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아편중독 치료에 쓰인 홍삼, 마약 금단증상 개선 효과 진짜 있었다
홍삼은 19세기 청나라에서 아편 중독자가 늘어났을 때 아편 중독 치료제로 사용됐다. 당시 청나라가 조선의 홍삼을 많이 수입한 것도 홍삼이 아편 해독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홍삼 섭취 후 마약 중독으로 생긴 금단 증상과 의존성이 실제로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처음 발표됐다. 홍삼의 마약 중독 개선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17일 서울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 삼성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고려인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이화여대 의대 분자의과학 오세관 교수팀은 "홍삼을 섭취하면 약물중독으로 유발된 신체적·정신적 의존성을 크게 줄이고 금단증후군을 개선했다는 점을 규명했다"고 발표했다.
약물 남용이란 아편·양귀비·코카인·헤로인·모르핀·펜타닐 등 향정신성 약물을 비의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약물을 남용하면 뇌 기능에서 생화학적·기능성 장애가 생기고, 사고, 감정 조절, 기억력, 수면, 스트레스 대처, 정신운동 협응에 장애를 보인다. 이런 부작용은 10년 이상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약물 중독 환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약물 남용은 가벼운 동기에서 시작해도 복용 후 도취감을 느끼면 이후 반복적으로 약물에 몰두하기 쉽다. 스스로는 탈출하기 매우 어려워 폐인에 이를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7월 국내 마약류 사범 단속 건수는 총 1만1735 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8,568건으로 37%가 증가했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10대·20대의 마약 중독 치료자는 5년 동안 49%가 증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약물 중독으로부터의 완전하게 벗어나려면 약물의 완전 자제, 인격 및 생활패턴의 변화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약물 중독에 대한 뚜렷한 예방·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이 요구되지만 아직은 치료제가 없다.
오세관 교수팀은 약물중독의 신체적 의존성을 측정하기 위해 40마리의 마우스를 모르핀만 투여한 그룹(10㎎/㎏, 이하 대조군)과 홍삼 추출물((250㎎/㎏) 섭취 후 모르핀(10㎎/㎏) 투여군(이하 홍삼 섭취군)으로 나누고, 7일 동안 매일 같은 양을 투여했다. 7일째에 모르핀 금단증후군을 유발한 후 모르핀 신체적 의존성 형성 마커인 마우스 도약 행동(점프)을 30분 동안 관찰한 결과, 대조군은 도약 행동이 40회 관찰됐지만, 홍삼 섭취군은 도약 행동(점프 빈도) 횟수가 50%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또 약물(모르핀) 중독이 유발한 정신적 의존성 평가를 위해 '조건 장소 선호도 시험'(CPP, conditioned place preference paradigm, 실험군이 선호하는 장소에 머무르는 실험으로 약물에 중독되면 싫어하는 조건의 장소에서도 더 오래 머무르는 의존성을 나타냄)을 진행했다. 그랬더니 홍삼 섭취군의 CPP 점수는 대조군보다 3배가량 낮았다. 약물 중독으로 인한 심리적 의존성을 홍삼이 크게 낮춘 것이다.
그뿐 아니라 홍삼 섭취군에서는 모르핀 중독으로 인한 간 글루타치온 수치가 회복됐다. 간 글루타치온은 간 해독에 관여하는데, 홍삼 섭취군이 대조군보다 90% 정도 더 잘 회복했다.
오세관 교수는 "홍삼의 주성분인 진세노사이드 Rh2 성분이 모르핀 중독 마우스의 특이행동인 치아 떨림을 억제했으며, Rg3 성분이 그루밍, 몸 털기 등의 금단 증상을 크게 억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모르핀에 중독되면 대뇌피질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 스트레스가 많이 증가한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홍삼 섭취군이 이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홍삼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약물 중독의 금단증후군을 개선하고 의존성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는 부작용 없는 천연물 중독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달 18~20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되는 한국식품영양과학회 학술대회에서는 홍삼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 개선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한림대 생명과학과 김봉수 연구팀과 의대 석기태 교수팀 공동연구에선 환자 94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48명에게는 홍삼(2g/일)을, 나머지 46명에게는 위약을 한 달 동안 섭취하도록 한 후 간 기능 검사, 피로 점수 및 장내 미생물 분석 검사를 비교했다. 그 결과, 홍삼 섭취군에서 알라닌 아미노 전이효소(ALT)가 15%, 감마 글루타밀 전이효소(GGT)가 13% 각각 감소하고, 피로도는 21% 호전됐다. 알라닌 아미노 전이효소는 수치가 높을수록 간이 손상된 것을, 감마 글루타밀 전이효소는 수치가 높을수록 간세포와 간주변 담도가 손상된 것을 뜻한다. 위약 대조군에서는 통계학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홍삼 섭취 후 간 기능이 개선된 환자들은 위약군보다 알라닌 아미노 전이효소의 감소에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내 특정 미생물들의 변화가 유의하게 연관돼 있었다. 이는 홍삼 섭취를 통해 장내 미생물이 조절돼 아미노 전이효소 감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익균을 늘리고 유해균을 줄여 손상된 간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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