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 강의' 마무리한 유홍준 "미술사가로 기억됐으면"
"내 책 밟고 뛰어넘는 통사 나오길…한 권으로 요약한 책도 목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어쩌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유명해졌지만, 끝까지 미술사가로 기억에 남기를 바랍니다. 미술사가로서의 제 모습이 여기 이 책에 담겼죠."
미술사가 또는 미술사학자, 전(前)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소개하는 여러 수식어가 있으나 그는 자신을 '영원한 교수'라고 소개했다. 고집스럽게 미술사를 공부해 온 사람이란 의미에서다.
유 교수가 글로 풀어낸 한국미술사 강의가 13년 만에 마침표를 찍는다.
2010년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발해를 다룬 1권을 내놓은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 미술사 흐름을 짚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눌와) 시리즈의 완성이다.
유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홍준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한국미술사 강의'를 서술한 사람으로 알아줬으면 한다"고 완간 소감을 밝혔다.
유 교수는 "처음 책을 냈을 때 책상에 앉아서 밑줄 긋는 미술사가 아니라 소파에 기대어 볼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란다고 해놓고는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내놓을지 몰랐다"며 웃음 지었다.
총 6권, 2천556쪽 분량의 시리즈는 '유홍준'이 바라본 한국미술사 그 자체다.
영어로 옮기자면 '히스토리'(history·역사)가 아니라 '스터디'(study·공부). 한 명의 저자가 일관된 시각으로 한국미술 전반을 다룬 책을 쓴 경우는 드물다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이번에 출간된 5·6권은 유 교수의 고민이 묻어나는 결과물이다.
그는 "조선시대 회화를 뺀 나머지 미술사 흐름을 정리하는 게 어려웠다"면서 "기존의 한국 미술사 서술에서는 없었던 일을 저지른 게 바로 6권 공예, 생활·장식미술 편"이라고 소개했다.
책에서 그는 재료에 따라 유물을 분류하는 기존 체계에 물음표를 던진다.
조선 영조(재위 1724∼1776)가 왕세손 정조(재위 1776∼1800)의 효심에 감동해 내린 은인(銀印·은 도장)과 유세손서(諭世孫書)가 하나의 예다. 금속공예로는 이 유물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유 교수는 "종래의 미술사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 게 정조 효손 은인'이라며 "올림픽에 종목이 없어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상황이 비슷할 것 같다. 이런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그는 도자, 금속, 나무, 종이 등으로 나누는 재료적 분류 대신 사용자의 기준에서 왕실 공예, 규방 공예, 선비 공예, 민속 공예 등으로 구분한다. 새로운 기준을 제안한 셈이다.
이와 함께 그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민화, 자수 등도 비중 있게 다뤘다.
유 교수는 "이렇게 저질러 놓으니 기분은 개운하다. 우리 미술사의 발전을 위해 내 책을 밟고 뛰어넘는 (다른) 한국 미술사 통사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진짜 하고 싶은 건 6권의 책을 줄여서 1권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책 제목은 1984년 시작했던 공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로 이미 정해뒀다"고 귀띔했다.
유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미술사 연구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왜 서양 미술사는 재미있는데 한국 미술사는 재미없냐고 하면 (과거부터) 연구한 대로 해온 영향이 있다"며 도자·회화·조각 등 일률적으로 장르를 나눠 연구하는 경향을 언급했다.
그는 이어 "조각사, 회화사로 연구해봤자 앞 사람의 연구에 몇 개 더 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르 구분이 아니라 시대 구분으로 연구하면 더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 교수는 주요 유물이나 작품을 소장한 기관 등에서 요구하는 사진 이미지 사용료가 젊은 연구자에게 부담이 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유물의) 이미지 한 컷을 사용하는데 10∼30만원을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새로운 필자가 책을 못 낼 정도"라며 "도판 사용료와 관련한 횡포가 심한 곳도 몇 곳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교수의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그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쓰는 것, '한국미술사 강의'를 한 권으로 만드는 것, 근현대 미술사 부분을 쓰는 것 등 서열을 어디에 둘지 모르지만 80살 전에는 하려고 한다"며 말했다.
"누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무엇이 먼저일지 모르지만, 꼭 만납시다." (웃음)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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