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아재들을 이길 수 없다' 3-40대가 주름잡는 격투 게임업계
'이히요옷!' 괴성과 함께 '스트리트 파이터 V'의 베가가 무기를 휘둘렀고, 일격을 당한 상대는 끝내 침묵했다. 지난 9월 28일,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김관우 선수가 극적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마지막 순간이었다.
아시안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V' 종목의 결승전에 오른 김관우 선수는 대만의 샹여우린 선수를 4-3 벼랑 끝 승부 끝에 물리쳤고, 값진 금메달을 손에 거머쥐었다.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한국 대표팀의 첫 e스포츠 금메달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한 줄을 쓴 김관우 선수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김관우 선수에게 붙은 또 하나의 기록이 있다. 바로 가장 나이가 많은 e스포츠 선수라는 타이틀이다. 1979년 생인 김관우 선수는 올해 44살로 '아재'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보통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남자 선수라고 하면 병역 면제를 받을 수 있느냐가 도마 위에 오르지만, 김관우 선수는 이미 예비군까지 마쳤기에 해당 사항이 없다. 44살이면 국가대표가 아니라 탈모와 소화 불량을 걱정해야 할 나이다.
특히 다른 e스포츠 종목 선수들의 일반적인 연령대가 20대인 반면에, 유독 대전 격투 게임은 김관우 선수처럼 3-40대가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중이어서 이색적이다.
비슷한 예로는 '철권 7'의 국내 최강자로 불리는 '무릎' 배재민 선수를 들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급의 '철권' 프로게이머인 무릎 선수는 1985년생으로 올해 38살이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우승 117회, 준우승 37회를 기록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이러한 업적이 인정되어 e스포츠 명예의 전당 HEROES 부분에 헌액 되어 있기도 하다.
무릎 선수는 지금도 '철권 7'의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있으며, 내년으로 출시가 예정되어 있는 '철권 8'에서도 맹위를 떨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철권' 시리즈 사상 가장 높은 완성도와 인기를 누렸다고 평가받는 '철권 태그 토너먼트'의 세계 최강자 '딸기' 김영준 선수도 1985년생으로 올해 38살이다.
일찌감치 '철권 태그 토너먼트'에서 4 천왕으로 불렸던 딸기 선수는 한국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100회 이상의 우승, 그리고 전국의 오락실에서 숱하게 100 연승 이상을 하며 '철권 태그 토너먼트' 최고 고인물로 명성을 높여 왔다.
특히 딸기 선수는 지난 6월에 '철권 태그 토너먼트' 최강 국가인 페루를 정벌한 것으로 유명하다. 페루 최고의 권위를 가진 '차칼리토'와 '라픽첵스' 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딸기 선수는 현존 최강자임을 입증하는 한편, 볼리비아 대회와 최근 필리핀 대회까지 우승하면서 더 이상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일본의 상황도 비슷하다. 일본에는 격투 게임 '5 신'이라고 불리는 대표 격투 게이머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격투 게이머가 바로 '우메하라 다이고' 선수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신이라고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전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로 평가받는 우메하라 다이고 선수의 나이는 1981년생으로 42살이다.
아쉽게 아시안 게임에는 참석하지 않아 김관우 선수와의 대결은 불발로 끝났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2'부터 시작해 20년간 정상급 선수로 활약했고, 지난 2021년에 열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 JP'까지도 크게 활약한 그에게는 살아있는 전설(生ける伝說)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북미에서 가장 유명한 격투 게이머인 '저스틴 윙' 선수도 1985년생으로 38살 황혼에 이른다.
'마블 VS 캡콤 2',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 등 잡식성 게이머로 평가받는 그는 알렉스 바예 선수와 함께 북미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미 신체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3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의 아재들이 격투 게임업계를 석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격투 게임의 '시리즈 화'와 '패턴화 된 경험의 누적', 그리고 '오락실의 쇠퇴'가 주요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선 '철권 8', '스트리트 파이터 6' 등 시리즈가 누적되면서 고인물이 더 고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전 격투 게임이 결국은 방어와 공격, 잡기 공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같은 시리즈인 경우 결국은 공방이 비슷할 수밖에 없는 만큼 결국 시리즈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인 피지컬은 부족해지지만 오래 격투 게임을 즐겨온 만큼 그 심리적 노련함이 누적되어, 심리전으로 20대를 압살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아가 오락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지금, 조이스틱으로 즐기는 대전 격투 게임에 젊은 게이머들이 더 이상 적극적으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점도 3-40대 군림의 원동력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레트로 게임 인플루언서 꿀딴지곰은 "사실상 격투 게임은 이제 하는 사람만 하는 게임 장르 중 하나가 됐다. 당장 주변에 10대 아이들이 조이스틱을 손에 쥔 것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캡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6'을 출시하면서 시리즈의 아이덴티티인 6 버튼 체계를 과감히 바꾼 것도 이 같은 위기감의 발로일 수 있다. 격투 게임은 더 쉽게 변해야 한다."라고 현재의 현상을 설명했다.
동아닷컴 게임전문 조학동 기자 igelau@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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