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감옥’ 탈출 유일 통로 라파 국경에 몰린 주민들…“문은 1초도 열리지 않았다”

최서은 기자 2023. 10. 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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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 통로 닫혀 구호품도 반입 불가능
식수난 심각 “50명이 0.5ℓ 생수 12병 나눠마셔”
쌍둥이 미숙아, 분유 타 먹을 물도 없어
“병원 연료 24시간 내 바닥, 식량도 4~5일분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6일(현지시간) 라파 국경 건널목에서 이집트로 건너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의 지상 작전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공습과 봉쇄로 벼랑 끝에 몰린 가자지구 주민들이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인 라파 국경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의 끈을 붙잡고 도착한 국경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만 있는 상황이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의 협상으로 이날 라파 국경을 일시적으로 개방해 이중국적자 등 일부 민간인들의 통행이 허용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현재까지 국경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가자지구 남부지역에서 이스라엘이 약 8시간 동안 임시 휴전을 하고 라파 국경 통로를 재개방하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도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가자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식을 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 역시 자국 시민들에게 국경 재개방을 준비하고 있는 라파로 향할 것을 권고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이날 오전 일찍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라파 국경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지나도 이들의 ‘생명줄’인 국경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은 대사관으로부터 이날 오전 9시에 국경이 개방될 것이라는 공지를 전달받고 즉각 달려왔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경 개방을 기다리던 다른 팔레스타인 여성도 “문은 단 1초도 열리지 않았다”며 “누구도 (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굳게 닫힌 국경의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문제는 라파 통로가 꿈쩍않고 닫힌 상황에서 민간인 탈출은커녕 인도주의적 구호품 반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현재 이집트 쪽 라파 검문소 앞에서는 석유와 음식, 구호 물자 등을 실은 트럭이 문이 열리는 즉시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위해 줄줄이 대기중이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가자지구에는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라며 전면 봉쇄를 시작한 지 8일째로 접어들면서 현재 가자지구에는 식수, 식량, 의약품, 전력 등 필수품이 모두 고갈된 상황이다. 17일 세계식량기구(WFP)와 유엔에 따르면, 상점의 식량은 4~5일분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가자지구 전역 병원의 연료 비축량이 24시간 이내 바닥날 것으로 보여 중환자와 신생아들에게 대참사가 일어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에 물 공급은 재개한다고 밝혔지만, 하마스 측은 여전히 물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 주민들은 우물을 파거나 오염된 수돗물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에 따라 남부 지역으로 피란을 떠나온 아부사다는 17일 월스트리트저널에 “현재 50여명의 가족 및 친구들과 0.5리터(ℓ)짜리 생수병 12개를 나눠 마시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어떡해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아부사다의 조카는 빵을 구하기 위해 오전 6시부터 가게로 갔지만 자신의 앞에 이미 수백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남부 칸유니스의 병원에서는 지난 14일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 자매가 물 부족으로 분유조차 타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쌍둥이 자매의 가족들은 분유 탈 물을 구하기 위해 도시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중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유엔은 가자지구의 물 부족 현상이 “생사의 문제가 됐다”며 “물은 이제 마지막 남은 생명줄”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물 부족 문제로 가자지구에 공중 보건 위기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지난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지금까지 최소 2778명이 사망하고, 1만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가자지구의 거리와 병원에는 생존자와 시신들이 뒤섞여 있으며, 시체들을 묻을 묘지조차 부족해 집단 매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엔 관계자는 가자지구 남부의 칸유니스와 라파 지역은 밀려드는 난민의 규모로 인해 “수백명이 화장실 한 칸을 공유하고 있을만큼 끔찍한 위생상태”라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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