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관료를 ‘동지’ 아닌 ‘기술자’로 발탁하고 활용했다”

박찬수 2023. 10. 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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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10

“DJ는 나를 동지가 아니라 기술자로 발탁했다. 하기야 DJ 정권에 지분 한 점 없었으니, 언론은 나의 발탁을 ‘실용 인사’라고 평했다. 그래서였을까. 디제이는 내게 늘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금감위원장과 재경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한 것은 꼭 한 번뿐이었다. 끝까지 날 ‘기술자’로 대했지만, 국정 운영에선 본받을 점이 많았다. 살벌했던 구조조정 소용돌이 속에서 디제이는 한 번도 개인적 청탁을 하지 않았다.”

1999년 4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우수기업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 대통령 왼쪽에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앉아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대통령과 관료②

2008년 1월,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국정홍보처 업무보고를 받을 때의 일이다. 한 인수위원이 ‘국정홍보처가 추진한 언론선진화 방안이 언론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었다’고 추궁하자 홍보처 고위 관리가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고 답변했다. 청와대 지시를 따랐을 뿐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였다. 다음날 이 간부는 “막스 베버는 ‘이상적인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했던 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료는 영혼이 없다’는 발언은 두고두고 관료의 해바라기 성향과 권력에의 굴종을 상징하는 말이 됐다. 떠나는 정권이나 새로 들어오는 정권이나 관료의 이런 속성을 못마땅해했다. 현장에서 업무보고를 지켜본 김형오 당시 인수위 부위원장(나중에 국회의장을 지냈다)은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된다.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했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일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때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승리해 청와대에 입성한 뒤 첫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관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이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 말이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말이나 의미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의 칼을 든 여신 디케는 눈을 가리고 있다. 눈을 가린 건 사사로운 감정의 개입을 막겠다는 뜻이다.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겠다는 뜻은 아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관료의 영혼’을 말한 것도 이런 의미였다.

막스 베버는 1919년 뮌헨대학의 학생 집회 연설을 정리한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관료와 정치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한 관료는 그의 본래의 직무에 따라서 정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무엇보다 비당파적으로 ‘행정’을 해야 합니다. 이 점은 소위 ‘정치적인 행정 관료’들에게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해당됩니다. 진정한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자기 직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정치가라면 언제나 반드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즉 투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관료는 ‘정치’가 아닌 ‘행정’을 하는 집단이며 비당파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관료의 본질에 관한 막스 베버의 정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흔히 관료를 ‘테크노크라트’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전적으로 테크노크라트는 ‘과학 지식이나 전문 기술을 갖고 사회 또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한다. 멋지게 들리는 말이지만, 달리 말하면 ‘기술자’라고 할 수 있다. 관료를 ‘영혼이 없다’고 부르는 것과 맥이 통하는 단어다. 기술자는 주어진 일을 ‘잘하면’ 된다. 문제는 관료들이 일을 잘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강력한 카리스마와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정치적 퍼포먼스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정책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국민의 삶을 지금보다 나아지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중요하다. 1997년 대선에서 헌정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건 외환위기(IMF 사태)였다. 2022년 대선에서 문 재인 정부(민주당 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한 건 부동산 정책 실패의 영향이 컸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에 세 아들 비리 의혹 사건(결국 둘째 홍업씨와 셋째 홍걸씨가 구속됐다)이 터지며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30% 넘는 지지율로 임기를 끝낼 수 있었던 건 외환위기 극복과 월드컵 성공, 정권 재창출의 영향이 컸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지지율이 20%까지 떨어졌지만, 임기 2~4년 차엔 40%대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2007~08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에 비교적 잘 대처했다는 평가가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1998년 8월 김대중 대통령이 정부부처 3급 이상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경제난 극복을 위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선 관료를 움직이는 게 필수적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실에서 국민 삶을 바꾸는 건 정치적 수사가 아닌 행정을 통해서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가치를 현장에 정확히 구현해서 성과를 내는 건 관료들의 몫이다. 대통령이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는 결국 관료를 얼마나 잘 움직이냐에 달린 셈이다. 몇달 전 새만금 잼버리대회의 참담한 실패는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단적인 예시다. 여성가족부 등 3개 부처 장관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국무총리실이 지원에 나선 범정부적 행사였는데, 더구나 개영식(개막식)엔 대통령 부부까지 참석했는데, 위생·안전·급식 등 가장 기본적인 현장 상황을 아무도 챙기지 못한 건 과거 국제대회 경험에 비춰보면 놀라운 일이다.

중앙부처 차관을 지낸 전직 관료는 “우리나라 관료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직언을 하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는 점이다. 권위주의 정부일수록 밑에서 문제점을 예상해도 위에 잘 보고하려 들지 않는다. 괜히 토를 달면 인사나 승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큰 탓이다. 장·차관이 실력으로 부처를 장악하지 못하고 오로지 대통령실만 바라보는 체제에선 이런 경향이 더욱 도드라진다. 새만금 실패는 지금 관료 사회의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대다수 관료는 ‘테크노크라트’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기술자’로 불리는 건 내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스스로를 ‘기술자’로 표현했던 고위 관료가 있다. 이헌재 전 경제 부총리다. 이 전 부총리는 자서전 ‘위기를 쏘다’에서, 1998년 외환위기 소방수(금융감독위원장)로 자신을 발탁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디제이(DJ·김대중 대통령의 애칭)는 나를 동지가 아니라 기술자로 발탁했다. 하기야 디제이 정권에 지분 한 점 없었으니,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당시 언론은 나의 금융감독위원장 발탁을 ‘실용 인사’라고 평했다. 그래서였을까. 디제이는 내게 늘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금감위원장과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일한 2년 반 동안 디제이를 독대한 것은 꼭 한 번뿐이었다. 그것도 장관직 사의를 밝힌 뒤에야 겨우 성사됐다. 이처럼 끝까지 날 ‘기술자’로 대했던 디제이지만, 국정 운영엔 본받을 점이 많았다. 그 살벌했던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디제이는 한 번도 개인적 청탁을 하거나 정책에 간섭한 적이 없었다.”

이 전 부총리는 굳이 ‘기술자’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묻자 이렇게 우회적으로 답했다. “디제이는 이념에 매몰될 거 같았는데도, 균형 감각이 있고 현실 감각이 뛰어났다. 현실 관료 체제의 한계를 분명히 알면서도 정치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를 기용했다. 그건 내가 그 일(구조조정)에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권세력 내부에서) 중간에 나를 바꾸자는 얘기가 몇 번이나 나오고 불만도 있었지만, 끝까지(구조조정 끝날 때까지) 나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가려고 했다. 디제이는 관료 체제 그 자체에 대해선 신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필요한 사람은 적재적소에 쓴다’, 이런 생각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관료는 효용에 맞게 활용하면 되지 정권을 책임진 주체는 아니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생각했다는 뜻이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인사는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그만둔다고 하자, 후임에 김 대통령 아들과 가까운 경제 관료가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디제이는 이 사람을 쓰지 않았다.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하는 인사와 달리, 관료는 그 능력에 따라 쓰면 된다는 생각을 김 대통령은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관료를 ‘기술자’로 보는 시각은 어느 대통령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6공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여러 대선 후보의 멘토 역할을 했던 김종인 전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관료를 쓸 때는 당연히 ‘기술자’로 생각해서 쓰는 것이지, 같이 정치를 오래 해온 동료의식이나 이런 걸 생각해서 쓰는 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이헌재 금감위원장이나 이규성 재무부 장관 같은 이는 제이피(JP·김종필 전 총리의 애칭)계인 김용환씨가 추천한 사람들 아닌가. 그 점에서는 디제이가 관료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 (정책 실패나 국정운영 어려움을 갖고서) 관료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 관료는 예전의 관료에 비해서 훨씬 공부도 많이 하고 유능한 측면이 있다. 그걸 활용하는 건 정치인의 몫이다. 대통령이 통찰력을 갖고서 능력 있는 관료를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능한 관료를 제대로 발탁해서 활용하고 있을까?

※ 다음 회엔 ‘대통령과 관료’ 세 번째 이야기가 실립니다.

박찬수 I 대기자

한겨레신문사에서 워싱턴특파원과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청와대와 국회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 한국 진보운동의 과제를 담은 <진보를 찾습니다>(2021년)를 펴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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