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한번 가면 ‘최소 1박 2일’ …지방 의사도 “진료 못해, 서울 가라”

2023. 10. 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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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직전의 지방 의료 현실에
‘의대 정원 확대’ 기대감 커져
“비수도권 중심의 의대 늘면
지방에 남는 의사 수도 증가”
정부가 2025년 대학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확대 폭을 놓고는 당초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줄었던 351명만큼 다시 늘리는 방안, 정원이 적은 국립대를 중심으로 521명 늘리는 방안 등이 거론됐으나 실제 발표에서는 확대 폭이 1000명을 훌쩍 넘는 수준일 수도 있다. 사진은 16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연합]

[헤럴드경제=김빛나·안효정·정목희 기자] “의사도 서울에 있는 병원 가보라며, 여기는 치료할만한 환경이 부족하다고 했다. 한 번 안과 갈 때마다 최소 1박 2일은 서울에 지내고…”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모(56) 씨는 4년 동안 어머니의 병원 치료를 위해 전북 익산과 서울 영등포구를 수시로 오갔다. 올해 90세인 이씨의 어머니는 2019년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노화성 눈 질병인 황반변성을 진단 받았다. 고령의 어머니가 사는 전북 익산에는 해당 질병을 치료할만한 병원이 없었다.

전남 나주에 위치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이모(35) 씨는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광주를 간다. 이씨는 “나주에 종합병원이 들어오긴 했는데, 대형 수술은 못하는 거 같고, 장비도 최신 장비를 쓰는 것 같진 않다”며 “제대로 된 진료를 받으려면 광주 전남대병원이나 조선대병원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주에 간다고 진료가 쉬운 건 아니다. 그는 “직장 동료를 이야기 들어보면 (지방대병원측에서) 수술 못한다고 서울 가라는 경우가 왕왕 있다더라”며 “광주에 있는 일반 병원은 전문의가 아니라 의원인 경우도 있어서 의료 시설이 늘 아쉽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남의 경우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75명으로 서울 3.47명에 비해 현저히 적다.

정부가 2006년부터 묶여있던 국내 의과대학 정원을 2025년 입시부터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대한의사협회는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연합]

‘상경 진료’가 익숙한 지방 시민에게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확대는 초미의 관심사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정부가 비(非)수도권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내세운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지방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 시민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의대 입학 정원 확대가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북 경주에 거주하는 정모(29) 씨는 “의대 입학 정원이 확대되는 것이 의료의 질적, 양적 측면에서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정씨는 “지방 의대에 진학하면 의무적으로 몇 년 이상 지방 근무 해야 한다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듯 하다가 의무 근무 기간이 끝나면 대도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과 지방 간 의사 수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로 1000명당 3.74명이었다. 가장 적은 지역은 세종은 1.29명이었다. 지방 대도시의 경우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대부분 지방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명대에 못 미쳤다. 전남 지역은 1.75명, 경남 지역은 1.74명, 충북 지역은 1.59명, 충남 지역은 1.53명으로 대부분 1명대를 기록했다.

지방 의료가 악화하면서 대규모 병원도 적자를 보는 상황이다.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일부 응급실의 경우 적자 상태라 자생력이 없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월급 줄 수 없는 상태인 것”이라며 “그럼에도 응급실은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환자를 위한 곳이라 문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응급실을 60분 안에 이용한 의료이용률’의 시도별 평균은 광역시가 아닌 경우 현저히 낮았다. 전남지역 51.7%, 경북은 53.4%, 강원은 55.8%로 의료이용률이 90.3%인 서울에 비해 2배 가까이 차이 났다.

전문가들은 지방 의대 정원이 확대되고, 지역 인재 유치가 병행된다면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일부는 정원 확대가 지방까지 영향을 미치는 낙수효과가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지역 학생이 지역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경우 해당 지역에 어느 정도 남는 건 증명됐다”며 “가능하면 지방 의대를 늘리고, 지역 인재 선발 전형을 활용해 그 지역 출신이 그 동네 의대를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약 의료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특정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복무를 하도록 하는 제도를 뜻한다. 독일에서도 시골 지역이 의사 부족난을 해결하기 위해 2020년 지역의사제를 도입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17일 당 회의에서 “단순히 의사 수만 늘려서는 안 된다”며 “공공의대 국립보건의료전문대학원 설치와 지역의사제 도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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