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료, 한국 무료? 위험지역 대피 항공기 매번 공짜는 아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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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지 7일 만인 지난 13일 한국 정부는 공군 수송기인 시그너스(KC-330)를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으로 급파했다. 이 수송기를 타고 이스라엘에 체류하던 한국인 163명과 일본인 51명, 싱가포르 국민 6명 등 총 220명이 이스라엘을 빠져나와 무사히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14일 도착했다. 이들에게 한국 정부가 청구한 비용은 0원이다.
그런데 14일, 뒤늦게 이스라엘로 전세기를 띄운 일본 정부는 자국 교민 8명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공항까지 태워 나른 대가로 1인당 3만엔(27만원)을 청구했다. 논란이 일자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비용 청구가 “적절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 달리 교민뿐 아니라 해외 국민을 비용 청구 없이 수송한 것은 왜일까.
정부 이동수단 투입 시 원칙은 자비 부담
통상적으로 정부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해외 체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현지에 이동수단을 투입하는 경우 비용의 일부를 자비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재외국민보호를위한 영사조력법’ 19조 1항은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이동 수단 이용 비용을 개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경비 부담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경제적으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무자력자이거나 안전 지역으로 대피할 다른 수단이 없어 국가가 이동수단 투입을 결정한 경우라면 개인 부담이 면제된다. 외교부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올해 2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뒀다.
이번에 귀국한 교민의 경우 민간 항공을 통해 이스라엘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어 정부가 군 수송기를 파견한 경우에 해당해 개인에게 비용 청구를 하지 않았다는 게 외교부 설명이다. 앞서 지난 11일 먼저 귀국한 교민 192명은 대한항공 항공편을 통해 귀국했지만, 대한항공이 이후 안전을 이유로 이스라엘행 운항을 중단하며 남은 교민들은 민간 항공편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강 외교부 영사안전국장은 “민간 항공사가 안전 문제로 못 들어가는 상황이어서 군 수송기를 투입하게 됐다”며 “국방부에 협조를 요청해 시그너스를 투입했고, 관련 비용은 외교부 예산에서 부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싱가포르 국민을 태운 것은 별도 비용이 추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시그너스 파견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밝히기 어렵지만 민간 항공 전세기를 띄우는 것보다는 비용이 적게 드는 건 사실”이라며 “수송기 내 자리가 남는 상황에서 비용이 추가되는 것도 아니라 인도적 차원에서 해외 국민들도 이송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어떻게…비용 청구하기도
과거에도 정부는 해외에서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재외 국민 보호를 위해 민간 항공사 전세기나 군 수송기인 시그너스를 투입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엔 내전이 벌어진 수단에 시그너스를 파견해 현지 교민 28명을 구조했다. 지난 2020년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했을 때도 전세기를 띄워 교민 700여명을 국내로 이송했고, 2017년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아궁 화산이 폭발해 국제공항이 폐쇄됐을 때도 전세기로 273명을 귀국시켰다.
다만 2021년 1월 영사조력법 시행 이전에는 경비 부담과 관련한 규정이 산재해 있고 모호해 상황에 따라 경비 책정 등의 판단이 이뤄지곤 했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에는 귀국 전세기 비용을 개인에게 청구했고, 2015년 네팔 지진 때는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 귀국 전세기 비용을 정부가 부담했다고 한다. 2017년 발리섬 전세기 비용도 개인에게 청구했다.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를 타고 탈출한 교민은 성인 1명당 30만원을, 발리에서 전세기를 타고 나온 이들은 1인당 42만원을 부담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영사조력법이 제정되면서 관련 규정이나 기준이 좀 더 명확해졌고, 이제부터 관련 사례를 쌓아나가는 것이라 보면 된다”고 했다.
일본 내 반발 여론 왜
한국 수송기에 일본인이 탑승한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인들은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에 감사를 표하며 기시다 후미오 내각에 ‘대응이 늦다’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자국 교민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것에도 부정적 여론이 있다. 16일 마이니치신문은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켄타 대표는 일본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글을 엑스에 올렸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가 비용을 청구한 것은 텔아비브 국제공항이 여전히 항공편이 유지되는 가운데, 일반 항공기를 이용해 이스라엘을 떠난 일본인들이 있어 형평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외무성의 설명을 전했다. 일본 정부의 전세기에 8명만 탑승한 이유는 목적지가 일본이 아니라 두바이였고, 부담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게 마이니치신문의 분석이다. 일본도 과거에 다른 이동 수단이 없을 경우 무료로 자국민에게 전세기를 제공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에도 일본 내에서 비판 여론이 있는 것은 최근 경제 문제 등으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 등 현지 언론은 14∼15일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29%를 기록하며 전달(37%) 대비 큰 폭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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