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로 달려간 윤 대통령의 ‘배신자 콤플렉스’ [아침햇발]

이재성 2023. 10. 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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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3일 목포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성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을 특별사면했을 때, 그가 서울 강서구청장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되리라 장담했다. 유일한 단서는 윤 대통령의 ‘배신자 콤플렉스’였다.

기수 파괴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임명됐고, 청와대를 직접 겨냥한 수사를 대놓고 하는데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끝까지 두둔해줬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자의식이 윤 대통령 영혼의 심연에 깔려 있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몸담았던 전 정권과 싸우는 비슷한 처지의 김태우에게 동지적 유대감을 느꼈고, 그가 구청장으로 복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법원 유죄 판결문을 받아든 지 석달도 안 된 사람을 무리하게 사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극우 행보도 배신자 콤플렉스로 설명된다. 배신자가 아님을 납득시키려면 나라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해야 하고,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통해 실적을 내야 한다. 선거운동 과정만이 아니라 집권 1년6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전 정부 탓을 하고, 거의 모든 걸 거꾸로 돌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책은 큰 차이가 없다. 한-미 동맹과 자유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안보 및 경제관도 별로 다르지 않다. 더구나 검찰개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값 안정과 소득주도성장, 북-미 협상을 통한 종전선언 체결 등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일련의 개혁이 반발에 직면하거나 수포로 돌아가자,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사실상 개혁을 포기한 상태였다. 두 당의 차이를 굳이 꼽으라면, 검찰을 사병처럼 쓸 수 있는 권력의 유무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해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단 두개 있을 때, 두 가게는 손님을 더 끌기 위해 필연적으로 가운데로 모이게 된다는 ‘민주주의 경제 이론’(미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가 1957년 주장한 합리적 선택 이론)의 정합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가운데로 수렴하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가 절실했던 윤 대통령은 오른쪽 끝으로 달아나는 길을 택했다. (앤서니 다운스의 아이스크림 가게 이론에 따르면, 이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사회는 물론이고,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라는 비상사태를 맞아 불가피하게 (다른 나라에 비하면 훨씬 적게) 늘어났던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부풀렸고, 기후변화 시대의 세계적 추세인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악마화했다. 과도한 감세를 감행했으며, 역대급으로 세수가 펑크 나자 연구개발(R&D)을 비롯한 미래 투자부터 줄였다. 인구 감소의 쓰나미가 경제 축소로 이어지기도 전에, 정부가 먼저 재정을 줄여 축소 경제를 앞당기고 있다. 집권의 정당성을 위해 택했던 차별화 정책이 나라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념을 앞세우면 실용은 멀어진다.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경제는 좋았던’ 전두환 시대를 언급하며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길 생각이라고 했고, 경제관료를 대거 등용했다. 전두환 정권이 ‘군인+경제관료’ 정권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검찰+경제관료’ 정부다. 경제 전문가가 경제관료밖에 없다는 인식은 윤 대통령의 낙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다. 윤 대통령의 엘리트주의는 개발독재 시대의 ‘고시 패스’ 인재 수준에 정체돼 있다.

게다가 윤석열은 전두환이 아니다. 무지 앞에 겸손했던 전두환과 달리 하나를 알면 열을 안다고 생각하는 윤 대통령은 경제 정책의 가이드라인도 본인이 제시한다. 참모들은 ‘바이든-날리면’처럼 대통령 말을 주워담기 바쁘다. 독재자에게도 직언할 수 있었던 강직한 관료는 이제 없다. 학창 시절 아무리 공부를 잘했어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경제는 복잡해졌고, 발전하는 기술을 뒤늦게 이해하기도 벅차다. 한때 마법의 꾀주머니였던 관료들의 캐비닛은 유통기한이 지난 서류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이명박의 자원외교, 박근혜의 창조경제 같은 의제도 윤석열 정부에는 없다.

윤 대통령의 무능은 본인이 유능하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거친 성정과 권위주의는 이견의 존재를 원천 봉쇄했고, 검찰에서 터득한 무오류주의는 자정 기능마저 거세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대통령과 여당의 익숙한 대응이 모든 걸 말해준다.

사법의 과잉과 정치의 결핍이 낳은 후진국형 ‘관료연합정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경제마저 정권과 함께 쓸려 내려갈까 그것이 걱정될 뿐이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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