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에겐, 사람 향기가 난다[★인명대사전]
배우 박정민은 그를 두고 ‘천재’라 칭한다.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찍은 단편 영화의 높은 작품성 때문에 학교 규정을 바꾸면서까지 영화제에서 상을 준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저 머리 좋고 실력 높은 ‘천재’로만 그를 규정하기엔 부족하다. 직접 만난 배우 겸 감독 조현철에게선, 따뜻한 사람 향기까지 흘렀다.
참 조근조근하다. 연기도, 연출도 한결같이 자신만의 방향성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걸어가곤 한다. 필모그래피만 살펴봐도 그의 우직한 성격이 보인다.
‘홍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 ‘차이나타운’(2014, 감독 한준희)에선 캐릭터를 허투루 대하지 않는 배우로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여자 ‘일영’(김고은)과 ‘엄마’(김혜수)의 생존법칙을 그린 작품으로, 조현철은 ‘일영’을 아이처럼 따르는 홍주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놀라운 소화력을 보여준다. 과장하거나 희화화하지 않으면서도 ‘홍주’의 결핍을 보여준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진한 여운을 남긴 이유다.
7년 뒤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한준희 감독과 다시 뭉쳐 내놓은 OTT플랫폼 넷플릭스 시리즈 ‘D.P.’ 시즌1에선 군 내부 폭력에 상처입은 조석봉 역을 맡아 그만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번에도 세상의 모든 ‘조석봉’들을 위해 조심스럽고도 세밀하게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 때문일까. ‘D.P.’ 시즌1이 공개됐을 땐 ‘조석봉’ 혹은 조현철에 관한 호평들이 이어졌고, 먹먹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는 의견도 쏟아졌다. 이 작품으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남우조연상을 받았을 당시에도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세월호 아이들, 그리고 사회에 맞서고자 했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담담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연기에서도, 수상소감에서마저도 사람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묻어난다.
두 작품을 함께한 한준희 감독에게 물었다. 그는 한 감독에게 어떤 배우일까.
“배우로서 끝이 어디까지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조현철이란 배우의 많은 면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보고 싶고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감독 이종필)과 웨이브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2023)에선 더 다양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1995년 입사 8년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인 회사 세 여성이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 작품에서 조현철은 ‘최동수’ 대리로 나와 주인공들과 합을 이룬다. ‘동수’는 다른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어떤 편견도 없이 여성 동료들을 대하며,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주인공들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는 인물이다. 조현철은 ‘동수’에게 철없는 남동생, 때론 든든한 친구와 같은 이미지를 투영하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한다.
‘박하경 여행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 선생님 박하경(이나영)의 일상을 그린 이 작품에서, 조현철은 박하경과 같은 학교 미술선생으로 출연해 ‘어른과 아이’에 대한 소소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6화 ‘비오는 토요일’ 편에선 열정은 넘치지만 눈치없이 속편한 인물을 그만의 색으로 완성해 웃음도 선사한다.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건 덤이다.
두 작품을 함께한 이종필 감독에게도 물었다. 그는 어떤 배우일까.
“조현철은 도통 알 수 없어요. 흐릿한데 또렷하고, 쓸쓸한데 명랑하죠. 촬영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연기하듯 말없이 있다가, 정작 촬영에 들어가면 연기라는 것을 하지 않는 듯 보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조현철은 배우 같지 않고 진짜 사람 같아요. 제게도, 모두에게도 드물고 귀한 배우입니다.”
‘터널’(2016)에서 손발을 맞췄던 김성훈 감독도 ‘배우 조현철’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차이나타운’을 보고 ‘터널’에 그를 캐스팅했다는 김 감독은 조현철에 대해 짧고 굵은 정의를 내렸다.
“조용조용하죠. 하지만 ‘배우 조현철’은 매우 독창적인 존재감을 표출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그 인간적인 시선은 이제 메가폰으로 옮겨갔다. 첫 장편 연출작 ‘너와 나’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별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땀 한땀 공들여 들려준다. 그저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질문들을 던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서로에 대한 사랑에 막 눈을 뜬 ‘세미’(박혜수)와 ‘하은’(김시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아이들과 가족들의 일상을 조용히 필름 위로 옮겨놓는다. 소재를 이용하지도 않고, 치우치지도 않은 채 오롯이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한다.
‘한국에선 이 소재를 다루려면 이상하게도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왜 다뤘나’라는 세속적인 질문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너무나도 ‘조현철’다웠다.
“죽음이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때 거기서 나를 꺼내주는 건 사랑이란 감정이었어요. 단순하게 볕이 좋았다던가, 잠을 자는데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거나, 내게 ‘잘 지내?’라고 사소하게 물어봐주는 말들이 모두 ‘사랑’처럼 느껴졌죠.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분들도 사랑을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와 ‘너와 나’ 팀 모두 이 영화를 만들면서 살맛난다고 느꼈고, 공통적으로 작품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따뜻한 온기를 보는 사람들도 함께 나눴으면 해요.”
‘자연인 조현철’로선 쉽게 흥분하지도 않고 지혜로운 ‘멋쟁이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라는 그에게 모두가 바라는 건 한가지 아닐까. 많은 이에게 담담한 응원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그만의 발자취를 남기며 앞으로도 뚜벅뚜벅 걸어가주길, 멋쟁이 할머니처럼.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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