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처리는 ‘고구마’, 신상털이는 ‘사이다’?…인터넷 사적제재에 엇갈리는 반응
유튜브 통해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하기도
전문가 “사적제재가 오히려 법치 붕괴 가속화”
“가해자 인권 치중한 사법제도 탓” 의견도
지난 15일 유튜브와 각종 소셜미디어(SNS),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한 개의 영상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속버스 좌석에 탄 여성이 뒷자리에 사람이 있음에도 등받이를 끝까지 내린 바람에 주변 승객들,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내용이었다. 뒷자리 승객이 불편해 하니 등받이를 올려달라는 버스 기사 요청에 여성은 “이만큼 숙이라고 (의자를) 만든 건데 뭐가 문제냐”라고 답했다. 주변 승객들이 “여기가 침대냐”라며 꾸짖자 여성은 “너나 잘해”라며 반말로 성을 냈다.
영상이 인터넷 전역에 퍼지면서 누리꾼들은 여성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런 가운데 다소 결이 다른 반응도 있었다. “법으로 처벌이 안 되면 네티즌이 처벌해야 한다” “쟤 신상 좀 털어줘라”라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신상털이’라 불리는 사적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적제재가 필요하다는 댓글은 수백개에 달하는 추천을 받아 댓글창 상위에 올라가 있었다.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신상털이가 활발하다. 공적인 사법 절차는 처벌 확정까지 시간이 걸려 답답한 반면, 신상털이와 같은 사적제재는 효과가 빠르고 확실하다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적제재에 실질적인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해당 교사들을 괴롭혀 온 것으로 지목된 가해자들 신상이 SNS를 통해 공개됐다. 지난달 5일 대전 관평초에 재직했던 교사에게 몇 년간 악성민원을 넣은 가해 학부모들이 신상털이를 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가해 학부모들 이름과 얼굴은 물론 이들이 운영하는 김밥집, 미용실까지 공개되자 시민들은 직접 이곳을 방문해 쓰레기를 버리거나 포스트잇에 욕설을 써 붙였다. 결국 김밥집과 미용실 모두 폐업했다.
지난 2021년에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초에서 근무했던 교사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이들이 학부모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가해 학부모 중 한 명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해당 학부모가 농협 직원이라는 게 확인되자 농협 측에 민원이 빗발쳤다. 결국 이 학부모는 농협에서 해직 처리됐다.
신상털이와 같은 사적제재에 대한 대중적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앞서 한 유튜버가 지난 6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신상에 이어 8월에는 ‘강남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 신상을 공개한 영상에는 “국가도 못하는 일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댓글이 몇 만개씩 달려있다.
문제는 이러한 신상털이가 실제 범죄 예방 효과를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김대근 연구위원은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로 수많은 신상털이 건이 있었지만, 사적제재가 유사 범죄 예방 효과를 발휘한다는 연구는 현재까지 없다”며 “범죄자가 신상 공개를 두려워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는 논리부터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연구위원은 “사적제재가 ‘정의’의 탈을 뒤집어쓰고 반복된다면 공권력이 더더욱 힘을 잃을 텐데 이는 오히려 범죄자들이 원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공권력의 빈틈을 개인이 메우려는 행태가 결과적으로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범죄자들을 더욱 활개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 사적제재에 열광하는 원인을 잘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반 국민들은 가해자가 될 확률보다 피해자가 될 확률이 월등히 높은데도 국내 사법제도는 가해자 인권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게 사실”이라며 “이러한 상황에 국민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나온 게 사적제재이기 때문에 신상털이 행위가 응원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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