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연속 노벨상 맞춘 ‘족집게 편집자’…“다음 책? 영업비밀 됐네요”
지난해 아니 에르노 이어 올해 욘 포세까지
직접 기획·편집한 작가들 노벨문학상 수상
2년연속 진기록에 “꿈꾸는듯 어안이 벙벙”
“꼭 만들어보고 싶은 궁극의 책이 있다면
새로운 목소리 전달하는 지금의 모든 책”
지난 5일 노벨문학상 발표 직후, 한 편집자가 출판계에서 화제가 됐다. 민음사 해외문학팀에 근무 중인 유상훈(39) 편집자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호명됐다 유 편집자는 마침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I-II’를 최종 편집 중이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번의 우연이야 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년 초 그가 책을 편집했던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도 작년 10월에 노벨상을 받은 바 있다. ‘편집자’란 자리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책의 기획·출간을 총괄하는 직업임을 기억한다면 ‘2년 연속 수상’은 진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해 편집한 책의 작가가, 그해 노벨상을 받는’ 경험이 두 번이니 ‘노벨상 족집게’라 부를 만하다. 최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난 유 편집자는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어안이 벙벙하다”며 웃었다.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I-II’의 문장을 유 편집자가 처음 접한 건 작년 가을이었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아니 에르노가 화제가 됐을 무렵, 그는 다음 책으로 욘 포세를 떠올렸다. 욘 포세는 희곡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웅숭깊은 소설 언어에도 큰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멜랑콜리아 I-II’는 포세가 한 풍경화가에 대해 대해 쓴 소설이에요. 삶에 자리한 사랑과 죽음, 불안과 허무의 원천을 파고드는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예술의 욕망, 인간의 그늘, 죽음과 기억, 시적 언어를 모두 움켜쥔 욘 포세 대표작으로 통한다.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 시선, 치매에 걸린 노인인 누이의 시선이에요. 빛을 사랑했지만 그늘진 인생을 살았던 예술가에 관한 소설입니다. 1867년 라스 헤르테그비그가 그린 풍경화 ‘보르그외위섬’을 이번 책 표지로 결정했는데, 포세의 문장과 라스 헤르테그비그의 그림에 매료돼 작업했습니다.”
웅숭깊은 소설 언어에 매력 느껴”
쏜살문고 시리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3만부, 아니 에르노의 ‘사건’과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은 각 1만부쯤 나갔다. 한여름에도 냉기가 도는 출판시장에서 훌륭한 성적이다. 그렇다고 매번 유 편집자가 홈런과 3루타만 치는 건 아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책이 더 많은 독자에게 가닿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어느 편집자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고(故) 박맹호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 직원들과 점심에 식사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편집자란 직업은 한 권의 책을 총체적으로 결합하는 일이란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엔 숨은 목소리가 많은데, 이를 추출하는 발굴자이자 전달자가 편집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껏 만들어낸, 바로 지금의 책”
“이쯤되면 저도 이제 지금 편집중인 책이 누구의 책인지는 ‘영업 비밀’이라고 해야겠죠? (웃음) 저메이카 킨케이드와 다와다 요코를 주목하고 있어요. 작년에 여성 작가, 올해 남성 작가였으니 내년엔 여성 작가가 아닐까 싶고요.”
“출판사에 처음 입사할 때 많이 들었던 얘기가 ‘빨리 도망쳐라’였는데(웃음) 출판 업종은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고,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새 목소리를 발굴하고 전달하는 지금 이 순간이 모두 제게는 궁극의 책을 만드는 시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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