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외는 즉시 현금화하는데…대학들 기부받은 40억 코인 사실상 ‘나몰라라’ [대학가 기부코인 유령화 논란]

2023. 10.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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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지갑 보관도, 매매도 불분명한 韓대학 관리 실태
해외 대학선 “코인 변동성 커 즉시 현금화”…리스크관리
“지갑 없다” 주장하던 학교…기부자에게 몰래 보관 요청
[게티이미지뱅크·각 대학 자료]

[헤럴드경제=유혜림·박지영·박혜원 기자] 2년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영대학원(MBA) 와튼스쿨은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500만달러어치 비트코인을 받자마자 현금화했다. 전날 비트코인이 30% 폭락한 상황인데도 일단 팔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피어테크로부터 비트코인을 기부받은 당일, 모금회 직원은 기부자를 만나 입금 과정을 참관해 클릭하는 순간까지 지켜봤다. 지갑에 코인이 들어온 순간, 1초라도 빨리 바로 현금화하기 위해서다.

왜 국내외 재단들은 가상자산을 기부받을 경우 시차를 두지 않고 곧장 매도했을까. 지나치게 시세차익을 남겨 공공성을 훼손해선 안 되며 재단 기금관리에 미치는 변동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해 국내 유명 대학들은 코인 기부금을 받으면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위메이드는 학교당 10억원 상당의 자체 발행 코인인 위믹스를 국내 주요 대학에 기부했고, 동시에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아울러 대학들은 기부받은 코인을 1년간 매도하지 않도록 협약했는데, 1년이 지난 이후에도 별다른 현금화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런 사이 위믹스는 주요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됐고, 시세도 크게 떨어지면서 제 때 현금화하지 않은 코인이 얼마나 변동성에 취약할 수 있는지 여실히 체감해야 했다. 예정됐던 기부 사업 역시 대폭 축소되는 위기에 놓였다. 일각에서는 기부 코인을 내부 방침 없이 안일하게 관리하면서 사실상 방치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7만여개 위믹스, 당시 시세보다 70% ↓=17일 헤럴드경제 취재 결과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민정 의원실·정무위원회 소속 김한규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기부협약서 등 자료에 따르면, 대학가 4곳(서울대·고려대·서강대·동서대)은 지난해 위메이드로부터 가상자산 위믹스를 학교당 17만~18만개(당시 10억원 상당)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학교가 기부받은 위믹스를 ‘콜드월렛(cold wallet·온라인에 연결되지 않은 오프라인 가상자산지갑)’ 형태로 보관 중이다. 기부 협약식 사진에서도 까만 외관에 마치 MP3 플레이어 생김새와도 똑 닮은 지갑이 대학 총장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각 대학은 기부 소식을 적극 홍보하고 기부자 판단 아래 자유롭게 홍보할 수 있다’는 협약도 맺었다.

국내 대학 첫 코인 기부 사례인 위믹스의 협약서의 주요 내용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기부 협약 체결 직전일 위믹스 종가 시세 기준으로 우리 돈 약 10억원 상당의 코인 개수가 정해지고, 1년 동안 보호예수(록업)를 설정해 올해부터 현금화(지급 청구권 행사)할 수 있었다. 3년 내 최대 3번까지 매도를 행사할 수 있다. 단, 이 기간 현금화하지 않으면 기부 코인은 자동 소멸된다.

김한규 의원은 “기업이 대학에 기부하는 것은 장려할 일이지만, 1년간 매도 금지 조항 같이 가상자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이라고 우려했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도 “서울대를 포함한 사립대까지 교육기관 특성상 어떻게든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할텐데 그나마 변동성이 적은 비트코인도 아닌 코인을 보호예수 기간 1년이나 걸어준 데 동의한 게 의문”이라며 사전 논의가 충분치 않았을 것으로 봤다.

▶“첫 단추부터 허술” 지적도=코인 기부는 심사 때부터 수많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 어떤 기준 이상의 코인을 받아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 기부를 받는 방식에서부터 현금화 시점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기부 코인이 상장 폐지되거나 시세가 급락하면 예정됐던 사업 역시 대폭 축소될 수 있어서다. 또 위믹스 사례처럼 보유예수가 걸릴 경우 지갑을 보관하는 관리 문제도 필수적이다. 이는 국내외 기관들이 내부 운용 매뉴얼을 만들어가면서 코인 기부금을 관리하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 대학가의 코인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사전 심사부터 허술했다. 통상 일정 수준 이상의 기부금이 들어올 때 사전 심의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사전에 법률 검토를 받거나 운용 규칙을 마련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10억원 상당’의 큰 규모이며 변동성이 큰 자산인데도 대학들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취재가 들어가자 서울대는 기부 협약을 마치고 약 1년이 지난 뒤에서야 지난 8월 법률 검토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는 국내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암묵적으로 법인 명의 계정 개설을 거부해 거래조차 어렵다는 현실을 뒤늦게 파악했으며 지갑 개설을 미루는 중이다. 직접 매도가 어려워지자 서울대는 수탁수수료를 주고 제3업체로 우회해 현금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갑 어딨더라”…부실한 관리 곳곳에서=코인 기부금의 보관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일부 대학은 사실과 달리 지갑을 개설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심지어 ‘지갑은 없고 매도청구권만 있다’고 줄곧 부인하던 한 대학은 올 추석 연휴 직전 위메이드에 지갑을 대신 보관해줄 것을 요청하고 이관한 사실이 헤럴드경제 취재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인사이동 때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혼란도 빚어졌다. 취재기간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코인 기부금 존재 자체를 파악해야 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코인 도난·유용·분실 우려도 제기된다. 대부분 기부금 등 발전기금을 담당하는 부서에 관련 업무를 맡았으나 기부금을 사용할 대학원에서 운영·관리한 곳도 포착됐다.

한 대학 관계자는 “기부를 진짜 받기로 한 게 아니라 굉장히 러프한 내용의 협약 내용”이라며 “(우리) 학교와 코인 기부를 엮는 상황이 어색하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한 코인시장 관계자는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학들이 기부금을 받으면서 위믹스는 가상화폐라는 지위와 위상을 올리는 데에도 도움됐을 것”이라며 “10억원이나 되는 코인을 단순 협약이라고 가볍게 여길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관리 실태에서 ‘적당한 시기’에 매도라는 논리는 힘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현시점 평가금액, 현금화 진행 경과’ 등을 묻는 국회 조사에서도 어느 한 곳도 답변하지 못했다. 실제 올 들어 1월부터 9월 고려대에서 서울대까지 차례로 보호예수(록업)기간이 끝났는데도 이 기간 시세를 모니터링하거나 현금화 계획을 세운 대학가는 여전히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1월 기부 협약 당시 5000원 안팎을 오갔던 위믹스 시세는 현재 1300원대로 내려오면서 70% 넘게 쪼그라든 상태다. 서울대는 지갑조차 개설하지 않아 위믹스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더라도 현금화할 수 없는 상태다.

블록체인 기부문화를 분석하는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연구원은 “코인은 현금과 달리 시세 변동, 환전, 수수료 문제 등이 많고 계좌나 지갑 개설에서부터 보관까지 사전 논의는 필수적”이라며 “허술한 관리는 모금단체의 이미지에도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부자와 합의가 중요한데 기부할 코인의 종류, 예상금액 차액에 대한 처리, 기부금 처리 기준 시점 등 사전 조율이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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