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고 사람마다 제각각...2조원 투자해 만든 ‘누리호’ 기술가치는 얼마?
“시장 수요 없는 누리호, 기술이전료 받기 어려워”
“기준 모호한 기술이전료…가이드라인 만들어야”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두 차례의 발사 성공을 거쳐 민간기업으로 기술이전을 앞두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기술을 이전받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를 두고 기술이전료를 협상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금액을 놓고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7일 과학계에 따르면 항우연은 한국형발사체 체계종합기업으로 선정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최대 24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료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240억원 중 150억원은 일시불로 지급하고 90억원은 앞으로 있을 세 번의 누리호 발사마다 30억원씩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초 기술이전료 없이 누리호를 기술이전하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 누리호 기술을 무료로 이전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에 기술이전료 규모를 놓고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최근 누리호 고도화사업단장에 박종찬 항우연 책임연구원이 새로 선임되면서 기술이전료 협상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된 상태다.
한 항우연 관계자는 “기술이전료는 결국 이전받은 기술로 얼마나 수익을 창출하느냐가 중요한데, 이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누리호가 많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상 기술료는 통상 기술로 창출한 이익을 지급하는 형태지만, 누리호는 일반적인 영업으로 발생한 이익 대신 고도화사업 중 받는 발사 비용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누리호 개발을 위해 10년간 들인 세금은 총 1조9572억원이다. 언뜻 2조원 가까운 세금이 들어간 발사체 기술이 240억원에 기업에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누리호는 상업적으로 활용하기엔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 이전료도 낮아진 것이다. 전 세계 발사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발사체 ‘팰컨9’의 경우 누리호보다 10배 많은 중량을 실을 수 있고, 재사용이 가능하다.
우주 분야 전문가들도 누리호가 높은 기술이전료를 받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권세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2조원이라는 세금이 연구개발비로 투입됐기 때문에 협상된 기술이전료가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금액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수요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이전료를 내는 게 부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0여 년 동안 누리호를 개발하고 성공했는데,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있는 한국이 기술을 국가연구소에서 계속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발사체 기술을 사업화하겠다는 기업이 있는 것 자체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항우연 원장을 지낸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도 “국가에서 우주기술 발전을 진흥하는 상황에 기술이전료를 받는 것 자체가 적당한지 모르겠다”며 “누리호는 자력으로 발사에 성공했다는 의미가 있긴 하지만,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주 분야 교수도 “기업에게 기술이전료를 받는 것보다 양산 체계를 먼저 만들어 실질적인 이익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라며 “전 세계적으로 위성을 보낼 수 있는 발사체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누리호의 발사 단가를 낮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리호 기술의 가치를 올려 이전료를 받으면 오히려 기술이 사장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정부가 개발한 우주기술을 민간기업에 이전하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출연연구기관과 민간기업이 기술이전을 협상할 때 사용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에서 민간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를 강조하는 만큼 앞으로 기술이전 협상이 잦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방효충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기술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운용관리 기술 등 요소가 많아 기술료가 명확하게 얼마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며 “한국은 아직 전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전료를 받는 사람과 지불하는 사람 간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사례를 참고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기술이전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4차 발사부터 체계종합 기업으러 본격적으로 참여한다. 4차 발사는 2025년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다. 누리호는 차세대 중형위성 3호를 싣고 지구 궤도를 향해 발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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