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에 '하마스 비판'부터 묻는 언론, 왜 문제인가

김예리 기자 2023. 10. 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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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스라엘 보도하는 서구 주류 언론에 비판 고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상자 동등하게 보도하지 않아"
"점령 상황, 갈등 원인 다루면 '반유대주의'로 몰려"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공격과 이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류 언론이 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세계 기자들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서구 언론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보도가 최소한의 저널리즘 윤리가 작동하지 않는 '성역'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알 자지라와 인터셉트, 데모크라시나우 등 중동에 기반을 둔 언론사와 독립언론들은 최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언론 보도를 비평하는 콘텐츠를 다수 내보냈다. 중동 전문 기자들과 학자들은 이들 방송에 출연해 서구 언론이 뉴스룸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이 겪는 피해와 점령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한 결과 사태 해결이 멀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알자지라 기자와 캐나다 공영방송 CBC 기자이자 언론학자, 영국 노바라미디어 기자, 팔레스타인인 정치분석가가 출연한 알자지라 유튜브 채널 갈무리.

현지 취재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서구 언론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피해 현장을 보도하는 데 소극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스라엘 정부와 하마스 공격을 받은 민간인 피해자와 유족 목소리를 적극 전달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발언은 그에 대한 반론으로만 전달한다는 것이다.

특히 영미 언론이 팔레스타인인을 인터뷰하는 경우 꼭 하는 질문이 있다. '하마스를 비판하느냐'는 것이다. 제러미 스캐힐 국제분쟁 기자는 인터셉트 팟캐스트에서 “최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BBC나 다른 주요 언론사와 인터뷰하는 방송을 수없이 봤는데, 주로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우리는 모든 전기와 물을 끊고 그곳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인터뷰 직후나 직전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스캐힐 기자는 이어 “(주요 언론은) 자기 삶의 경험을 말하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하마스에 대한 도덕적 비난, 정치 논평을 강요하는 병이 있다”며 “만약 거기에 일관성이 있었다면, 즉 이스라엘 인터뷰이들에게도 이스라엘 정부가 저지르는 끔찍한 전쟁 범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을 물었다면 나는 반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영국 타임지 1면 보도.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에 살해당한 아기들의 절단된 시체 사진을 제시했다고 밝히는 제목 아래 이스라엘 공습으로 부상 당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사진을 보도했다.

알 자지라의 선임 정치 분석가 마르완 비샤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폭격을 당하고 있을 때는 팔레스타인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다”며 “지난 일요일 미국의 한 토크쇼가 마침내 팔레스타인 사람을 한 명 출연시킨 것을 봤는데 물론 '하마스를 비난하느냐'고 첫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비샤라 분석가는 “흥미로운 건, 언론과 학계에서 국제관계를 다뤄온 사람으로서 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알제리, 미국, 베트남 등 어느 주민에게 다가가 '비난하느냐'고 묻는 기자를 본 적 없다. 심지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 기자가 탈레반과 시아파 암살단을 비난하느냐고 묻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는 항상 뭔가가 완전히 뒤집힌다”며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정부의 큰 줄기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최근 캐나다 공영방송 CBC는 캐나다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시위를 가리켜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지지하는 시위'로 규정해 SNS에서 논란이 됐다. CBC 앵커는 해당 보도에서 “시위자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하마스의 공격에 환호했다”고 주장한 뒤 캐나다 외무장관에게 시위 참가자들을 테러리즘 혐의로 처벌해야 할지 물었다.

영국 스카이뉴스에선 앵커가 지난 13일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를 생중계 인터뷰하던 중 '가자지구를 봉쇄해 전기를 끊으면 그곳 병원의 환자들과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베네트 전 총리가 “내게 정말로(seriously)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해 얘기할 거냐”고 소리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영국 스카이뉴스의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 인터뷰 보도화면 갈무리

“당연한 저널리즘 기준, 이스라엘 보도에선 예외”…피해자는 시청자

기자들은 현지 민간인 사상자 현황을 실시간 중계하면서도 갈등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 점을 문제 핵심으로 꼽았다.

분쟁을 두 국가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관행이 그 일례다. 중동지역 언론인 출신인 정치분석가 오마르 바다르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언론은 마치 양편이 어딘가에서 서로 국경을 넘어 싸우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이 사는 곳 위에 들어서서 살며 불법 군사 점령과 봉쇄, 공격을 가하고 있는데, 이 맥락을 벗어나면 이 사안은 그냥 사람들이 땅을 놓고 싸우는 일처럼 보인다”며 “그런데 (이런 사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영국의 진보언론 노바라 미디어의 애쉬 사카르 기자는 최근 언론 전반이 보도했던 '하마스 아기 참수' 주장을 가리켜 “1면은 고사하고 보도가 나가려면 2개의 취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고, 통신사 보도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어째선지 이스라엘에 관련해선 이것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같은 보도 피해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 그리고 독자들이다. 이집트인으로 CBC 기자였던 파신스 마타르 캐나다 웨스턴대 미디어학 교수는 “많은 기자들이 이런 질문을 받았을 거라 확신한다.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며 “어떻게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나. 특히 서구 미디어가 맥락을 제공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인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매일의 전쟁을 보도하지 않으면서 시청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라고 했다.

애쉬 사카르 기자는 “영국에선 이스라엘과 관련한 보도를 정정하려는 어떤 시도도, 팔레스타인인을 인격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관점으로 갈등을 이해하려는 어떤 시도도 반유대주의라고 여긴다”며 “가장 큰 피해자는 기자들이 아니다. 질이 낮고 믿을 수 없는 정보를 제공받는 독자들이고, 이스라엘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라고 했다.

비샤라 분석가는 서구 언론이 이같은 보도를 반복해온 결과 점점 고립되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 서구 미디어 의제는 현장 기자가 아닌 뉴스룸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서구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점점 더 많은 서방 미디어가 위선과 이중잣대로 인해 세계적으로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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