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갈 곳 없어” 분신 시도에 징역 3년 구형···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난민 재신청자들

이보라 기자 2023. 10. 1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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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국적 난민 재신청자인 A씨가 지난 2021년 2월25월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 제공

“나에게 손대지 마세요. 내 몸에 불을 지를 거예요. 너무 지쳤어요. 보호실(외국인보호소)로 들어가게 해주세요.” 지난 7월10일 오후 충북 청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 3층. 에티오피아 국적인 2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한 손에 라이터를 든 채 흐느끼며 말했다. 그가 녹화한 자신의 휴대전화 영상에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2016년 10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갈 곳이 없어요.” 분신 시도 당일 그는 출입국 직원에게 체류 자격을 주거나 외국인보호소에 수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며칠 전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이제 마지막이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절망에 빠진 A씨는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산 뒤 페트병에 옮겨 담아 출입국사무소로 돌아왔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다. 출입국 직원들이 곧바로 그를 둘러싸고 제지했다. 한 손에 쥐었던 라이터를 직원들에게 건넨 A씨는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그는 공용건조물방화예비 등 혐의로 체포돼 7월20일 구속기소됐다. “나한테는 한국이 지옥이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미래가 안 보여요. 저는 갈 곳이 없어요. 일시 비자를 주든지 제3국으로 보내주세요.” A씨가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분신 시도 사건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없는 난민 재신청자들의 어려움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다. 17일 오후 2시 청주지법에서 A씨의 결심 공판이 열렸다.

3개월짜리 ‘시한부 존재’
에티오피아 국적 난민 재신청자인 A씨가 지난 2021년 2월25월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길가에 내건 현수막.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 제공

A씨와 두 형은 2016년 10월 한국행을 택했다. 고국 에티오피아에서 벌어지는 종족간 학살과 내전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A씨와 그의 가족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부와 오로모족은 그의 종족인 암하라족을 위협하고 학살했다. 내전으로 군인들이 집에 쳐들어오기 일쑤였고, 가족이 감옥에 갇혔다.

A씨와 두 형은 입국하자마자 난민 신청을 했다. 할아버지가 6·25 전쟁 참전 용사여서 한국이 받아줄 것이라 믿었다. A씨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두 형은 모두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A씨는 번번이 떨어졌다. 서울 양천구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1인 시위도 하고 법원에 난민불인정 취소소송까지 제기했지만 1·2·3심 모두 “박해의 위험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A씨는 난민 신청자에게 주어지는 단기 비자로 체류하다 2020년 1월 강제출국명령을 받았다. 이후 ‘난민 재신청자’로 분류돼 3개월마다 보호일시해제(외국인보호소 구금해제)를 연장하며 불안정하게 살았다. 3개월짜리 ‘시한부 존재’였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한 A씨는 신분증인 외국인등록증을 반납해야 했다. 신분증이 없으니 통장을 개설할 수도,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도 없었다. 취업도 불가능했다. 우울증이 생겼지만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 진료를 받지 못했다. 형의 집에 4년간 얹혀 살았다. 형과 형수는 점차 A씨와의 동거 문제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정 불화의 씨앗이 됐다고 생각한 A씨는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형수가 홧김에 A씨에게 “내 집에서 나가라”고 말해 갈 곳을 잃은 날이, 그가 분신을 결심한 바로 그날이었다.

“제 몸이나 건물에 불을 지를 생각은 절대 없었어요. 갈 곳이 없으니 이렇게 하면 나를 보호시설에 보내주거나 요청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정말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에게 미안합니다.” A씨가 경찰 조사에서 말했다.

A씨 측은 이날 청주지법 형사4단독(부장판사 조수연)이 심리한 재판에서 범죄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다만 A씨가 라이터에 불을 붙일 것처럼 행동한 적은 없고 체류 상태가 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이날 A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울먹이며 “나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 불을 지를 의도가 없었고 보호소에 들어가려 했을 뿐이다. 한국에서 인간으로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해 힘들었다”고 말했다. A씨의 1심 선고기일은 오는 12월14일로 잡혔다.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

난민 인정이 안돼 고통을 겪는 건 A씨 뿐만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이주민들이 위험을 피해 한국에 왔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지난해 난민인정률은 2.03%에 그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2000~2017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평균(24.8%)에 한참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난민신청자는 다시 난민 신청을 해야 하는 ‘난민 재신청자’가 되는 셈이다.

난민 재신청자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난민 신청자는 단기 비자라도 받지만 난민심사에서 탈락한 재신청자의 경우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곧바로 미등록 신분이 된다. 난민 신청자의 경우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로 취업 활동이 그나마 가능하지만 난민 재신청자는 취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난민 재신청자는 2~3개월마다 출국기한을 유예받는데, 이는 다시 말하면 언제든 강제출국명령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출국 유예기간을 넘기면 미등록 체류가 돼 외국인보호소에 무기한 구금될 수 있다.

난민 재신청자가 가장 문제로 꼽는 것은 신분증 역할을 하는 외국인등록증을 빼앗기는 것이다. 난민지원단체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MAP의 조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 재신청자 B씨는 외국인등록증이 없어 기존에 개설된 카드를 사용하지 못한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거나 은행 계좌를 새로 개설하지도 못한다. 아파도 신분증은 물론 의료보험조차 없어 병원에 잘 갈 수도 없다. “외국인등록증 없이는 모든 생활이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제 본국 에티오피아가 안전한 국가가 될 때까지는 그 어떤 방법도 없습니다.”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 재신청자 C씨는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지만 외국인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 사장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임금을 체불당했다. 그는 “체류기한을 연장할 때마다 출입국에 돈을 내야 하고, 난민불인정 처분을 취소하기 위한 행정소송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제가 그런 돈을 어떻게 낼 수 있겠나”라고 했다.

난민 재신청자는 생계비·주거시설·의료·교육지원과 같은 각종 사회복지 혜택과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카메룬 국적 난민 재신청자 D씨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과 후 학교와 같은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한다. “아이들이 왜 한국 정부는 우리에게 외국인등록증을 주지 않느냐고 물어봐요.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학교 교육에서 소외될 때 굉장히 마음이 아픕니다.”

체한 난민들이 지난해 7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 난민심사 조속처리 및 난민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국 정부는 난민 재신청자 처우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가 마련한 ‘제4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 초안에서도 난민 재신청자의 심사·처우에 관한 정책은 부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유엔난민기구는 지난 1월 의견서에서 “일부 비호신청인(난민 재신청자)들이 체류자격에 대한 접근과 취업허가, 생계, 지원,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생계에 대한 접근이 총체적으로 제한돼 있으며, 제4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이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대해 우려한다”면서 “재신청 사실로 수용 조건이 축소되거나 철회돼선 안 되며, 정부는 최소한 모든 비호신청인의 품위있는 생활수준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성준 MAP 활동가는 “난민 재신청자가 외국인등록증을 빼앗기면 사회·경제적 활동이 막히고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것과 같다. 난민협약에서도 난민재신청자를 포함한 비호신청인에게 신분증을 발급하고, 기본적 생존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강조한다“며 “난민 재신청자들이 한국을 떠나도록 사실상 강요하거나, 한국에서 살더라도 최소한의 삶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매우 아쉽다. 체류 상태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받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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