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충 '초읽기'..."필수의료 기피·의대 쏠림 해법 제시해야"

문세영 기자,박정연 기자 2023. 10. 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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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 앞에 의대진학 관련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19일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이공계 학생들의 의대 쏠림 심화 등 의대 정원 확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을 해결할 대책도 함께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18년간 제자리였던 의대 정원(3058명)이 현재 알려진 대로라면 1000명 이상 대거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역효과는 물론 증원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한 방편도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원 확대 의지는 확고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17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사인력전문위원회에서 “의사 수 증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정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현실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와 열망도 크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2023 대국민 의료현안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0%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적극 찬성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에 의하면 의대 정원을 5500명 증원해도 30년 후에야 인구당 의사 수가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 김 교수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국내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국책연구 결과, 1만 명에서 2만 7000명 가까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병원이 없어 구급차를 타고 뺑뺑이를 도는 응급환자, 오픈시간부터 소아과 진료를 기다려야 하는 소아 환자, 고연봉 제시에도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방의료기관이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 의료계 “의사 부족 아닌 ‘필수의료 의사’ 부족” 

하지만 전반적인 의료계의 입장은 다르다. 의료계는 의료 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며 인력배치 또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 증가를 통한 낙수효과에 기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 필수의료에 대한 기피 및 미용, 성형 등 소위 '돈 잘 버는 진료과'에 대한 선호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다. 조 장관은 “인력 재배치,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부담 완화 등 의료계 정책 제안들은 정부의 방향성과 일치한다”며 “인력 확충과 함께 추진할 정책 패키지 논의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정부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우선 국립대병원 의사 인력 수와 임금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 발표 시, 파업 등을 동원해 저지에 나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가 지적하는 문제에 대한 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않는다면 2020년 의사 파업이 재현될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일선의료현장에서 전공의들과 개원의사들까지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만약 정부와 여당이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민초의사들은 내년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는 투쟁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8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당시 특정과를 기피하는 현상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기피과 의료인에 대한 획기적인 처우 개선, 의료분쟁 시 분쟁비용 국고지원, 진료 수가 현실화, 필수의료 인력 수련비 지원, 필수의료 민관 협력 등을 제안했다. 

한 지방 소재 대학병원 관계자는 “정부가 의료계의 정책 제안을 인지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실행돼야 한다”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의대 정원 확대는 현재의 의료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계의 우려 사항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거나, 의대 정원 증원이 응급실 뺑뺑이 등의 문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 과학계 “이공계생, 의대 유입률 치솟을 것” 

이공계열 대학의 위기감도 짙어지고 있다. 이공계 의대 이탈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다. 

서울의 한 주요대 생물학 교수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더 많은 이과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고 기존 학생이 떠나는 상황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의대 전성시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고등학교 이과 최상위권 학생과 주요대 이공계열 학생들의 의대 선호 현상은 최근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회 교육위원회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1~2023학년도 대입에서 전국 8개 영재학교 학생 중 218명이 의약학계열에 합격했다. 의약학계열에 진학한 영재학교 학생 수는 2021년 62명, 2022년 73명, 올해 83명으로 매년 오름세였다. 

KAIST를 비롯한 이공계특성화대에선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증가했다. 종로학원이 이공계특성화대 6곳의 재학생 중도 이탈 추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들 대학의 이탈 학생 수는 268명으로 전년보다 81명 많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부분 의약학 계열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교수들은 일각에서 알려진 '3000명 확대안'이 실행되면 고등학교 때부터 이공계 특화 교육을 받은 학생들 대부분이 의약학 계열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방 소재 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학장을 맡고 있는 A교수는 "국내 영재학교와 과학고 전체 정원이 3000명인데 이런 인재들이 모두 의약학 계열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공계 학생들의 규모 자체가 줄어들면서 교수들의 연구에 지장이 있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고 직접 개발한 원천기술로 벤처기업까지 설립한 서울 주요대의 한 교수는 "통상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교수 창업 벤처는 지금도 연구실에서 근무할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며 "좋은 기술을 가져도 이를 발전시킬 인재가 없는 상황이 두렵다"고 말했다.

과학계는 의대 정원 확대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나, 정원 확대로 불거질 '이공계 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A교수는 "기초과학을 연구하기 위해 학교에 남거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선택하는 학생은 기업에 취직한 학생 연봉의 절반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며 "얼마 남지 않을 기초과학도들의 처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세영 기자,박정연 기자 moon09@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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