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슬퍼하는 이들 있으니’···돌아온 핼러윈, 참사 의미 되새기는 시민들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를 열흘여 앞둔 17일 낮 12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미국계 창고형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 1층 매장 입구를 지나 약 20m를 걸어 들어가자 크리스마스트리, 루돌프 모양 조명 등으로 장식한 기획상품 전시 공간이 펼쳐졌다. 15평 남짓한 공간에는 각종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이 쌓여 있었다. 물품을 구경하던 고객 2명은 2m가 훌쩍 넘는 산타 모자를 쓴 곰 인형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크리스마스 기념 주류 상품과 초콜릿 상자 등이 눈에 띄었다.
크리스마스 기획전이 한창인 이 공간들은 매년 이맘때면 핼러윈 관련 물품이 쌓였던 곳이다. 고객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핼러윈 관련 용품은 없냐’고 묻자 “올해는 (제품이) 들어온 게 없다. 크리스마스용품이 먼저 들어왔고, 핼러윈 관련된 건 젤리 한 종류”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코스트코에 핼러윈 물건이 사라졌다’는 내용의 글이 화제가 됐다. 코스트코는 미국의 대표적 명절인 핼러윈을 앞두고 해마다 관련 물품을 대량으로 들여와 홍보해왔다.
코스트코가 핼러윈 관련 물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은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1주기 영향으로 보인다. 다른 백화점과 여타 대형 할인점에서도 핼러윈 관련 행사는 찾기 어려웠다. 매년 핼러윈을 주제로 대규모 축제를 벌여온 테마파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에버랜드는 추수감사절, 서울랜드는 독일의 대표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 춘천 레고랜드는 ‘가을 작물’, 롯데월드는 ‘판타지’로 가을 축제를 꾸몄다. 스타벅스도 핼러윈 관련 기획상품(MD) 출시를 생략했다.
‘조용한 핼러윈을 보내자’는 움직임은 산업 분야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감지된다. 학부모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올해는 (유치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안 연다고 한다” “부모들이 건의해서 추수감사절 파티로 주제를 바꿨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초등교사 A씨(34)는 “4년 전쯤부터 10월이 되면 교실을 핼러윈 분위기로 장식했는데, 올해는 이태원 참사도 있고 해서 허수아비와 잠자리로 ‘클래식’하게 꾸몄다”며 “아이들의 의견도 물었고, 별문제 없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대구 핼러윈 축제’를 비롯해 관련 지역 축제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온라인에선 “핼러윈을 즐기고 싶어도 눈치가 보인다”는 반응도 있지만, 경향신문이 만난 상당수 시민은 축제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해가 간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날 코스트코를 찾은 이의순씨(71)는 “(이태원 참사가) 이제 1년 지났는데 이런 상황에선 당연히 조용히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직장인 박모씨(32)는 “축제를 즐기는 건 자유이지만, 150명이 넘게 사망한 참사가 벌어진 날인 만큼 개인적으로는 조용히 보내겠다”고 했다.
핼러윈 축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두고 “안전한 축제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홍대 한 식당에서 일하는 서아름씨(23)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슬퍼하는 것도 좋지만, 상권 회복도 필요한 만큼 안전을 신경쓰면서 축제를 즐기면 좋겠다”며 “이태원 참사 이후 돌아온 크리스마스는 홍대 일대에 경찰 통제가 이뤄져 비교적 안전하게 지나갔다. 그때처럼 하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역시 전날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핼러윈은 참사의 원인도, 본질도 아니다. 축제에 나선 사람들은 죄가 없다”며 “우리는 안전을 도외시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고,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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