기 중반 미술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바젤대학에서 미술사 강연한 것을 보면서 학자가 동시대 사는 사람들에게 학문적 내용을 대중에게 서비스하는 정신에 감동 받았다”며 “서양에서 전문서와 대중서를 구분하지 않듯 나 역시도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에 완간된 한국미술사 역시 그는 대중들이 책상에 앉아 밑줄 그으며 보는 책이 아니라, 소파에 누워 읽어볼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우르는 한국미술사를 정리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학계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야 하므로 그 내용들을 다루다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책은 두꺼워졌다. 분야사 책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시대 건축·조각·공예의 경우 참조할 만한 분야사 책이 없었다. 그는 “회화를 전공한 제가 인접 분야에 관련해서 써야하는 것이라 마치 형법학자가 법학개론을 쓰는 것처럼 어려웠다”며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거기에 제 의견까지 덧붙이다보니 예상보다 늦어졌고 책도 더 두꺼워졌다”고 밝혔다. 내용도 충실하면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이룬 그는 이제 총 6권의 책을 딱 한 권으로 만드는 작업도 계획중이다. 제목도 벌써 정했다.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
미술사를 다루는 만큼 도판을 넣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 책의 특징은 도판과 함께 그에 해당하는 글이 같은 페이지에 수록돼 독자의 가독성이 높은데, 유 교수가 출판사를 오가며 도판 작업에 맞춰 글 분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등의 꼼꼼한 작업을 한 덕분이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도판들을 현대 기술에 힘입어 배경을 통일시켜 책의 완성도도 높였다. 내용부터 편집 작업까지 유 교수와 출판사가 힘을 합쳐 공을 들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유행시키고 문화답사 열풍을 불러일으킨 유 교수는 ‘서양미술사는 재밌는데 왜 한국미술사는 재미없을까?’라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서양에서는 미술사를 연구할 때 시대별로 연구하지만, 한국은 회화사·도자사 등 장르로 나눠 연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서양미술에서는 미술사 전공할 때 그리스 전공, 모더니즘 전공 이렇게 시대로 나눈다. 르네상스 시대 미술사를 연구한다면 콘텐츠가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한국 미술사도 ‘18세기 전공’을 한다면 그 속에 문학과 사상을 녹여서 충분히 쓸 수 있을텐데 장르별로 하다보니 예술 외적인 것을 쓰면 선생님께 혼나는 분위기였다”고 짚었다.
한국미술사를 영어로 말하면 ‘히스토리 오브 코리언 아트(History’ of Korean Art)가 아니라 ‘스토리 오브 코리언 아트(Story’ of Korean Art)’를 쓰고 싶었다는 그는 이 책을 다 쓴 뒤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질러 놓으니까 개운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1949년생으로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하고도 여전히 저술과 강연에 열정적인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미술사를 완간하려면 근현대 미술사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 이를 별도로 정리해볼 계획이다.
“새로운 시대에 미술사하는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 해온 여러 가지 방법론을 뛰어넘어섰으면 좋겠습니다.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얘기된 것들을 끌어들여와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길 기대합니다. 장르 구분이 아니라 시대 구분으로 하는 책이 꼭 나오면 좋겠습니다. 통일신라 미술사, 고려시대 미술사, 이렇게요. 시대를 아우르며 내용이 풍부한, 제 책을 뛰어넘는 또다른 미술사 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기자간담회 내내 완간의 기쁨을 드러낸 그는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당부도 잊지 않았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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