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심기경호' 현대차, 뉴스타파 '위장집회' 보도 후 해고노동자와 합의

김지윤 2023. 10. 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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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이 본사 앞에 위장집회를 열어 다른 집회·시위를 방해한 이유 중 하나가 현대차 고위 임직원들의 ‘심기 경호’였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현대차의 ‘용역 업무 지침’을 통해서다. ‘용역 업무 지침’에는 현대차가 외부인의 집회·시위를 반드시 차단해야 하는 4곳이 표기돼 있는데, 이 중 한 곳(‘하나로’ 구역)에 대한 설명에 ‘VIP(현대차 임원)들이 출퇴근할 때마다 문제가 생긴다’는 취지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현대차의 ‘용역 업무 지침’에는 현대차 주변 4곳(▲상징석 ▲하나로 ▲염곡 ▲신호등)이 외부인의 집회·시위 차단 지역으로 표시되어 있다.(아래 사진 참조)

뉴스타파는 지난 8월 현대차의 위장집회 용역들이 본사 앞 집회·시위자 동향을 실시간 보고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 내역을 입수한 바 있다. 이 단체 채팅방의 공지사항에는 ‘근무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본사 앞에서 장기간 집회·시위를 벌여온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나 노조 관계자 등의 동선을 파악하는 대로 용역업체 간부와 현대차 보안팀으로 보고하라는 내용 등이 담긴 사실상의 ‘용역 업무 지침’이었다. (관련 기사: [현대차 가짜집회 카톡방] ② '02-3464-2000 현대차 보안팀'에 사찰 내용 보고

현대차는 본사 주변 네 개 구역을 정하고 위장집회 용역들에게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나 노조 관계자가 이 구역에서 집회를 시도하면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VIP들 출퇴근할 때마다..." 현대차가 용역청년 동원한 이유

‘용역 업무 지침’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집회·시위를 차단해야 할 구역은 현대차 로고와 사명이 새겨진 ‘상징석’이다. 이 상징석은 현대차 본사 입구에 있다. ‘용역 업무 지침’에는 “누가 상징석에 올라가는 거 제지 및 입구쪽으로 노조 등 이런 이들이 돌파할 때 보안팀 백업”이라고 적혀 있다. 외부 집회·시위자 중 누군가가 이 상징석에 접근하려 하면 저지하라는 것이다. 상황이 발생하면 현대차 보안팀 직원들이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도 미리 준비돼 있다는 뜻이다.

현대차 '용역 업무 지침'은 우선적으로 집회·시위를 차단해야 할 구역으로 본사 앞 '상징석'을 꼽았다. 본사 입구에 위치한 이 상징석에는 그룹 로고와 사명이 새겨져 있다.

현대차 경비 용역들이 사수해야 할 또 다른 구역은 ‘하나로’다. ‘하나로’는 현대차 본사 바로 옆에 위치한 하나로마트 양재점 후문과 현대차 정문 사이의 인도 10m 구간을 뜻한다. ‘용역 업무 지침’에 따르면, 용역들은 이 구역에서 외부인이 집회·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야 한다.

'용역 업무 지침'은 이른바 '하나로' 구역, 현대차 본사 입구와 바로 옆 하나로마트 양재점 후문 사이 인도 10m 구간을 필수 사수 구역으로 정했다. 2016년 법원은 이 구간에서만큼은 현대차 측이 박미희 씨의 집회·시위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명령한 바 있다.

‘하나로’ 구역은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가 지난 2013년 10월부터 대리점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처음 시작한 곳이다. 한때 박 씨의 농성천막도 이곳에 있었다. 용역 청년들이 24시간 이곳을 점거하는 등 박 씨의 시위를 방해하자, 박 씨는 지난 2016년 법원에 현대차를 상대로 집회시위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하나로’ 구역에서만큼은 현대차 측이 박 씨의 집회·시위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명령했다.

그러나 현대차와 위장집회 용역들은 법원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용역 업무 지침’을 보면 명확해진다. ‘용역 업무 지침’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기존 미희 텐트(박미희 농성천막)가 있던 자리(‘하나로’ 구역)가 VIP들이 출퇴근할 때마다 뭐 같았는데…”

본사 정문 바로 옆에서 박 씨가 집회·시위하는 모습에 ‘VIP’ 즉, 현대차 고위 임원들이 큰 불만을 가졌고, 이 때문에 용역들이 ‘하나로’ 구역을 점거했음을 짐작케 한다. ‘용역 업무 지침’에는 "미희가 더이상 현수막이나 천막 못 치게 하는 거랑… 거기 포인트 안 잡게 올려고 하면 피켓들고 먼저 선점거해서 절대 그쪽으로는 시위 못 하게 하는 방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용역 업무 지침’이 집회 차단 구역으로 꼽은 세 번째 장소는 ‘염곡’이다. 이곳은 현대차 본사 사옥을 끼고 있는 염곡사거리를 뜻한다. 지난 7월 서초구청이 행정대집행에 나서기 전까지 박 씨가 농성 천막을 설치했던 곳이다. 위장집회 용역들에게는 “미희가 가로정비 이후 천막을 여기다가 이동하여서 추가적으로 천막이나 자재같은 거 이동시 방어목적 및 노조들 위치 최초 보고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용역 업무 지침'은 '염곡'을 집회 차단 구역으로 정했다. 현대차 본사 사옥을 끼고 있는 염곡사거리를 뜻한다. 지난 7월 서초구청의 행정대집행 전에는 사진 속 횡단보도를 지나면 이 지점에 박미희 씨의 농성 천막이 보였다.

네 번째 집회 차단 구역은 ‘신호등’. 염곡사거리의 현대차 본사 방향 횡단보도에 있는 신호등 주변 구역이다. 이 구역은 고속도로 나들목(IC)과 인접해 있고, 맞은 편에는 공공기관들의 사옥과 꽃 도매시장이 있어 하루 종일 차량과 유동인구가 많다. 외부 집회·시위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을 주로 걸었던 곳이다. ‘용역 업무 지침’은 이 구역에서 집회·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라고 돼 있다. 실제로 이곳에는 평소 5명 이상의 용역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용역 업무 지침'이 정한 네 번째 집회 차단 구역인 '신호등'은 양재나들목(IC)에서 들어온 차량이 현대차 본사를 끼고 도는 지점이다. 이곳에는 주변에 공공기관 사옥과 꽃 도매시장이 있어 하루 종일 유동인구도 많다.

현대차, 뉴스타파 ‘위장집회’ 보도 후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와 합의

단체 채팅방에서 확인된 ‘용역 근무 지침’은 지난 10년 간 현대차 경비용역들이 24시간 알박기 집회를 하면서 현대차 본사 주변 일대를 점거했던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모두 현대차 측의 요구와 뜻에 따른 것이다.

뉴스타파가 지난 8월과 9월 현대차 본사 앞을 점거한 '검은 옷의 용역 청년’들과 이들을 동원한 현대차의 위장 집회에 대해 보도한 이후 변화가 생겼다.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다가 용역 청년들의 방해와 감시를 받았던 기아차 대리점 내부고발자 박미희 씨가 지난 9월 현대차 측과 극적인 합의에 이른 것이다. 해고되기 전 근무했던 대리점은 사라져 원직 복직은 이룰 수 없었으나, 지난 해고 기간에 대한 보상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가 현대차를 상대로 한 투쟁을 멈추게 되자 현대차 본사 주변에 배치된 용역 청년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이전에는 최대 30명 이상 배치됐던 용역들의 수가 적게는 5~6명 규모로 축소됐다. 그러나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언제든 현대차 측의 필요에 따라 용역들의 수는 다시 늘어날 수 있다. 현대차가 위법적인 위장 집회를 완전히 중단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 다시 용역들의 집회 방해와 감시로 고통 받는 제2, 제3의 박미희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뉴스타파는 현대차 측에 지난 10여년 동안 용역들을 동원해온 본사 앞 가짜집회를 중단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현대차 측은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오늘도 현대차 본사 앞에는 검은 옷의 청년들이 서 있다.

뉴스타파 김지윤 jiyoon@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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