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인지 답하라” 눈부신 게임산업 뒤 사이버불링·성차별

박지영 2023. 10. 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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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내 여성혐오·성차별이 여전히 만연하지만, 게임회사는 피해 노동자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불이익까지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 게임회사는 사이버불링이 발생해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거나(50%·23건), 오히려 피해 노동자의 개인 에스엔에스(SNS)를 통제하고 경위서 작성, 자발적 퇴사를 빙자한 사실상의 해고 등 불이익 조치(41.3%·19건)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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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니언 등 게임업계 근로감독 청원
게티이미지뱅크.

“아이 낳고 첫 면접에서 ‘둘째 계획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뽑히고 나서는) ‘원래는 남자만 뽑으려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30대 여성 게임 기획자 ㄱ씨)

“(상사로부터) ‘유부녀를 채용하면 금방 애 가져서 휴가 내는 것 아니야?’, ‘여성들은 보통 멘탈이 약한데 ㄴ씨는 안 그래서 좋아요’ 같은 말들을 직접 듣거나 전해들었어요.” (20대 여성 게임 디자이너 ㄴ씨)

“회사 남자 직원이 육아 휴직을 냈다가 거절당하고 결국 퇴사했어요. (이전) 한 임원은 ‘바쁜데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며 사무실에서 크게 화를 냈어요.” (40대 여성 게임 기획자 ㄷ씨)

게임업계 내 여성혐오·성차별이 여전히 만연하지만, 게임회사는 피해 노동자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불이익까지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 또한 근로감독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등 게임회사들의 위법 행위를 사실상 손 놓고 있어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유니온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게임업계의 사이버불링, 직장 내 성희롱 및 성차별 실태와 시민 1만2745명이 제출한 게임업계 근로감독 청원’을 발표했다. 사이버불링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욕설, 험담 따위로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청년유니온이 9월8일부터 지난 3일까지 게임업계 노동자 62명을 대상으로 모두 67건의 제보 내용을 분석한 결과, 사이버불링·성희롱·성차별 등 노동권 침해 피해의 88.7%가 여성 노동자이며, 20∼30대 청년세대가 9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게임업계 노동자들은 사이버불링의 피해를 ‘매우 심각’(4.35점·5점 기준)한 수준으로 느끼고 있었다. 악성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회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페미인지 답하라”며 칼로 난자당한 여성의 사진을 지속해서 보내거나, 특정 직원의 해고를 요구하며 회사까지 찾아간 경우도 있었다. 실제 지난 7월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개발사 ‘프로젝트 문’의 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페미 사상검증을 당한 끝에 ‘계약 종료’ 통보를 받은 일이 벌어졌다. 일부 게임 이용자들이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과거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본사를 찾아가고, 게임에 ‘별점 테러’를 하자, 프로젝트 문이 결국 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해고 통보를 한 것이다.

게임업계의 성평등 수준도 1.94점(5점 기준)으로 매우 심각했다. “여자인 점 연봉에 반영된다”, “너는 여자애니까 올해 승진은 어렵다” 등의 성차별 발언과 게임회사 면접 과정에서의 ‘페미니즘 사상검증’, 임신·출산 계획에 관한 질문, 육아휴직 등에 대한 불이익 등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사례도 다수 접수됐다.

하지만 대다수 게임회사는 사이버불링이 발생해도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거나(50%·23건), 오히려 피해 노동자의 개인 에스엔에스(SNS)를 통제하고 경위서 작성, 자발적 퇴사를 빙자한 사실상의 해고 등 불이익 조치(41.3%·19건)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최근 2년여 동안 고용노동부의 게임업계 근로감독은 단 1건밖에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정부도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노동권 침해를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게임산업은 대한민국의 핵심적인 성장산업이며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이면에 이리도 후진적인 관행과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는 무책임함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며 “게임업계에 대한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1만2745명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며, 또한 이러한 안전망에서 조차 배제되어 있는 프리랜서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 범위를 확대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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