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전 MBC사장 "2022년 지록위마 희생양은 MBC"
[인터뷰] 'MBC를 날리면' 신간 내놓은 박 전 사장
"김건희 녹취록 보도로 '확실하게 손 봐야 한다' 기류"
"저 사람들이 말하는 공영방송 정상화는 무력화, 해체"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지금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2022년 9월 김은혜 홍보수석 브리핑은 대통령실의 VIP 리스크 대응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장면이자, 훗날 'MBC 탄압'을 예고한 상징적 순간이었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말했다는 MBC 첫 보도는 '가짜뉴스'가 되었고, 정부 여당은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MBC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초유의 'MBC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사건이 이어졌고, 이윽고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마저 멈췄다. 박성제 전 MBC사장이 자신의 퇴임 후 첫 번째 책 제목을 <MBC를 날리면>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6일 합정동 '카페 창비'에서 만난 박 전 사장은 “2022년 지록위마의 희생양은 MBC였다”며 “MBC를 날리면 다음은 굉장히 쉽게 날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MBC를 날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MBC 사장을 바꾸고 조직을 와해시켜 순응 언론으로 만들거나, 자본에 팔아넘기겠다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MBC 구성원의 오래된 원칙이 MBC를 되살려낸 원동력인데 그것부터 무너뜨릴 것이다. 수익만 생각하는 평범한 상업 방송이 될 것이다.”
공영방송 다음은 포털과 유튜브를 날릴거라고 했다. “이동관 방통위는 뉴스타파 같은 인터넷 언론, 나아가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같은 유튜브채널까지 손 볼 계획이다. 네이버다음에는 (가짜뉴스 매체라는) 도장을 찍어 (포털에서) 퇴출시키고 유튜브 콘텐츠는 블라인드 조치가 이뤄질 것이다.” 박 전 사장은 “누가 공영방송을 보냐, 유튜브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영방송이 무너지면 유튜브 통제까지 가게 되어 있다”면서 공영방송이 다른 모든 플랫폼의 표현의 자유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이자, 동시에 자유를 지켜낼 울타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책에서 “KBS와 MBC 낙하산 사장은 2010년과 똑같은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사내 '종북좌파 세력'을 축출하고, 좌파 성향의 진행자와 앵커들을 교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공정방송과 언론자유를 위해 만들어졌던 노조와의 각종 협약들은 쓰레기처럼 버려질 것이다. 어렵게 1위를 회복했던 MBC 신뢰도는 급속도로 다시 추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20년부터 3년간 사장 재임시절 MBC를 신뢰도·영향력 1위 언론사로 올려놓은 언론인 박성제는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 애사심으로 책을 써내려갔다. 책의 추천사를 쓴 언론인 손석희의 표현을 빌리면, 박성제가 이 책을 쓰는 건 그의 '팔자'였다.
박 전 사장은 지난해 대선 직전 MBC <스트레이트>의 김건희 여사 녹취록 보도가 尹정부와 오늘날 MBC 사이의 관계를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고 봤다. 그는 “우리는 이재명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보도한 게 아니다. (김건희 여사 발언이) 검증 대상이 된다고 본 것”이라면서 “(방송 이후) MBC가 민주당 방송이다, 좌파 방송이다, 노영방송이다, 그런 프레임으로 '확실하게 손을 봐야 한다'는 기류가 (윤석열)캠프 때부터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당시 보도를 가리켜 “국민의힘은 녹취록의 보도 가치를 끝까지 부인했고, 민주당 지지층은 MBC가 윤석열 후보 눈치를 보느라 방송을 어중간하게 냈다고 비난했다. <스트레이트>가 방송을 제대로 했으면 이재명 후보가 이겼을 거라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전한 뒤 “어느 쪽이든 공영방송을 정파적 도구로 바라보는 인식 탓”이라고 지적했다. 16일 만남에선 “김건희 여사측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되면서 몇 가지 중요한 대목이 (방송에) 못 나가고 변호사들이 (보도 내용에) 힘을 빼는 바람에 제작진이 중립적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져 뉴스 자체는 파괴력이 없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윤 대통령 발언 보도는 2022년 9월22일 오전 9시40분경 대통령실 기자단 엠바고가 풀린 뒤 10시7분경 MBC뉴스 유튜브채널을 통해 제일 먼저 나갔다. MBC처럼 '바이든'으로 보도했던 곳이 140여 곳으로 알려졌으나, 외교부는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에 나섰다. 이를 두고 박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을 보도한 곳이 수십 곳이었는데 이명박 정권으로 바뀌면서 보수언론은 괴담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부는 PD수첩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외교부 소송이 2008년과 완벽하게 같은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8년 농림부가 PD수첩 상대로 먼저 소송을 걸고, 수사 진행 중에 엄기영 MBC 사장이 사과방송을 하자 검찰이 수사에 나서 PD들을 체포했다”며 “이번에도 MBC의 사법 처리를 위해 소송을 먼저 한 것이다. 정정보도 판결이 나오면 그걸 빌미로 검찰이 뉴스타파급으로 수사에 나설 것”이라 내다봤다. 물론 2008년과 다른 패턴도 있다. 그는 책에서 “MBC 죽이기에 동원된 첫 번째 칼은 국세청이었다. 두 번째 칼은 고용노동부였다”고 적었는데, 16일 만남에선 “MB때는 (MBC 장악에) 검찰만 동원됐다. 감사원, 국세청, 고용노동부, 경찰이 전부 동원되진 않았다. 지금 정부는 MBC를 망가뜨리기 위해 모든 공권력을 다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국 사태 “MBC 뉴스 존재감 확실히 증명”
“민주당 언론중재법 개정안 좌절, 당연한 수순”
언론인 박성제는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 당시 '파업 주동자'로 몰려 해고된 뒤 5년 넘는 투쟁 끝에 2017년 12월 복직했다. 그리고 복직 7개월만에 보도국장을 맡았다. 그는 “전통적 MBC 시청자들이 JTBC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봐도 JTBC가 잘하는데, 보통의 노력 가지고는 안 되겠다,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2018년 당시를 떠올렸다. 책에서도 “MBC가 따라잡기에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였다”며 JTBC라는 '거대한 벽'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전환점은 조국 사태였다. 박 전 사장은 조국 사태가 “MBC 뉴스 차별화의 시험대”였고,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책에서 “(조국의) 사모펀드 의혹은 권력형 비리 의혹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사모펀드 단독 기사가 올라왔다. 포털을 도배한 권력형 비리 의혹이 모두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다. 난 언론이 검찰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우리가 확인한 게 아니라면 검찰 말만 듣고 쓸 필요 없다. 특종 없어도 좋다고 했다”고 적었다.
그는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 위조 혐의나 허위 경력 제출 혐의를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조국 일가에 대한 무지막지한 수사와 언론의 융단폭격 역시 정상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적었다. 박 전 사장은 16일 만남에서 “(나를 두고) MBC 내에서도 국장이 법조를 안 해봐서 모른다고 했다”며 사내에서도 당시 자신의 판단에 대한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 현장을 드론 촬영으로 보도했던 순간을 두고선 “MBC뉴스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실히 증명한 날”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MBC가 조국 수사 보도에 소극적이었다는 주장에 “반박할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그는 책에서 “조국 보도에서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심각한 저널리즘 위기였다. MBC는 시청자 눈높이를 따라가는 뉴스,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현장에서 시민과 만나는 뉴스라는 원칙을 기자들이 이해하고 완성해줬다”고 썼다. '시청자 눈높이를 따라가는 뉴스', '시민과 만나는 뉴스'란 뭘까.
“서초동 집회에 나왔던 시민들은 조국 때문에 나온 게 아니라 검찰개혁 때문에 나왔다고 했다. '조국 수호' '검찰개혁' 두 가지 팻말이 있었지만, 집회에 나온 시민들의 의식 수준은 꽤 높았다. 기자들이 오히려 조국 수호 집회다,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집회 규모는 커졌다. 그래서 드론을 띄우라고 한 것이다. 시민들은 조국과 검찰개혁을 분리해 생각할 줄 아는데, 기자들은 그것을 분리하지 못하고 저 사람들은 조국을 지키러 나온 것이라며 처음에 여론을 못 따라왔다.” MBC는 여론을 간파해 보도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했고, 그것이 시청률 등 각종 지표의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책에서 더불어민주당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2021년 통과됐다면 MBC를 비롯한 상당수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피해액의 5배를 배상하라는 각종 소송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며 개정안의 좌절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적기도 했다. 박 전 사장은 “시민이 생각하는 언론개혁과 현업언론인이 생각하는 언론개혁이 다를 수 있다”며 “언론자유가 늘어나고, 좋은 언론과 좋은 언론인의 양성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언론개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영방송은 지배구조만 해결해주면 나머지는 저절로 된다”고 덧붙였다.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의 언론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한 그는 앞으로 북콘서트를 이어가며 MBC를 둘러싼 현 정부의 언론장악 문제를 알려나갈 생각이다. “국회로 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주변에서 잠깐 비난받더라도 공영방송을 위해 제대로 싸우라는 조언과, '박 선배만큼은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역대 MBC사장이 대부분 정치권으로 가려고 했는데 최승호 선배가 저널리스트의 본분을 지켜줬다. 나는 당분간 후배들을 위해 밖에서 언론 운동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다.”
“저 사람들(정부여당)이 말하는 공영방송 정상화는 무력화, 해체다. MBC는 KBS보다 간은 벌었지만 연말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MBC를 날리면, KBS를 날리면, 그가 바라보는 언론계 전망은 암울하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방송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사장 뽑는 구조만큼은 정파의 영향에서 벗어난 사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언론개혁을 위한 제1과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지금 개정안이 100점은 아니지만 80점 이상은 된다”면서 “지금은 탄압에 맞서 싸우는 게 중요한 시기다. 국민의힘과 방통위가 밀어붙이는 퇴행적 움직임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민주당 등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MBC 후배들을 향해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다. 또 ”MBC 사장은 자기가 총 맞을 생각하고 버텨줘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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