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성패, 데이터에 달렸다] 제조현장은 `DX 사각지대`… 데이터·ESG 플랫폼 연계 급선무
현대차, ESG 관리플랫폼 구축
생산~가공까지 리스크 최소화
"韓기업 아직 취약… 대비책 절실"
해외기업은 친환경 행보 선두
탄소중립 결정체 '애플워치9'
제품 생애 과정에 ESG 적용
ESG 경영·디지털화 시급한 제조업계
#현대자동차그룹은 전사 차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관리 플랫폼을 구축해 ESG 관련 데이터를 관리하고 있다. 이 플랫폼에 들어가면 ESG 활동의 지표부터 현황·성과는 물론 협력사 상황과 트렌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ESG 관련 데이터의 추출·취합·가공 단계를 체계화해 자칫 불거질 수 있는 관련 리스크를 예방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 목표다.
국내 이차전지 기업 A사는 미국과 유럽 법인의 경영체계와 데이터를 한국과 통일하기 위해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ESG 경영체계를 위해서는 IT시스템 연결과 데이터 통합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ESG 경영에 대한 질문은 이제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로 바뀌어야 한다. 그 근간을 이루는 게 바로 데이터 플랫폼이다.
세계적으로 ESG와 지속가능성이란 책무가 기업에 부과되기 시작하면서 ESG 데이터 플랫폼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탄소배출량, 협력사 상황 등 기본 데이터가 관리되지 않으면 현황 파악부터 개선까지 요원하기 때문이다.
현재 ESG 관련 규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유럽이다. EU(유럽연합)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이 기준치를 넘으면 ETS(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계해 관세를 징수하는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2026년 시행을 앞두고 이달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배터리 생산부터 폐배터리까지 생애주기 전반을 배터리 여권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EU 배터리법도 지난 7월 승인돼 2026년 시행 예정이다. 각국의 공시제도와 고객사의 요구도 갈수록 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기업들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바로 공시다. IFRS(국제회계기준)재단 산하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기후공시 관련기준을 확정해 지난 6월 발표했고,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도 올 4분기 기후공시 기준을 확정한다는 목표다. 국내에서도 금융위원회가 IFRS-ISSB를 참고해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한다. 당초 2025년 도입 예정이었으나 주요국 일정과 산업계 의견을 감안해 2026년 이후로 하고 추후 협의를 거치기로 했다.
◇ESG 데이터 속도와 규모, 플랫폼·IT시스템 없인 감당 못해
먼저 ESG 공시에 대응하려면 데이터 관리체계와 IT시스템이 준비돼야 한다. 먼저, 공시에 필수적인 ERP(전사자원관리)와 생산현장의 MES(제조실행시스템) 등에 탄소배출 데이터가 담기도록 기능을 확장하는 접근이 있다. 생산라인이나 제품 또는 비즈니스 과정의 탄소배출량 등을 일일이 다루기엔 그 속도와 규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범 엔코아 CTO(최고기술책임자)는 "그동안 기업에서 생산부서는 생산 자동화, 영업조직은 영업예측, 인사부서는 인사시스템 등 각 부서에서 제각각 DX(디지털전환) 활동을 했다. 그런데 ESG 경영을 하려면 제조부터 공급망관리, 인사, 노무까지 모든 데이터를 봐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선 모든 부서가 관여해야 한다. 특정 업무부서나 IT 담당자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과 이해관계자가 데이터를 들여다보며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제조현장과 스코프3(공급망·소비단)까지 아우르는 ESG 경영을 위해선 전문 데이터 플랫폼이 요구된다. ESG 관련 데이터 수집부터 저장·관리뿐 아니라 인사이트 도출까지 지원하는 방식이다. ESG에 특화된 데이터 플랫폼을 이용하면 데이터를 각 조직 간에 효율적으로 교환하고 보관·사용할 수 있다. IoT(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각종 기기·장비단의 원천 데이터 수집도 지원한다.
예를 들어 SK C&C는 탄소배출량관리 솔루션 기업 글래스돔과 협력해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관리하도록 지원하는 디지털 넷제로 플랫폼을 개발, '디지털 탄소 여권 플랫폼'이란 이름으로 서비스한다. 실제 공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코프3 탄소배출량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방수인 SK C&C 디지털ESG그룹장은 "탄소배출량 등 데이터를 공개하거나 제공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보안성도 필수"라면서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공급망 탄소배출량 등 데이터 관리·보고인데, 여러 기업들이 연결된 공급망에선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를 중계해주는 플랫폼의 필요성도 크다"고 밝혔다. 현진완 SAP코리아 지속가능성 파트너는 "대응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데이터다. 공시든 다른 회사에 보내는 것이든 적시성과 정합성을 갖춘 데이터가 확보돼야 한다"며 "앞으로 세부적인 탄소발자국 추적관리 요구도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솔루션 통해 제품 설계·제조단계에 ESG 적용해야
ESG 데이터 플랫폼에 핵심적으로 담기는 요소 중 하나는 LCA(수명주기평가)다. 원료 채취부터 제조·사용 폐기 단계에 이르기까지 제품 생애 전 과정의 환경 영향을 정량화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최근 애플이 자사 최초의 탄소중립 제품 '애플워치9'을 내놓은 것도 LCA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부터 친환경적으로 한 덕분이다. ERP뿐 아니라 PLM(제품수명주기관리) 솔루션도 ESG 흐름에 맞춰 진화하고 있는 것. 애플을 최대 고객사로 둔 프랑스 제조솔루션 기업 다쏘시스템은 시뮬레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품의 디지털트윈을 구현해 정교하게 테스트함으로써 ESG에 최적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양경란 다쏘시스템코리아 지속가능성부문 대표는 "LCA가 되려면 BOM(자재명세서) 단위의 세부 부품 변경 시 환경영향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를 포함해 설계부터 개발·생산까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리·분석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지속가능한 ESG 경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 데이터 활용·분석 프로젝트 상시 구동
반도체, 배터리, 가전, 통신, 디스플레이, 화장품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데이터 활용·분석 프로젝트를 상시적으로 구동하고 있다. 데이터를 자산화하고 표준화해서 카탈로그 형태로 만들어 AI, ESG, 의사결정 등 용도별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수시로 분석하는 체계를 가동하는 게 지향점이다.
국내 대표적인 제조기업 B사는 수년간 데이터 거버넌스, 통합, 분석, 검색시스템 구축·운영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필요한 데이터를 원할 때 얻어서 활용하는 게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대기업 C사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서 의사결정과 AI, ESG에 활용하고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가전기업 D사는 데이터 관리체계와 품질 고도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 아키텍처 표준화와 관리시스템 구축, 표준화, 데이터포털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통해 ESG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ESG와 관련해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동일한 유형의 데이터가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가 기업이 속한 업계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연하고 확장성이 우수한 클라우드를 바탕으로 기업의 데이터를 공개·공유하는 플랫폼도 선보이고 있다.
데이터 플랫폼 기업 스노우플레이크는 기업이 ESG 데이터에 접근해 독자적인 분석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을 제공한다. 2021년 미국 골드만삭스에 인수된 ESG 투자 전문 글로벌 자산운용사 NNIP는 이를 도입해 대규모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김범 CTO는 "특히 데이터 사각지대였던 제조현장의 혁신이 시급하다. 제조기업들은 공급망관리, MES, ERP 등 다양한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각 시스템의 데이터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며 데이터가 표준화되지 않으니 기업 내에서 제품이나 부품을 지칭하는 코드가 다 다르다" "기업들은 거버넌스, 표준화, 문화 등 데이터 기초체력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 그게 안되면 DX도 ESG 경영도 '사상누각'"이라고 말했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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