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박인숙 前의원 "의료 사법리스크 등 해소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

한기호 2023. 10. 1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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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의대 정원 1000명 이상 확대 추진'에 "필수·지방의료 붕괴 근본대책없이 밑빠진 독에 비싼 생수 쏟는 격"
교육인프라 협의 전무, 의사 양산과 의료질 저하, 건보재정 파탄 등 우려…의무·권리 괴리 해소없는 정부 "군림" 비판
소아청소년과 의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인숙 울산의대 명예교수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결사반대한다"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소아청소년과 의사 출신이자 과거 유승민계로 분류됐던 박인숙 전 의원(울산의대 명예교수)은 17일 고위당정협의회(지난 15일)를 전후로 나온 '의대 정원 1000명 이상 확대'에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사의 한사람으로서 이 정책을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내년 3월 진행되는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박인숙 전 의원은 이날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필수의료붕괴, 지방의료붕괴에 대한 근본대책은 빠진 채 의대 정원만 파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비싼 생수 쏟아 붓는 격이다. 많은 양의 물을 빠르게 부면 물이 잠시 차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비싼 생수만 낭비하여 먹을 물도 없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건 당장은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겠지만 중 장기 국가발전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독이다. 심지어 단기적으로 보아도 좋을 게 전혀 없다"며 "필수의료붕괴, 지방의료붕괴, 의사들의 사법 리스크로 인한 의료현장 이탈 등 여러 이유들 때문에 지금 당장 국민이 겪는 고통 해소에 전혀 도움되지 못한다"고 했다.

특히 미래에 의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정부 측 입장에 "가장 흔히 인용하는 통계수치가 '인구 대비 의사 수'로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평균보다 낮다고 들지만 의료제도·의료비·의료수준·국민성·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와의 1개 단순 통계숫자 비교는 '사과와 오렌지 맛 비교'와 마찬가지로 오류가 많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실제 우리나라보다 인구 대비 의사 수가 훨씬 더 많은 나라들에서 우리보다 의료수준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국민 1인당 진료건수는 연 17.2 건으로 OECD 평균 6.8회의 무려 2배 반이나 높다. '24시간 이내에 의사 진료가 가능한 비율'이 99.2% 란 통계도 있다"고 조명했다. 세계 1등의 국민의료 접근성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는 "의료의 질 또한 매우 높아서 남녀모두에서 평균수명 1등, 평균수명 증가 속도도 세계 1등이고 각종 국제 조사기관에서 발표하는 질병치료성적도 매우 우수하다"며 "우리나라 의사 수 증가 속도는 OECD국가 중 가장 빠르다. '국토면적 당 의사 수'는 OECD 3위다. 의사 수 대비 인구비율(인구수를 의사수로 나눔)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매년 출생아가 4%씩 감소하는 극심한 저출산 시대에 의사수는 해마다 3058명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 수치를 보면 2000년에 (의사 1인당 국민) 636명, 2010년 462명, 2020년 368명, 2025년 341명,2030년 294명, 2035년 268 명으로 예측된다"고 짚었다. 2025년부터 의대 정원 연 4000명을 적용하면 200명을 밑돌 것이라고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의사 수 증가는 수요 증가로 이어져 국민 의료비 부담은 폭증할 것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지탱하는 국민의 보험금 부담도 폭증할 것이다.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미래 세대에게 의료비 폭탄을 떠 안기는 꼴"이라고 밝혔다. 또 간호사 부족이 3만명으로 배증된 간호대 정원과 무관하다며 '의대 증원 낙수효과'는 허구라고 짚었다.

그는 "처우개선·임금인상·근무환경개선 같은 근본 해결책 없이 간호대 입학정원만 늘린 게 얼마나 잘못된 정책인가"라며 "정부는 똑같이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제껏 본 적 없던 파격수준 의대정원 확대로 인해 대학 캠퍼스는 (의대를 가고자) 자퇴생과 휴학생으로 텅 빌 것이고 재수생 비율도 처음 50%를 넘길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벌써 이번 발표 만으로도 사교육 시장이 술렁이고 있고 앞으로 이런 혼란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회사원, 공무원, 취업준비생들도 의대 입시 준비로 방향을 바꿀 것이고 이미 빈사 상태의 이공계는 완전히 초토화될 것이다. '의대 방지법'을 발의하는 국회의원도 나올 것이다. '고시 낭인' 대신 '의대 낭인'이 폭증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의원은 "또 다른 문제점은 이들에 대한 교육이다. 하루에 3000개 만들던 붕어빵 제조업자는 정부가 요청하면 하루에 4000개도 거뜬히 생산할 수 있으나 의사 양성은 붕어빵 만들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학부부터) 최소 10년 이상의 교육, 수련기간이 필요한데 많은 의사 교육자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교육자들과 한마디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이런 명령을 내리려 한다. 부실의학교육은 부실의사를 양산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며 "많아지는 의사들이 비필수·비급여 경쟁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는 불 보듯 뻔하다", "(건보 재정악화로) 국민은 월급의 10% 이상을 건보료로 지불해야 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또 "보건복지부 장관이 매 5년 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세우게 하는 보건의료기본법이 2010년 12월 만들어진 뒤 이런 발표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복지부 직무유기다. 기본계획 수립 없이 의대 정원 1000명 증원만 밀어 부치려 하고 있다"면서 "이런 결정이 정치적 배경 때문이라면 결과에 대한 책임도 질 각오를 가지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현 정부가 그리도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의료 공급자인 의사들에게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부가 당연지정제와 요양급여란 강력한 통제 수단으로 의사 위에 군림하며 '의무'만 강조하는 반면 의료 수요자인 국민은 저수가 혜택 뿐 아니라 의사와 병·의원 선택에 있어서 '무제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실태를 지적했다.

박 전 의원은 이같은 의무·권리 간 괴리를 해소하라며 윤 대통령의 취임 무렵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이다"란 발언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제라도 필수의료 붕괴대책, 지방의료 붕괴대책, 그리고 의료행위에 대한 사법리스크 경감조치 마련에 집중하라"고 호소했다.

그는 "(연) 4000명이란 경악할 숫자의 의대정원 급증없이 이러한 조치 만으로도 의료대란을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의료정책의 근간에 해당하는 의사 수를 전문가인 의료계와 상의하고,서로 합의할 수 있는, 과학과 진실에 기초한 방안을 도출해 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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