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일제 농기계 구매 매년 1000여억 보조금…"국산은 고사 직전"
이앙기, 국산보다 일본산 구매에 예산 2배 쓰여
일본산 비싸지만 '정부 지원'으로 국산 가격에 구매 가능
판매량 줄면서 개발 부담↑...콤바인은 日에 시장 잠식 직전
국내 농가의 기계화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이 일본산 농기계 구매에 쓰이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상 외국산 구매를 차별하면 안 되지만, 일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국내 기업은 경쟁력을 잃어 일부 제품은 국내 시장 자체가 일본 제품에 잠식당하기 직전인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에서 제출받은 '농기계 융자 구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000억원 넘는 예산이 일본산 농기계 구매에 지원됐다.
농기계 융자 구입 사업은 농가가 농기계 구매 대출을 받으면 대출금리의 2%는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 금리 분을 정부가 부담하는 제도다. 2018년부터 매년 1250억, 1317억, 1260억, 1314억, 1266억원이 일본산 제품 구입에 지원됐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3~24% 정도로 국내산 지원금이 더 많지만 이는 일본 기업들이 국내에서 아직 모든 농기계 품목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기업이 진출한 '쌀농사 기계'는 일본산 구매에 쓰인 예산이 국산보다 대체로 더 많다. 콤바인은 2019년부터 일본산 구매에 지원된 예산이 국내산에 쓰인 예산을 앞질렀다. 지난해는 다시 뒤집혔지만 그전 3년 동안 적게는 8억, 많게는 50억원 가까이 일본산 구매에 더 많이 쓰였다. 이앙기는 불균형이 더 심하다. 최근 5년 동안 일본산 구매에 예산이 최소 2배 넘게 더 쓰였다. 2017~2022년 동안 국산 구매에는 한해 134억~173억원, 일본산에는 264억~337억원이 쓰였다.
지난해 일본산 이앙기 구매에 국내산 구매보다 2배 많은 예산이 투입됐는데, 구매된 이앙기는 1.3배 많았다. 그만큼 한대당 일본산 농기계 가격이 비싸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농가가 일본산을 찾는 건 '품질 차이' 때문이다. 이앙기는 모내기, 콤바인은 추수 때 써 1년에 사용하는 기간이 1~2달 남짓 밖에 안돼 잔고장이 잦지만 농기계 업계 관계자는 "일본산은 고장이 적다"고 말했다.
품질 차이는 '체급 차이'에서 비롯된 면이 크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 농기계 회사 구보다와 얀마는 업계의 '전통 강자'로 꼽힌다. 각각 1890년, 1912년 설립돼 업력이 100년 넘고 매출 기준으로 구보다는 세계 3위, 얀마는 5위 기업이다. 국내 대표 농기계 회사인 대동은 1947년, TYM은 1951년에 세워졌고 매출 수준은 구보다, 얀마에 비하면 현저히 적다.
정부 보조가 체급 격차를 더 벌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국내산 콤바인이 한대에 3000만원이면 일본산은 600만원 정도 더 비싸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융자 지원을 받거나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600만원 정도 받으면 국산 가격에 일본 제품을 살 수 있다"며 "정책 보조가 일본산 판매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격차가 벌어지고 판매가 줄어들면서 국내 농기계 업계는 개발 자체를 단념하고 있다. 농기계 중에도 콤바인과 이앙기, 트랙터처럼 규모가 큰 기계는 개발하는 데 수백억원, 수년이 소요된다. 한번 개발하면 최소 3~4년은 꾸준히 판매돼야 개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데 판매가 줄어드니 그만큼 개발 리스크도 커진 상황이다. 국내 A사는 4~5년 전까지만 해도 콤바인을 한번 개발하면 한해 1200대가량 팔았지만 최근엔 판매량이 400~500대로 줄었다.
특히 콤바인은 국내에서 대동과 TYM만 자체 개발하고 있다. 다른 업체들은 얀마, 이셰키 등 일본 제품을 수입해 총판 개념으로 판매하고 있다. 판매량이 줄어드니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아 협력사에서 부품을 구매하는 비용이 커지는 악순환도 있다. 대동 관계자는 "콤바인은 개발해도 손해"라면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동마저 개발을 포기하면 콤바인 시장은 일본 시장에 완전히 잠식되게 된다.
어기구 의원은 "일본산 농기계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산 농기계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농기계 산업은 식량안보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전략산업인 만큼 국산 농기계 개발 지원 강화 등을 통한 농기계 산업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아내 불륜 현장 잡고도 사진만 찍고 돌아간 남편…"자식 위해서" - 머니투데이
- 여고생 입에 양말 물리고 성폭행…SNS 생중계 한 10대들 - 머니투데이
- 이형택 딸 "父, 동생과 차별…부자 되면 돈 갚고 연 끊을 것" - 머니투데이
- 10년 전 10만원 냈으니 지금은 20만원…'축의금 시가' 논란 - 머니투데이
- 서정희 "32년간 故서세원에 일상 보고…늦으면 호통 날라왔다" - 머니투데이
- 정준하 "하루 2000만, 월 4억 벌어"…식당 대박에도 못 웃은 이유 - 머니투데이
- 박나래, 기안84와 썸 인정…"깊은 사이였다니" 이시언도 '깜짝'
- "시세차익 25억"…최민환, 슈돌 나온 강남집 38억에 팔았다 - 머니투데이
- "수능 시계 잃어버려" 당황한 수험생에 '표창 시계' 풀어준 경찰 '감동' - 머니투데이
- '아이 셋·아빠 셋' 고딩엄마…이혼+동거소식에 큰아들 "미쳤나 싶었다"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